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은 전혀 모르지만 나도 한번 샤라웃 해본다
언제부터일까, 나는 스스로를 나타내고 표현하는걸 매우 자제하는 사람이 되었다. 어릴땐 제법 관심이 고파서 춤도 추고 웃긴 표정도 지었던 아이였던것 같은데, 언제부턴가 나는 조용하고 묵묵한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 후, 외국에서도 오래 생활하고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는 기업들을 다니며 나름 견문(?)이 넓어졌지만, 달라진건 업무적인 능력뿐 나는 여전히 스스로를 나타내고 드러내길 꺼려한다.
예를 들면, 나는 지금까지 만들어온 성취를 미주알 고주알 풀어내는걸 매우 낯간지러워 한다. 어째서인진 모르겠지만, 난 묵묵히 할 것 하다보면 언젠간 누군가 그 진가를 알아준다고 믿는 편이다. 그리고 다행히, 아주 운좋게도, 내 지난 날들엔 이런 성향을 장점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해준 어른과 리더들이 존재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칭찬을 들으면 춤추는 고래다. 고지식할 정도로 스스로를 표현하고 드러내는걸 꺼리는 편인데, 또 칭찬을 받으면 표정을 못숨기고 자기전에 괜시리 기분 좋아한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뚝심있게 무언가를 추진하다가 누군가 그 진가를 알아줄 때 엄청난 쾌감을 느끼고 신나하곤 했다. 가령, 내가 몇년간 열심히 공부한 외국어를 쓸 환경이 만들어지고 내가 멋지게 무언가를 해내면 그 날은 잠은 다 잤다고 할 정도로 신나한다.
물론 나도 사람이기에, 묵묵함의 과정 속에서 괜히 인정받고 싶고 내 성과를 말하고 싶은 순간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여기서 딜레마가 생긴다. 내가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세상에 떠들어대는 순간, "묵묵함"에서 오는 성취감이 사라진다. 그리고 나는 그닥 선호하지 않는, 성취 전에 모든 과정을 생중계하는 모습이 되어버린다. 나는 이런 딜레마를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라는 신념 아래 견뎌왔던것 같다.
아, 근데 이게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하고 뭐라도 해내야 한다는 마음이 컸던 20대 중반이 넘어가니까, 신념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괜히 내가 이런것도 해봤다, 저런것도 안다라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스물스물 올라왔다. 뭐 내가 어마무시한 일을 했던것도 아니고, 사실 이런 말 한다고 내 인생이 달라질건 없다. 하지만, 괜시리 내 스스로가 가벼워보이거나 실없어 보일까 참아냈다. 그리고 나는 블로그와 브런치를 만났다.
주워담을 수 없는 혀 끝에서 나오는 말과 달리, 블로그와 브런치는 내가 하얀 배경에 적어내리는 생각들을 수정할 수 있었다. 물론, 하찮은 필력이기에 나중에 다시 읽을때면 괜히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긴 했지만, 그래도 내 마음속 깊이 담아둔 이야기와 생각들을 풀어나갈 수 있다는건 나에겐 해방과도 같았다.
처음엔 글을 썼다가 금새 삭제하는 일도 잦았다. 시덥잖은 내 이야기를 마치 뭐라도 되는냥 써내려간게 자만심에 가득차보였고, 괜히 부끄러웠다. 혹여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겐 웃음거리나 손가락질할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근데 글이 쌓여가며 서서히 생각이 바뀌었다. 애초에 내 글이 남들에게 그렇게 핫한 소재가 안될 뿐더러, 난 그리 자극적인 글을 쓰는데 재능도 없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냥 쓰고싶은대로 쓰자"
부끄럽지만, 내 브런치 글들은 대부분 20~30분 이내에 완성된다. 그만큼, 한가지 주제가 생각나면 쭈욱 날것 그대로의 글을 써내려가는 편이다. 주제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고, 더 그럴싸하게 표현하고자 고민하면 이 역시도 내 고지식한 일상과 다르지 않을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덕에, 나는 확실히 예전보다 묵묵하고 싶지만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 사이에서의 딜레마가 많이 해소된듯 하다.
난 힙합을 잘 모른다. 기껏해야 쇼미더머니 몇 편 본것과, 대중성 높은 랩퍼들의 노래 몇개 아는게 전부다. 하지만 난 요즈음 힙합 뮤지션들이 보여주는 스웩과 누군가를 치켜 세워주는 "샤라웃"을 존중하고 동경한다. 그리고 오늘만큼은, 묵묵함이 최고의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나에게 "셀프 샤라웃"을 한번 해주고 싶다.
평일에 단지 몇시간 일찍 일어났단 이유로 해뜨기 전부터 브런치를 쓰고있는 스스로에게 Shout out lou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