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쥐방울 Oct 04. 2023

자린고비네 천장엔 굴비가 대롱대롱

우리 집 천장엔 수건이 대롱대롱

북극곰의 생존이 위태롭고, 지구의 기온이 올라 이상기후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남의 일처럼 생각하지 않는 남자. 나와 아이들은 그런 남자와 같이 살고 있다. 연애할 때만 해도 근검절약이 몸에 배어있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결혼 후 다양한 방식으로 환경을 생각하는 그의 모습이 툭툭 튀어나오곤 했다.


동물들이 푸른 초원에서 자유롭게 뛰며 생존해야 하는데 동물원이라는 울타리에 가두어 인간들의 재미와 수익을 꾀하는 것이 아주 불편한 남자는 동물원 반대론자다. 덕분에 아빠가 왜 동물원에 갈 수 없는지 자세히 이해하기 어려운 아이들은 엄마라도 동물원에 데려가주어 다행이라고 여긴다.


더위를 많이 타는 아내가 여름에 에어컨이 필수라고 생각하듯이 반대로 추위를 타는 이 남자는 겨울에 난방과 굉장히 친해진다. 난방 온도를 높이면 건조해지고, 감기로 이어지기가 쉬워서 집안에서도 선선하게 지내는 편인데 이 남자가 난방을 틀고 나서 다음 달 관리비를 확인함과 동시에 놀라던 모습이 옆에서 보면 흥미로웠다.


거품목욕을 즐기는 아이들에게 물을 아껴야 한다는 잔소리로 하는 말이 있다. "목욕물은 배꼽까지만 받으렴"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아빠말을 무시하고 욕조 가득 물을 찰랑찰랑 받고야 말았다. 목욕을 마치고도 아직 뜨거운 물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을 안 남자는 핫팩 물주머니에 물을 담고, 남은 물로 운동화를 빨래했다.




긴 연휴를 함께 보내며 끝도 없이 나오는 빨래에 빨래바구니는 감당을 하지 못했고, 간단하게 의류와 수건만 분류하여 세탁하기 시작했다. 세탁기에서 수건이 세탁되었다는 종료음이 울리자 이 남자는 건조기로 수건을 올리지 않고 베란다 건조대에 바지걸이로 수건을 집어 하나하나 걸기 시작했다.


저녁에 샤워를 마치고 나오는 딸아이가 급하게 수건을 찾기 시작하자 이때다 싶은 아빠는 다 말랐을법한 수건을 베란다에서 얼른 가져다주었다. 햇살에 사막같이 말라버린 수건을 얼굴에 갖다 댄 아이는 평소의 보송보송한 느낌의 수건과는 달라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수건이 왜 이래?"

"아, 건조기를 안 돌리고 햇볕에 말려서 그러지."

"건조기 있는데 왜 안 쓰고?"

"우리가 지구를 생각해야지^^"

"우리도 다른 사람들처럼 그냥 건조기 쓰고 살자."


결혼 10년 차 아내는 배우자의 어떤 발언과 행동에도 충분히 익숙해져 있었지만 아이들은 아니었던 것이다. 책 속에 나와있는 동물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고, 욕조에 물을 한가득 받아서 첨벙첨벙 물놀이를 하고 싶고, 태어날 때부터 존재했던 건조기라는 가전제품으로 보송한 수건을 만지고 싶을 것이다.


아이의 솔직한 마음에 아직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몰랐던 낯선 아빠는 그저 씁쓸한 마음이라고만 했다.


자린고비네 천장엔 굴비가 대롱대롱

우리 집 천장엔 수건이 대롱대롱

작가의 이전글 추석에도 라면이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