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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쥐방울 Oct 28. 2023

요리실력이 줄어드는 느낌적인 느낌

고마운 꼬마요리사

엄마는 눈감고도 어떤 요리든 뚝딱 해내실 수 있는 전라도 출신의 여성이다. 어릴 적 그런 엄마와 함께 돼지고기를 밀가루와 계란물에 묻히고 빵가루까지 입혀 돈가스를 만들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한데 아이러니하게도 엄마는 내가 청소년이 되어갈수록 결혼하면 실컷 할 테니 지금은 엄마가 해주는 거 먹으라고 말씀해 주셨다.


엄마의 요리는 전혀 계량화 되어있지 않았고, 미각이 둔감한 사람으로서 눈대중으로 대강 본 것을 흉내내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결혼 후 구입한 첫 도서는 가장 쉽고 따라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요리책. 이후 유튜브 플랫폼의 시대에서는 백종원님과 하루한끼님의 업로드 영상 덕분에 메뉴를 고민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요리실력 최고조에 달했던 결혼 1년 차. 거의 주말에만 해 먹던 집밥이었지만 임신 8개월부터 휴직에 들어간 덕분에 낮에 많은 시간을 주방에서 보낼 수 있었다. 배우자가 좋아하던 장아찌를 마늘, 고추, 양파 등 종류별로 담가두고 닭고기 정육을 구입해서 닭갈비를 요리해 직접 식탁에 올리는 놀라움을 선보였었다.


결혼 2년 차에 첫 아이가 태어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주방은 젖병을 씻고, 이유식을 준비할 때만 들어갈 뿐 내 끼니를 준비하기 위해 주방에 있는 것은 사치라고 생각되었다. 어느덧 아이는 둘에 이어 셋이 되었고, 배우자는 육아보다 주방행을 택했다.



그렇게 주방은 배우자의 요구사항이 들어오는 때와 필요에 의해 최소한의 시간만 있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엄마의 손맛으로 사업해 주시는 반찬가게와 각종 맛집이 우리 집 앞까지 배달되는 여러 어플 덕분에 높은 삶의 질을 유지하다가도 처치곤란 혹은 신상 식재료 덕분에 주방에서 새로운 음식이 탄생하기도 했다.


넘치는 감자와 양파를 계란물로 뒤집어 씌워 핫케이크 같은 비주얼로 내놓아도 탈락. 단호박이 나오는 제철에 대량 구입해서 새롭게 시도해 본 에그슬럿도 탈락. 채소식단을 위해 정기적으로 배송받던 야채상자에서 토마토로 요리한 스파게티를 맛보고 아이는 친절하지만 정확한 피드백을 주었다.

엄마 다음에 스파게티 소스는 사서 해 먹어요.



이후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보는 것에 대해서는 내가 먹는 것이라고 생각할 때 시도하거나 아이들에게 내어준다고 생각되면 어쩐지 조금 망설여지게 되었다. 엄마와 달리 요리에 관심이 많은 어린이는 올해 새로운 방과후활동인 요리수업을 등록하게 되었고, 덕분에 다채로우면서 맛있는 음식을 맛볼 수 있었다.


만드는 기쁨을 알고 있는 어린이는 안타깝지만 아직 맛보고 싶지 않은 재료들이 곳곳에 들어있었는데 그것은 모두 엄마의 허기를 채워주었다. 토마토가 담긴 샌드위치, 올리브가 들어있는 토르티야 피자, 호두가 들어있는 초코칩 쿠키 모두 눈과 입을 모두 만족시킨 최고의 요리였다.


공개수업에서 만들었던 캐릭터 도시락과 생크림 크로와상, 돼지모양 유부초밥은 동생들까지 만족시켜 가족들이 아이가 요리하는 요일만 기다리는 기이한 현상도 벌어졌다. 3개월 12번의 수업동안 수강료 78,840원과 재료비 72,000원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최근 진행했던 요리인 초코칩 쿠키는 상자에 5인가족이 먹을 만큼 넉넉한 양이길래 재료비로 모두 감당이 되실지 염려되는 혼잣말을 하기도 했다. 그러자 아이는 포장은 각자 하고 싶은 만큼 하는 것이었다며 동생들과 엄마아빠를 모두 나눠주고 싶어서 12개나 포장했다고 전해주었다.


어린이는 요리하는 과정도 가족들 입에 들어가는 결과물도 모두 기쁨인 꼬마요리사였다. 나조차 한 번도 구워보지 않은 핸드메이드 쿠키를 기쁜 마음으로 맛있게 먹으면서 자꾸만 떠오른다. 닭갈비는 포장하고, 장아찌는 사서 먹지만 나도 뭔가 잘하는 게 따로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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