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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쥐방울 Oct 21. 2023

우리 집은 THE LOVE

독일의 옛이야기 <구두장이와 꼬마요정>에서 늦은 밤 가난한 구두장이 할아버지가 잠을 청하러 가면 꼬마요정들이 나타나 놀라운 솜씨를 뽐내며 날이 밝기 전까지 멋진 구두를 완성시켜 놓는다. 비슷한 요정이 우리 집에도 한 명 살고 있었는데 바로 청소하는 꼬마요정이다.




이른 아침 주방에서 시작해 주방으로 마감하는 하루는 일상적이면서도 몹시 고단하다. 덕분에 저녁 7시에 잘 떠지지 않는 눈과 무거운 몸을 핑계로 외면하는 것들이 있는데 그것은 집안 바닥에 널브러진 각종 블록들이다. 거실에서 방, 방과 방 사이를 오갈 때면 맨발이 작은 블록들을 밟지 않게 뒤꿈치를 들어가며 이동한다.


언제부터인가 깨끗하고 단정한 집을 유지하는 것은 나만이 제일 원하고 예민하게 구는 분야일 수도 있다는 핑계를 삼아 밤 9시만 되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첫째 아이를 따라 몸을 침대에 눕히며 스스로 돌보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불면증이 무엇인지 모르는 인간은 베개에 머리만 대면 눈이 스르르 감기고, 구름 같은 이불로 몸을 감싸주기까지 하면 1분 안에 현실세계에서 탈출이 가능하다. 그날도 아침형 인간인 첫째 아이 옆에서 분명 꿈나라에 있었는데 저녁형 인간인 둘째 아이의 큰 혼잣말 덕분에 일순간 현실로 복귀하며 눈을 번쩍 뜨게 되었다.


"너무 더럽다!"

"응? 뭐가?"

"집."


밤 12시. 분명히 자고 있었는데 거실에서 누군가 들으라는 듯이 높은 톤의 혼잣말에 나는 인공지능 스피커처럼 반사적으로 대답하고야 말았다. 알게 모르게 정곡을 찔린 느낌이라 자동으로 미안하다고 할뻔했지만 뻔뻔스럽게 우리가 공동으로 지내는 공간이니 다음날 밝을 때 같이 정리하자고 누워서 제안했다.


하지만 꼬마 정리요정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쏟아진 색연필을 주워 담고, 손톱보다 작은 디폼블록 제자리를 찾아주며 누나의 휴대폰을 충전케이블에 연결해 두었다. 이후 팬트리에 넣어둔 테이프 클리너로 바닥을 돌돌 문질러서 임무를 마무리하면 꼬마 청소요정도 그제야 이불속으로 쓰윽 들어간다.


다음날 아침 6시 꼬마 청소요정은 여전히 이불속이고, 아침형 인간인 첫째 아이가 일찍 일어나 달라진 집안을 보며 놀라워했다. 자는 동안 엄마가 밤새 정리한 줄 알고 나에게 고마움을 표현하자 감사인사까지 대신 받는 뻔뻔스러움을 피하고자 두 손으로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이건 밤에 잠이 오지 않은 꼬마 청소요정이 한 일이라고 정확히 공을 돌렸다. 청소 유전자가 있는듯한 꼬마 요정은 작은 체구임에도 모든 물건들을 제자리에 되돌려놓음은 물론 다섯 명의 머리카락을 테이프로 모아 휴지통에 가득 채워두며 모델하우스 같은 집을 만들어냈다.


더럽다고 느낀 꼬마요정이 불평만 쏟아내지 않고 직접 실천해 준 결과 사랑스러운 우리 집이 된 것이다. 오늘은 고마운 꼬마 청소요정에게 보답하고자 체력관리에 성공하여 저녁행 놀이터에 다녀왔다.

꼬마 청소요정은 the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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