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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rdsbyme Jan 02. 2023

언어 역시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언어를 통해 가지는 자신감은 자만감이 되어도 괜찮은가

난 언어 배우는걸 즐긴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책을 읽으며 새로운 단어를 배우고 문장력을 키우는게 즐거웠다. 중학교에 가선, 이따금씩 보는 외국영화 속 주인공들의 대사를 자막 없이 이해하고 싶어 영어를 공부했다. 새로운 언어로 무언가를 읽고, 말할 수 있다는건 마치 미지의 세계를 개척해 나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나는 미국 유학을 떠났다. 관심 많던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나라에서, 나는 그들과 대화하고 함께하며 언어 뿐만 아니라 문화적 학습도 함께 할 수 있었다. 특히, 영어 실력이 늘면서 셰익스피어를 비롯한 다양한 영문학 소설들을 원어로 읽을 수 있다는 성취감에 취하기도 했다. 


대학에 진학하고나선, 방학마다 영어를 가르치며 나름 용돈벌이도 할 수 있었다. 이렇게 유학생으로서 그리고 영어를 잘하는 한국사람으로 살아가다보니,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은 나만 만나면 영어를 시키려고 안달이 났다. 괜히 어려운 영어 단어 발음을 물어보거나, 외국 사람이 지나가면 말을 해보라는 식이었다. 하지만 그럴때마다, 나는 더욱 영어와 한국어를 구분해서 언어적 철벽을 쳤다. 나는 언어를 좋아하는거지, 영어를 편애하는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런 언어적 철벽과 함께, 나는 군생활을 마치고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영어가 마치 권력인것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을 마주하기 시작했다. 굳이 영어를 쓰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영어적 표현을 섞고 발음을 굴리는 경우들이 상당히 많았다. 한국어로 중요한 미팅을 진행할 때도, 잔뜩 굴리는 발음으로 무언가를 표현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국어가 최고다" "한국어를 사랑하자"라는 류의 주장을 펼치는게 아니다. 적어도, 한국어로 무언가를 소통할 때 굳이 서로간 이해가 명확한 단어를 두고, 발음 잔뜩 굴려가며 영어 표현을 쓸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언어를 두가지 이상 자유롭게 구사한다는건 훌륭한 일이다. 하지만 그 사실이, 소통의 과정에서 우월감이나 유리한 포지션을 만들어 주진 않는다. 되려, 언어를 다양하게 구사할 수록, 언어적 이해도를 바탕으로 듣는 자세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일반화를 시키고 싶진 않다. 하지만, 회사를 다니며 만난 "영어를 엄청 섞어쓰는" 사람들 대부분은 한국말을 원어민처럼 구사한다. 즉, 굳이 영어를 섞어쓰지 않아도 충분한 한국어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순간적으로 단어가 영어로만 생각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대화는 스피드 게임이 아니다. 굳이 상대방이 영어를 모를 수 있는 상황에서, 내 언어적 우월감을 과시하며 대화를 이끌어 나갈 이유는 없다.


난 아마 죽을때까지 새로운 언어와 문화를 배우길 갈망할만큼, 언어를 좋아한다. 그리고 그만큼, 언어를 통한 "소통"에는 청자를 위한 배려와 진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청자를 고려하지 않은 무분별한 영어 단어의 남발은, 결국 스스로가 애써 배운 언어의 품격을 낮추는 꼴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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