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09 북한산 의상봉-구기탐방지원센터
망설이고 망설였던 공룡능선을 탈 날이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공룡능선은 내•외 설악을 모두 볼 수 있는 설악산의 대표 능선 중 하나로 공룡의 등뼈를 연상시킨다고 하여 ‘공룡’이라 이름 붙여졌다. 급경사의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고 암릉이 많아 체력적인 소모가 크다. 능선 자체만 5.1km로 길지 않지만 사람에 따라 4-6시간까지(능선만) 걸리는, 산악인들한테는 꽤 악명 있는 코스다.
지리산 종주를 여러 번 했던 선배조차 가장 힘들었던 산행으로 공룡능선을 꼽아서 지레 겁부터 먹었었다. 산과 더 친해지면 갈 마음으로 미루고 미루다 1) 올해 버킷리스트 중 하나로 종주 또는 종주에 버금가는 도전을 해보고 싶었고 2) 마침 공룡능선을 타 본 동행인이 생겼으며 3) 지금이 아니라면 평생 용기가 안 나겠다 싶어 일단 질렀다. 그리고 어제는 설악산에 가기 전 어쩌면 마지막 예행연습이 될 북한산 의상능선을 타기로 한 날이었다.
북한산 의상능선은 능선을 타는 내내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져 ‘작은 공룡능선’이라 불린다. 손을 쓰며 암릉을 올라야 해 자신의 체력을 테스트할 수 있는 최적의 코스다. 북한산 지도에는 가장 어렵다고 나와있지만 사실 안전장치가 잘 돼 있어 아주 약간의 담력만 있다면 그리 어렵지만도 않다.
전날 종일 비가 내려 미끄러울 줄 알았지만 바위는 생각보다 말라 있어 탈 만했다. 다쳤던 무릎은 더는 아프지 않았다. 오랜만에 타는 바위에 처음은 당황했지만 점점 익숙해졌다. ‘어차피 공룡능선에서 수없이 탈 바위야’라고 마음먹고 나니 오히려 평소보다 더 힘을 내 오를 수 있었다.
공룡능선에 대한 기대만큼이나 걱정도 크다. 연습 때처럼 잘 타지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도 있지만, 그럼에도 확신할 수 있는 하나는 일단 타고나면 절대 후회할 일은 없을 거라는 거다.
얼마 전 ‘나 혼자 산다’에서 코드 쿤스트가 대형마트에서 장을 본 후 식은땀을 흘리는 장면을 봤었다. 누군가한테는 쉬운 마트에서 장보기가 코드 쿤스트한테는 땀을 한 바가지 흘릴 정도로 겁나는 일이었다. 코드 쿤스트한테 장 보기처럼 나한테는 공룡능선이, 아니 어쩌면 현실에서는 공룡능선보다 더 상상만으로 겁부터 나 머뭇거리는 순간들이 많다. 하지만 두려움은 상대적인 것이며, 실존하기보다 스스로 만든 환영에 가깝다. 그러니 일단 저질러야 한다.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것도, 두려움을 만든 나만 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