부품이 아니면 좋겠어

우리는 서로에게 소중한 인연이니까

by mountain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이틀 전 화요일 아침이었다. 종종 늦는 녀석이 제시간에 오지 않아 확인해보니 코로나에 걸렸단다. 순간 지난 주말 내내 어지러웠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나도 설마 코로나는 아니겠지 하는 마음으로 1교시에 아이들을 교과실로 보내놓고 자가 진단 키트를 꺼냈다.


결과는 양성이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걸린 적 없던 나인데 연휴를 앞둔 지금 이 시점에서 확진이라니 너무 억울했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이 걱정됐다. 바로 병원에 갈 수도 있었지만, 마스크를 쓰고 2교시 한 시간 동안 원래 연휴 전까지 계획해둔 수업을 바쁘게 설명했다. 그래야 아이들이 내가 없어도 수업에 잘 참여할 것 같았다. 특히 수요일에는 추석을 맞아 학급 윷놀이 대회를 하기로 했던 터라 윷놀이를 경험해보지 못한 친구들에게 놀이 규칙을 미리 열심히 안내했다.


3교시 아이들을 교과실로 보내고 급히 조퇴했다. 병원에 도착한 시각은 4교시가 시작할 무렵이었다. 진료를 보고 약을 처방받아 병원을 빠져나오는데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4교시 우리 반 보결을 들어오신 선생님의 다급한 연락이었다. 그날 등교한 20명의 아이 중 14명이 점심도 먹지 않고 조퇴를 요청했기에 상황을 알리고자 전화하신 것이었다.

명단을 받아 급히 보호자에게 연락을 돌렸다. 아이들이 보호자에게 왜 조퇴하고 싶냐고 물어봤더니 담임 선생님이 확진되어 없으니 학교에 있고 싶지 않다고 했단다. 아마 학생들의 의도는 자신도 혹시 학교에 남아있다가 코로나에 걸릴 것이 염려되어 조퇴를 요청했던 것 같다. 하지만 담임인 나는 내 멋대로 생각했다. ‘역시 담임이 없으니 학교에 있을 이유를 못 느꼈군.’


연휴 내내 온몸이 아프고 어지러워서 자는 일 이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식사 후 약 먹고 자는 일을 반복했다. 그러면서 나름 야심 차게 준비했던 윷놀이를 아이들이 즐겁게 했을지 궁금했다. 다른 일도 아니고 윷놀이가 잘 진행됐는지 보결 들어오신 선생님께 여쭤볼 수도 없고, 아이들에게 연락하는 일은 더욱 이상하지 않은가. 아픈 사람이 연휴에 연락한 이유가 고작 윷놀이 재미있었는지 궁금해서라니 지금 돌이켜봐도 이상해서 그 누구에게도 연락 안 하길 참 잘했다.


오늘 오랜만에 출근해서 교실을 살폈다. 윷놀이 상품으로 제공하려 했던 간식이 내용물은 없고 껍질만 남아있는 것을 보니 잘 끝난 듯했다. 그래도 실제로 즐거운 활동이었는지 궁금해서 아이들에게 소감을 물었다. 한 아이도 빠짐없이 모두 엄청 즐거웠다고 답했다. 다행이었다.


바보같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웠다. 3월부터 지금까지 함께한 담임 없이도 즐거울 수 있다니! 우리 함께 행복하게 보내던 시간은 그새 다 잊어버린 거니? 나 없어도 잘 지내야 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진짜 그랬다고 하니 괜히 서운하다. 이 반의 담임이라는 사람이 정말 이중적이고 유치하기 짝이 없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한 아이가 와서 내 건강을 걱정해줬다. 내가 없을 때 나를 걱정하며 쓴 쪽지도 보여줬다. 부끄러워서 말을 못했을 뿐이지 너희들도 나를 보고 싶었던 거구나.


사실 그렇게 말해줘서 정말 고마웠어. 내가 이 교실에서 혼자라고 생각하지 않고 늘 행복할 수 있던 건 다 너희들 덕분이구나. 난 내가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는 부품이 아니면 좋겠어. 사실 누가 와도 너희들과 잘 지냈겠지만, 그래도 올 한 해를 함께하는 우리는 서로에게 소중한 인연이니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우리 반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