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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쥐방울 Oct 14. 2023

아이의 문제는 대부분 시간으로 해결된다.

양면테이프 vs양념치킨

초등 1학년 때 어린이는 학교에서 주요 과목이 아닌 수업시간에 만들기 하는 것을 더 좋아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다. 각종 만들기 도구와 친숙하게 지낸 어린이의 책가방에는 항상 다양한 작품들이 담겨있었다. 봄에는 튤립, 어버이날에는 카네이션, 가을에는 도토리, 겨울에는 트리를 만들며 환경미화에 최선을 다했다.


진라면 순한맛으로 매운맛에 발을 들인 어린이는 로제떡볶이에 이어 치킨을 먹을 때도 양념치킨만 고집했다. 달콤한 맛의 양념부터 고추고명이 올려져 있는 브랜드까지 생수를 들이켜면서 항상 양념이 잔뜩 묻힌 닭 껍질을 찾았고, 양념치킨이 인기가 많은 날엔 후라이드를 남은 양념에 묻혀 빨간 치킨을 만들어냈다.


집에서 치킨을 주문하려던 어느 금요일 저녁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꼭 양면치킨으로 시켜주세요!"

"양념치킨?"

"네! 안되면 반반이라도요!"


치킨배달을 기다리며 색종이로 사부작사부작 만들기를 하던 아이는 동생에게 무언가 요청했다.

"누나한테 양념테이프 좀 갖다 줘."

"누나 뭐라고?"

"양! 념! 테! 이! 프!"


우렁찬 목소리로 주고받는 아이들의 대화를 당연히 들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 부부는 그저 동시에 소리 없이 입을 틀어막고 웃기 바빴다. 이게 그렇게 헷갈릴 수도 있는 건가 싶으면서도 한때려니 싶어서 굳이 지적하지 않고 귀여워하며 그 시간을 보냈다.




어느새 일 년 전의 귀여운 에피소드가 되어버린 양면치킨과 양념테이프는 아이의 머릿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전이다. 같이 마주 보며 치킨을 먹다가 혼자서 피식대며 예전일이 생각나자 아이에게 괜히 슬쩍 떠보기 시작했다.


"저기 양면치킨 엄마 하나만 줄래?"

"응, 여기."

"양념테이프는 아직 남아서 안 사도 되나?"

"응, 양면테이프 아직 있지. 왜?"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아이는 엄마가 일부러 그러는 건가 실수인가 애매모호하면서도 머릿속에서는 정확한 단어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때 크게 지적하지 않고, 귀여운 빙구미를 보이며 웃고 넘겼던 과거의 나에게 칭찬해주고 싶었다.


듣는 이에게는 굉장히 거슬릴 수 있는 부분을 지적하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웃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아이의 발언을 듣자마자 그냥 배꼽을 부여잡고 호탕하게 웃는다면 그러할 의도가 아니었더라도 아이에게 비웃는다는 오해를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태어나서 걷는 것, 배변훈련, 한글학습, 교정시력치료, 받아쓰기, 구구단 등 성장하면서 경험하게 되는 과제들은 대부분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에는 당장 잘하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은 불안감으로 큰 문제 같아 보이는 것들이 아이들의 속도는 모두 다르기에 그저 믿고 지켜봐 주면 되는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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