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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사이 Feb 19. 2022

갓 튀긴 통닭 맛

어떤 날, 빛과 그림자 그리고 우리의 일

어떤 날, 빛과 그림자 그리고 우리의 일
김현 에세이집 『다정하기 싫어서 다정하게』




정말 먼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버려야 한다.
_p.31 간절한 마음



'일상과 세계 사이에서 빛나는 이야기' 에세이& 시리즈 두 번째 책은 김현 시인의 『다정하기 싫어서 다정하게』. 창비의 독서 체험 플랫폼 '스위치'에 연재했던 '시인 김현만이 할 수 있는 아름답고, 진실한 이야기들'을 모은 책이다.

이 책은 어떤 기억과 사건, 사람에게서 떠오른 단상을 적은 메모로 가득하다. "어른거리고 일렁이고 흘러가 속삭이는 마음의 사계절"이 곳곳에 스며있다. "목숨줄을 끊으면 일어날 수 있는 경이로운 일들에 대해" 아무도 없는데 누구라도 들으라는 듯이 하는 말, 인생이 잘 흘러가고 있는지 돌아보며 중얼중얼 쓰게 되는 글. 이 모든 게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간절한 마음의 표현이다.





아, 산다는 건 분명히 죽음보다는 작고 가벼운 행복.
_p.96 행복한 사람


김현 시인은 누군가 발견하기를 바라며 견딘 밤을 알아보는 "껍데기를 껍데기로 여기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다. 수록된 스물다섯 편의 글은 시인님을 거쳐 간 시와 노래, 책과 영화 이야기, 가족과 사랑, 삶과 죽음 등 삶의 다양한 얼굴과 목소리를 들려준다.

종이 위에 남긴 발자국을 따라 걷다 보면 다채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어느새 차곡차곡 쌓인 속삭임에 마음이 푹푹 빠진다. 퇴근길 마을버스에서 통닭을 손에 든 행복한 사람의 얼굴을 마주친 것처럼. 갓 튀긴 통닭 냄새에 저절로 미소가 번지듯 조용히 온기가 스며든다.





모든 사랑은 자기에서 출발해 타인을 경유하고
마침내 우리에게 도착한다는 것을 깨치는
연쇄작용이었다.
_p.127 한 사람을 위한 마음


한 계절을 무사히 건너온 이가 진심으로 쓴 마음의 일렁임이 잔물결을 일으킨다. "내면에 상처가 없는 사람도 없고 내면에 사랑이 없는 사람도 없다."라는 문장이 마음에 와닿았다. 흘러가는 계절 따라 "다정할 수만 없는 세상을 쓰다듬는 다정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쓰는 저자를 응원하게 된다.


어른은 타인의 얼굴에서 시간을, 시간에 힘입어온
기쁨과 슬픔을 읽어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일 것이다.
_p.149 누군가 창문에 입김을 불어 쓴 글씨


"무사히 어른이 되었을까." 잃어버린 물건을 우연히 발견한 것처럼. 생각지 못한 곳에서 감정을 돌아보게 하는 문장과 마주쳤다. 잊히지 않는 어둠과 내 안에 자리 잡은 심연을 들여다보는 듯한 문장이었다.





나란히 숨을 고르는 일. 사랑은 모쪼록 그런 일.
_p.227 봄에는 뭐 하세요?



책에 나온 마음이 순해지는 강아솔의 <사랑을 하고 있어>의 노래를 들으며. 김현 시인과 짝꿍 호의 이야기를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두 사람, 그밖의 사람들을 목격하는 일"을 쓰기 위해 애쓰는 삶이 "살짝 닿거나 닿을 듯이 가깝게" 스쳐 갔다. "살아있는가" 묻고 답하게 하는 글은 사랑으로 흘러간다.


저자는 당신이 원하는 세상을 꿈꾸고 이제 나아가자고 먼저 손을 내민다. 당신을 설명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이름을 부르고 얼굴을 적어 내려"간다. 내 집 마련의 어려움과 층간소음, 성소수자의 주거권과 가족구성권을 이야기하며 우리에 관해 쓴다. 진심으로 쓰며 나와 당신 곁에 살고 있다.




얹혀 간다.
문학 하는 삶도, 문학 하지 않는 삶도.
_p.232 작가의 말


저자가 들려주는 일상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순간과 사람을 돌아보게 한다. 생이라는 기차를 타고, 달리는 기차에서 바라본 창밖 풍경은 덧없이 흔들리고 날아오르고 반짝인다. 때론 낯선 역에 내려 덧없이 거닐다가 주저앉아 울기도 하고. 그저 울고 웃다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애쓰며 사는 삶을 이야기한다.

'살아 있기에 가능한 것'들이 있다. 순환하는 계절처럼 "나에게서 시작해 너에게로, 가까이에서 먼 곳으로 흘러가는" 애씀의 기록이 삶의 미로를 사랑의 미로로 만들기도 한다. "언젠가 어디선가 보았던 얼굴(들)"이 떠올랐다. '이제 그게 누구인지, 자신과 어떤 관계인지를 기억해내는 일'은 우리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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