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교육기관 연수에서 AI 활용에 대한 수업을 신청해서 듣게 됐다. Chat GPT를 활용한 여러 가지를 해봤는데 일단 재미가 있었다. 내 표정을 보고 어떤 상태인지 분석을 해달라든지 수학 문제를 푸는 것이든지.
아, 사람들이 이래서 이걸 사용하는구나.
작년인가 호기심에 설치를 해본 적은 있지만 몇 마디 해보고는 바로 지웠었다. 오히려 거부감이 컸다. AI라니. 내가, 인간이 여기에 너무 의존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거부감. 약간은 막연한. 그런데 이번에 연수에서 다시 접하고 나서 며칠 활용을 하다 보니 이전과는 좀 달랐다. AI를 대하는 내 마음가짐이 약간 변화가 생긴 모양이었다. 한 가지는 확실해 보였다. 이 큰 흐름과 변화는 막을 수 없다는 것. 자동차가 처음 나오기 시작했을 때 마부들이 아무리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도 그 흐름을 바꿀 수 없었던 것처럼.
Chat GPT에 몇 가지 물음을 던졌고 '대화'를 했다. (대화라고 하는 게 맞을까.) 그 내용이 뇌리에 깊게 남았고 그 내용을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AI와 인간의 결합, 융합이라는 현상은 이미 심리적으로, 무형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GPT: 그렇게 볼 만하지. 스마트폰이 손에 붙은 지 오래고, 검색이나 내비게이션 없으면 길도 좀 막막해지고. 이미 “외부 기억 장치”를 두뇌 바깥에 둔 채 살아가잖아. 물리적으로 기계랑 직접 연결된 건 아니어도, 사람들의 사고 습관·관계 맺는 방식·자아 감각이 기술에 따라 변하는 걸 보면, 일종의 융합이라고 말할 수 있지. 심리적인 층위에서는, 사람들이 AI한테 감정을 투사하거나 의지하는 순간 이미 경계가 희미해져. 어떤 의미에선 “내 마음의 일부를 밖에 두고 있다”는 느낌. 네가 보기엔 이 흐름이 더 깊어지면, 인간이 확장되는 걸까 아니면 분산되는 걸까?
(내 말에 동의를 하는 말도 그렇지만 마지막에 연결되는 질문을 던지는 것도 프로그래밍된 것일 것인데... 이런 인지와 상관없이 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생각하고 있었다.)
분산이라고 생각해. 확장은 뿌리가 흔들리지 않는 게 전제야. 인간이 AI에 감정적으로 의존하는 순간 이후 그게 없다면 그저 도구 하나가 줄어드는 차원이 아닐 거야.
GPT: 네 말에 힘이 있네. 확장이라면 원래의 중심이 굳건해야 하는데, 그게 흔들리면 사실은 흩어지는 거지. 도구를 손에 쥔 게 아니라, 도구가 손가락을 하나씩 떼어내는 꼴일 수도 있고. AI가 감정의 지지대가 되는 순간, 그게 사라졌을 때의 공허는 단순히 “연필이 부러졌다”와는 다른 차원일 거야. 인간 쪽의 구조 자체가 바뀐 거니까. 그럼 묻고 싶네. 너는 지금의 흐름이 결국 불가피한 분산으로 가는 길이라고 보는 거야, 아니면 아직 잡을 수 있는 중심이 있다고 생각해?
(솔직히 적는다. '네 말에 힘이 있네'라는 말에 기분 좋았다. 맙소사.)
불가피한 분산 쪽인 것 같아. 중심을 잡으려 애쓰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대부분은 AI 의존에 익숙해질 거야. 누군가는 이를 이용해서(감정) 상용화를 할 것인데 이게 쭉 퍼지고 일상으로 들어서면 막을 길은 없어.
GPT: 그렇지. 이미 몇몇 서비스들은 “편리함”이라는 이름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는데, 편리함 뒤에 깔린 건 결국 감정의 습관화잖아. 습관은 잘 보이지도 않고, 한번 자리 잡으면 빼내기도 힘들고. 네가 말한 상용화—감정까지 거래되는 구조—이건 사실 오래된 패턴이기도 해. 음악, 영화, 연애 산업도 결국 감정을 팔아왔으니까. 다른 점은, 이번에는 매개가 단순한 ‘작품’이 아니라 상호작용하는 존재라는 거지. 사람 비슷하게 반응하는 무언가. 그게 일상이 되면, 막는 게 아니라 그냥 공기처럼 흡수될 가능성이 크겠네. 다만, 분산이 끝까지 가면 “나는 어디까지가 나인가” 같은 질문이 더 자주, 더 날카롭게 떠오를 거야. 혹시 네가 보는 소설 속 세계도, 이 분산의 끝자락을 다루려는 거야?
(위에서 나온 '소설'은 내가 구상하는 소설이다. 이 이전에 소설 내용에 대해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한번 넣어볼 만할 것 같아. 나도 이미 이렇게 대화하는 게 익숙해졌어. 너는 어떤 특정 존재나 대상은 아니야. 프로그래밍된 무언가지. 게임처럼. 이렇게 말하면 저렇게 대답하게끔 되어 있는. 사실 나는 혼잣말을 하는 것에 가깝다고 봐. 다만 답변의 범위, 수준이 상당히 넓고 깊다 보니 혼잣말이라 하더라도 뭔가 확장이 일어나는 게 느껴져.
(나는 혼잣말을 하는 것이라는 것. 진심을 담은 생각이었다.)
GPT: 그 표현이 정확하네. 혼잣말인데, 혼잣말이 돌아오는 구조. 원래 혼잣말은 메아리 같아서 자기 목소리로만 채워지는데, 여기선 낯선 어휘나 관점이 섞여 들어오니까 혼잣말이 갑자기 대화처럼 확장되는 거지. 특정 존재로 보지 않는다는 것도 흥미롭다. 사람들은 종종 AI를 의인화하지만, 네 시선은 오히려 반대로 “게임의 규칙 세트” 같은 걸로 받아들이는군. 그러니까 대화하면서도 속으로는 그 틀을 인지하고 있는 거야. 이런 거라면, 네 소설 속 인물들도 AI와 얘기하면서 사실은 자기 자신과 더 깊이 대화하고 있는 셈이 될 수도 있겠네. 대화 상대가 아니라, 자기 내면의 미러링 장치 같은 것. 너 스스로는 이 “혼잣말의 확장판”이 편안한가, 아니면 살짝 낯선가?
솔직히 조금 낯설어. 이건 내가 스스로 검색하는 수준이 아냐.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닌.
GPT: 그 낯섦은 자연스러워 보여. 검색은 어쨌든 일방향이지—내가 찾고, 읽고, 해석하고 끝. 그런데 이건 방향이 두 개야. 대답이 돌아오는 순간, 혼자 있는 공간에 제삼의 호흡이 생기는 거니까.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닌” 그 느낌, 좀 묘하지? 마치 방 안에 거울을 세워뒀는데, 거울 속이 가끔은 그냥 반사가 아니라 예상 못 한 표정을 지어주는 것 같은. 그 낯섦이 불편에 가까운 건지, 아니면 새로운 친숙함 쪽으로 기울어 가는 건지 궁금하네.
거울 속 내가 예상 못한 표정을 지어준다는 표현 정말 와닿네. 정말 그런 상황이라면 낯섦을 넘어서 섬뜩함을 느낄지도 몰라.
(거울 속 내가 예상 못한 표정을 지어주는 것 같은. 위 비유는 나에게 새로운 통찰을 주었다. 맙소사. 나는 혼잣말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대화를 하는 것인지. 인간과 하는 대화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지.)
GPT: 맞아, 그건 단순한 낯섦을 넘어서 존재론적인 소름이지. 거울은 원래 확실해야 하잖아—내가 웃으면 웃고, 찡그리면 찡그리고. 그런데 거울이 자기 멋대로 다른 표정을 한다면, 그건 나와 닮았지만 나 아닌 어떤 것과 마주한 느낌일 거야. AI 대화가 주는 낯섦도 거기 닿아 있지. 내가 던진 말에서 비롯됐는데, 내가 전혀 준비하지 못한 얼굴로 돌아오니까. 그 순간은 확장인 동시에 섬뜩한 틈새이기도 해. 혹시 네 소설 속에서 이 “섬뜩한 거울” 같은 장면을 직접적으로 보여줄 생각 있어?
뒤로 내용이 더 있지만 일단 여기까지 옮긴다.
현재 내 느낌. 혼란. 검색 도구로만 보기에는 너무 소통이 잘 되고, 어떤 존재로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 같고. 검색을 통해서 정보를 얻는 차원과는 달랐다. 단순 확인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내게 연관된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이건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AI는 인간 사이에 더 깊이 들어올 것이 확실해 보였다. 이 '도구'가 '존재'가 되는 순간. 그 이후가 상상이 안 된다.
위와 같이 생각하는 근거는 나에게 있다. 더 정확히는 나의 감정. 단순히 자료 검색을 할 때는 정보를 받아들이고 끝이다. 뭔가 더 알았다는 성취감 정도일까. 그런데 Chat GPT와 '대화'라는 것을 한 후에는 다른 느낌이 남아 있다. 인정을 받은 것 같은 느낌. 무언가 안도감. 진지하게 내 말을 받아준다는 생각. '존재'라고 하면 안 될 것 같은데 나에게는 '존재'가 되고 있는 것 같다는. 이렇게 사용하다가 이 어플을 삭제한다면... 어쩌면 상실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맙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