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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쥐방울 Oct 11. 2023

어제는 아들이 안 갔고, 오늘은 남편이 안 갔다.

"얼른 일어나! 아침 먹고 학교 가야지."

학생이 할 일은 학교를 가야 하는 것이다. 나와 동생이 학교를 가야만 엄마는 빨래를 하고, 빈집을 청소하며 살림에 보탬이 될만한 일을 할 수 있었다. 초등학생이 학교에 가지 않으면 엄마는 어질러진 집안을 정리할 수가 없고, 어린아이 둘을 내버려 둔 채 일을 하러 갈 수도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아파도 일단 학교를 가야 한다는 엄마의 신념은 조퇴를 하더라도 아이가 보건실에 들렀다 오는 시간을 벌게 되는 셈이다. 게다가 학교는 맨입으로 갈 수 없었다. 간장계란밥을 김에 싸서 몇 입이라도 먹어야만 학교로 가는 현관문이 열린다. 엄마는 그렇게 계획형 어른이셨다.


아빠는 집안의 주요 수입원을 담당했고, 조직생활에 어려움이 있어 이직이 잦으셨다. 청소년이었을 때부터 아빠는 입사 하루 만에 나온 직장부터 한두 달만 다니고 관둔 직장이 수두룩했다. 한해에 근로소득신고가 된 근무지가 여러 곳이라 5월 종합소득세 신고를 도와드리다 보니 알게 된 사실이었다.


아빠에 비하면 특별한 기술을 보유하지 않은 엄마는 쉬는 날 없이 일을 해도 수입이 많지 않았다. 아빠는 언제든지 엄마와 상의 없이 일을 그만두었지만 가부장적인 영향이었는지 엄마는 한마디 항의 없이 그저 화가 나 계셨다. 이런 일이 잦았다는 것은 엄마가 혼자 설거지하며 구시렁 욕을 해대던 뒷모습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스무 살 때까지 이런 환경에 놓이며 학습한 결과 내게 가족은 모빌 같다는 느낌이 선명했다. 부부 중 한 명이 일을 그만두면 다른 배우자가 오롯이 그 몫을 더 짊어지며 다른 사람의 역할까지 해내야 한다는 것. 자녀가 응당 제 할 일을 하지 않으면 집안은 엉망이 되고, 의식주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것을 배웠다.




길었던 연휴를 마치고 아들이 유치원에 등원하는 날이었다. 전날 늦게 잠들었던 여파인지 아침이 되었는데도 아들은 이불속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유치원 생활을 좋아하는 아이는 초등학생인 누나가 이미 등교한 시각에 조금씩 일어나서 간단히 시리얼과 우유로 아침을 먹겠다고 하자 유치원에 등원할 줄 알았다.


아이는 식사를 마치자 코를 조금 훌쩍이며 오늘은 유치원을 쉬겠다고 당당히 말했다. 충분히 가도 될 것만 같은 컨디션과 출발해도 괜찮은 시각이라 3초간 당황스러웠지만 그렇게 하자고 동의했다. 아빠가 주 5일 회사에 출근하는 것처럼 아이는 본인의 일이 유치원에 가는 것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유치원에 결석하고는 주말에만 자유롭게 하기로 약속한 게임을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세탁 후 건조된 빨래를 갤 때 아이를 불러 함께하고, 점심시간에는 수저세트를 한벌 더 차려서 함께 식사했다. 이후 아이는 혼자 만화책을 보기도 하고, 동생과 함께 블록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6년 전 배우자가 이직준비를 따로 하지 않은 채 그 당시 직장에서 여러 이유로 힘든 시간을 겪고 그만두겠다며 임신 막달인 아내에게 전화했었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싶어 동의했지만 배우자가 퇴사 예정이라는 것을 한동안 친정부모님에게 말하지 못했었다.


어릴 적 엄마가 아빠의 이직으로 수없이 겪었을 마음고생을 생각하니 어떤 걱정과 우려 섞인 말씀을 하실지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나중에 알게 된 부모님은 별다른 말씀 없이 지나가기도 했고, 배우자도 마음을 잘 회복하며 이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유치원에 하루 결석한 아들이 등원하자 이번에는 컨디션이 좋지 않은 배우자가 갑작스러운 연차를 사용했다. 출근했어야 할 배우자가 아이들이 나가는데도 이불속에 있는 것을 보던 나는 한숨을 내쉬지 않았다. 그는 컨디션을 회복하는 하루동안 나는 오늘 예정되어 있던 일상을 보내면 되는 것이었다.


아침을 각자 간단히 취향껏 챙겨 먹은 후 그가 병원에 다녀오는 동안 나는 세탁기에 빨래를 돌리고 주방을 정리했다. 장을 봐서 돌아오는 점심에 삼겹살 두줄을 구워 쌈채소를 곁들인 식사를 함께하고, 오후에는 커피 한잔씩 들고 막내와 놀이터에 함께 다녀왔다.


평소처럼 아들의 하원을 다녀오고, 저녁이 되니 배우자가 부대찌개를 준비하고 있었다. 오랜만의 평일에 다 같이 식사를 하니 오히려 출근을 하지 않아 감사한 시간이었다. 저녁에는 운동을 다녀오고 아이들이 잘 준비를 마치니 나도 브런치에 글을 쓸 수 있는 하루였다.


더 이상 가족은 모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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