喪家에 모인 구두들
시뻘건 뜨거움이 하얀 차가움에 가 닿을 때까지
유리공은
긴 막대파이프 끝에 붉은 유리액체를 매달고
제 입김을 모조리 다 쏟아 불어넣는다 그 입김으로
유리그릇을 만들고 유리새를 만들고
유리꽃을 만든다
저 유리새의 뱃속엔
창자도 없고 똥도 없다 저 유리꽃의 봉오리엔
수술도 없고 암술도 없고
단 한 방울 꿀도
없다
한 생의 시뻘건 뜨거움이
제 입김을 모조리 다 쏟아내고 흰색의 차가움에 가 닿을 때까지
막대파이프 물고 입김 불어대는
유리공은 새처럼
주둥이가
길다
‣ 출전 : 실천문학사 유홍준 시집 『喪家에 모인 구두들』(2004) 74-75페이지
유리처럼 적나라하게 드러낸 시어들이 투명하고 선명하면서도 날카롭고 간명하다. 있는 그대로 날 것의 자신을 보여주는 시인의 시들이 미처 아물지 못한 상처들이 마음속에 남아 있던 오래된 상처들을 헤집어 놓는다. 누군가 적나라하게 자신을 보여주는 사람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 시인은 정말 치열하게 살아가면서 “오늘도 냄새가 지독한 똥구멍으로 시를 내지른다(‘냄새가 지독한’, 92페이지).” 큰 과장 없이 보여주고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는 시인의 시선과 눈이 마주치면 왠지 가시에 손끝이 찔린 것처럼 마음이 아리다.
유홍준 시인의 시 속에는 삶과 죽음이 공존하고 있다. 삶과 죽음은 함께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살아 있는 모든 이들은 안다. 그것을 아는 것과 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다르다는 걸 알지만 생각만으로는 둘 사이의 간격을 좁힐 수 없다. 시집 『喪家에 모인 구두들』(2004)에서 시인은 “말하고 싶다 핏물이 스며나오는 책갈피/넘길 때마다 핏물이 묻어나오는 시집을 묶어/팔고 싶다 서점이 아닌 저 식육 코너에서 무표정하게 핏기 없이(‘식육 코너 앞에서’, 9페이지)”라고 말한다. 정말 시집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손끝에 묻어나오는 핏물을 수시로 닦아내야 했다. 시 속에 스며든 시인의 유년기 가족에 대한 고통스러운 기억 때문에 한편으로는 불편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가슴이 먹먹했다.
시인은 일상에 녹아든 다양한 죽음의 흔적을 통과하며 생을 발견하고 있다. 유리공의 긴 막대파이프 끝에 매달린 붉은 유리액체 덩어리처럼 죽음의 흔적을 시뻘건 뜨거움으로 녹여내 입김을 불어넣는다. 내면에 남아 있는 뜨거운 상처의 열기를 모조리 다 쏟아 유리그릇을 만들고 유리새를 만들고 유리꽃을 만든다. 시뻘건 뜨거움이 하얀 차가움에 가 닿아 형체가 있는 제품이 만들어진다.
유리공이 만들어낸 유리새는 진짜 새가 아니다. 유리꽃도 진짜 꽃이 아니다. 다만 투명하고 차갑고 속이 비어 있는 유리로 만든 장식품일 뿐이다. 겉으로는 빛이 나지만 살아있는 새가 아니기에 창자도 없고 똥도 없다. 그리고 당연히 지저귈 수도 날아다닐 수도 없다. 유리꽃은 꽃이지만 수술도 없고 암술도 없고 꿀도 향기도 색도 없다. 생의 무거움이 사라진 존재는 더 이상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없다. 한 생의 시뻘건 뜨거움이 빚어낸 유리새는 더 이상 날 수 없는 새이다.
지나간 상처는 시간의 뜨거움을 통과하면서 녹아내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유리 장식품이 되었다. 상처가 생겨난 순간의 뜨거움이 사라질 만큼 시간은 지났고 유리새처럼 속이 빈 하얀 차가움만 남았다. 살아 있는 동안 막대파이프를 물고 얼마나 많은 입김을 쏟아부어야 상처가 모두 투명해질 수 있을까. 아직 유리새로 만들어야 할 상처들이 남아 있어 유리공은 새처럼 주둥이가 길다. 생의 뜨거움에 상처받으면서도 막대파이프를 물고 일상에 입김을 불어넣어 시를 쓰고 있을 시인의 모습을 상상하며 시인이 적은 시집 후기를 옮겨 적어 본다.
꽃도 이파리도 없는 가지 하나를 분질러 그대에게 건넵니다.
마음의 살(肉)을 모두 베어먹히고서야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내는, 복숭아씨 같은 시를 쓰고 싶었는데…….
만신창이의 상처만을 너덜너덜 깁고 꿰매고 잇대었나봅니다. 내면의 세계엔 근접도 못 하고 겉모습을 다듬느라 헛심들만 썼나 봅니다.
시를 쓴답시고 여태 한 짓이라곤 딱지 앉은 상처를 집어뜯어 덧낸 것뿐, 고름과 진물을 만졌던 손가락 끝을 책갈피 여기저기에 문질러 닦은 것뿐인 듯합니다.
2004년 봄
유홍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