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을 보유한 아파트

투자는 새로운 시간을 만든다

by 마운트레이크

2006년 봄이 한창 깊어질 무렵, 나는 소위 '영끌'을 하여 아파트를 매수했다.


당시 나의 꿈은 분당 신도시에서 계단식 아파트를 소유하고 살아보는 것이었다. 심플했다. 그래서 은행 대출을 최대한도까지 끌어 모아 인생 최고의 투자 결정을 했다. 은행 대출을 이렇게까지 받아도 되나? 대출이 된다 해도 갚을 생각을 하면 주저하던 시절이다. 지금은 복잡한 대출 규제의 시대다. 원하면 받을 수 있었던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어쨌든 이 아파트는 내 자산 포트폴리오에서 매우 중요하고 성공적인 뿌리 자산이 되었다. 그 집에서 아들은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녔고, 우리 가족의 기억 속에 상당 분량의 시간적, 공간적 서사를 제공하는 무대가 되었다.


2014년 여름 그 아파트를 전세 주고 경기도 외곽 신축 대형 아파트로 입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집을 10여 년간 계속 세를 주었다. 여러 세입자가 이 집을 사용하고 자식들을 키우고 또 나갔다. 우리 집은 소위 '초품아'였다. 바로 앞에 초등학교가 있다 보니 어린 자녀들을 둔 비슷비슷하고 고만고만한 가족들이 계속 둥지를 틀었다. 우리 가족이 그곳에서 시작했던 그 시절처럼..


그 아파트에서의 기억이 항상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직장 생활을 버텨 나가고, 맞벌이로 아이를 키우며, 돈은 벌어도 항상 모자란 시기였다. 그곳은 어린 아들이 한창 자라나던 스위트홈이었지만 한국의 조기 입시공부를 제대로 시키려 했던 부모 아래서 매우 정서적으로 메마른 시절을 보내야 했던 집이기도 했다. 교육측면에서 돌아보면 힘들었던 에피소드가 더 많다.


중학교까지의 학교 성적이 아이의 인생, 행복 전체를 좌우한다는 통념에 시달릴 때다. 살아가는 방식과 행복에 있어서는 '단 한 가지의 답이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데.. 머릿속으로만 맴돌지 도무지 마음속으로 품지 못했다. 이제 다 지나고 보니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땐 괜히 그리고 너무 심각했어..'


당시 아이는 학교 생활이나 공부 적응에 꽤 힘들어했다. 다행히 그는 스스로 버텨냈고 자기 길을 고민하며 새로운 탐색을 계속 시도했다. 그런 큰 행운도 함께 했던 공간이다. 그 집을 전세 주고 이사 나올 때 아들은 그 집에 아무런 미련이 없는 듯했다. 아마 그 시기 꽤 답답했던 공간이었을 것이다.


그곳은 우리 인생에서 각자 성장하기 위해 치열한 몸부림을 치던 작은 전쟁터였다. 그리고 변화의 변곡점을 만들고 미래를 새겨간 공간이기도 했다.




투자측면에서는 제법 성공한 아파트였다.


이 아파트를 보유한 전체 기간 20년을 보면 자산가치는 계속 시간을 먹으며 자라났다. 하지만 그 기간을 잘게 쪼개서 들여다보면 계속 가격이 오른 시기만 있었던 건 아니다. 중간중간 가격은 안 오르는데 대출이자만 늘고.. 숨 막히는 고비를 몇 번씩 넘겨야 했다.


정부가 금리를 내린다 해도.. 새로운 전철역이 생긴다 해도.. 부동산 부양책을 발표한다 해도.. 어떤 특정 기간에는 아파트 가격이 꼼짝하지 않았다. 개발호재나 입지상승 이론도 중간중간 먹통인 시간이 꽤 있다. 몇 년째 대출이자만 내면서 매수한 가격 그대로일 때.. 손해가 쌓이는 시간이 몇 년 지속되었을 때 참 답답했다.


'이렇게 조금씩 빠지기만 하는 거 아닐까'


이런 공포에 빠져 2013년 어느 주말.. 이 집을 거의 매수가 수준으로 팔기 위해 부동산 사무실에 나갔다. 그리고 계약서에 도장 찍기 전에 테이블에서 일어나 나와버렸다. 마침 상대방의 요구사항이 까다로워 그 핑계를 대고 빠져나왔던 것이다. 아내가 결혼 후 가장 잘한 행동이라 기억하는 부분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파는 건.. 지금은 아니다.'


어떤 판단 기준이나 전략이 있었던 건 아니다. 원시적인 '날 것의 느낌'뿐이었다. 운이 좋았다.


'그런 선택과 결정을 앞으로도 복기하며 계속 잘할 수 있을까?'


그때를 견뎌낸 덕분에 지금은 당시 매도 예정가격의 3배까지 가격이 올랐다. 그리고 나는 얼마 전 이 아파트의 매도를 완료했다. 매도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잔금을 내기 전엔 잘 버텨오던 싱크대 배관 누수가 발생하여수백만 원 공사비를 추가로 지불했다. 이미 팔기로 계약을 했지만 잔금일까지는 내 책임이었다. 조금만 더 일찍 처분할 걸 그랬나 후회도 잠시 했다.


'그동안 쌓였던 미운 정 고운 정, 정 떼는 해프닝이구나.'


다 지나갔다. 며칠 전 그 아파트의 등기를 떼 보니 이제 소유자의 이름도 완전히 바뀌었다. 조금 아쉬운 느낌과 애틋함 그리고 약간의 시원함까지 교차한다. 묘한 감정을 즐기고 있는데 아내가 아파트 실거래가 앱이 뜬 스마트폰을 보여준다.


"거기 팔았는데.. 계속 신고가 경신 중이야."


그래도 이제 그 집은 우리 가족의 인생 무대에서 자기 역할을 다 했다. 앞으로는 새로운 무대가 필요하다.


길버트와 윌슨의 연구 보고서에 이런 글이 있다.


"삶은 예측할 수 없고, 우리가 느낀 감정은 우연에 따라 결정된다."


현재 느끼는 감정으로 미래를 대비할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냉철한 투자 결정과 변화무쌍한 감정은 늘 함께 한다. 이 현란한 엉킴을 분리하기 어렵다.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 그럴 것이다.


흔히 투자의 본질은 리스크는 줄이되 더 나은 기회는 놓치지 말라고 한다. 이번에 리스크는 줄였는데 새로운 기회까지 날린 것일까? 그 반대로 더 나은 기회를 잡게 되었지만 리스크가 더 커진 것일까?


투자는 그 결정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방향으로 낯선 시간을 만들어 간다.


'앞으로 다음 단계는?'


새로운 탐색과 고민 속에 6월의 여름밤은 달구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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