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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쥐방울 Nov 01. 2023

반에서 딱 2명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당시 엄마로서는 스마트폰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간혹 세 아이와 가끔 근거리 외출을 시도하던 배우자는 때때로 버거웠는지 아이의 스마트폰 구입을 쉽게 허용해 주었다. 이후 배우자는 아이와 언제든 연락 가능하기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고, 아이의 셀프 놀이터행도 잦아졌다.


가정의 여건상 초등 1학년 아이에게 스마트폰이 꼭 필요한 상황은 아니었기에 평일에는 집전화나 다름없었다.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스마트폰으로 맞추어놓은 알람을 끈 이후에는 학교와 학원에 있을 때에도 스마트폰은 집 충전기에 꽂혀있다.


아이가 하교 후 놀이터에서 놀고 싶다면 집에 와서 가방을 던지듯이 말하면 바로 갈 수 있다. 혹시 그조차 급한 상황이라면 친구의 휴대전화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허락을 구하기도 했다. 어린이는 하루 일정이 대략 마무리되면 엄마아빠와 정해놓은 규칙대로 시간을 정해서 스마트폰으로 유튜브키즈 영상을 잠시 시청한다.


이외에 아이가 사용하는 스마트폰 기능은 주로 셀프카메라와 퇴근이 늦는 아빠에게 이모티콘 폭탄 날리기 등이다. 아이에게는 엄마나 아빠와 문자, 전화 혹은 친구들과 연락처를 공유하기 위한 스마트폰이었지만 꽤 많은 어린이들이 집 밖에서도 스마트폰과 거의 한 몸이라는 사실을 알고 놀라웠다.


하교 후 친구와 걸어오다가 친구의 전화기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본인의 스마트폰을 학교에 두고 왔다는 어린이. 학원과 학원을 오가는 짧은 시간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느라 거북목이 일상인 어린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는 순간에도 좋아하는 영상이나 유튜브 쇼츠를 보며 자극을 쫒는 어린이들.


1학년 2학기에는 반에서 스마트폰이 없는 아이가 2명뿐이라는 것을 알고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이미 내 아이도 있는 현실에 더 이상의 부연은 어리석다고 느꼈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어린이의 대다수는 어른의 축소판에 불과했다. 그저 지나가는 어린이를 보고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척추를 펼 수밖에 없었다.


© mycreate, 출처 Unsplash


얼마 전 오랜만에 방문해 주신 친정부모님은 이제 육아의 한가운데가 아닌 꽤 떨어진 거리에서 아이를 가끔 보시기에 아이들의 예쁘고 사랑스러운 모습만 더욱 눈에 담아 가시는 듯했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은 조부모에게 해당되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은 과장일 수 있지만 3040의 현실로 느껴졌다.


그중에서도 완벽할 것만 같은 첫째 아이의 일상이 궁금하셨는지 요즘은 어떤 학원을 다니며 무엇을 배우는지 물어보셨다. 저학년 아이는 예체능 계열 학원에 취미생활처럼 일주일에 1~2번 가는 게 전부였다. 주요 교과목에 대한 학원이 나오지 않자 아이에게 반에서 영어학원을 안 다니는 사람도 있는지 궁금해하셨다.


우리 반에서 영어학원 안 다니는 아이는 2명 있어요.


그 2명 중에 발언한 어린이도 포함이었다. 질문을 하시니 대답을 한다는 느낌으로 맑은 톤이지만 아무런 감정 없이 아이는 답변했다. 반면 요즘 현실에 더욱 놀라신 부모님은 학원비가 없어서 그러는 거냐며 할아버지가 학원비를 지원해 주겠다는 말씀까지 꺼내셨다.


초등 2학년인 지금 아이와 비슷한 시기에 영어학원을 소규모부터 시작해서 초등 내내 대형 어학원에 보내주셨던 부모님은 전혀 이해하기 어려우셨을 대목이었다. 어릴 적 어려운 형편에 자식만큼은 제대로 부족하지 않은 교육을 시켜주리라는 마음에 아이들은 무조건 감사함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하셨다.


할아버지의 발언에 누구보다 어리둥절한 사람은 어린이였다.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니 안 되겠다 싶은 마음에 한마디로 분위기 전환을 시도했다. "아이가 영어학원 다니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믿기 어려운 친정아빠는 한 번 더 아이에게 확인을 하셨고, 그제야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나 언제든 다수에 속할 때도 있고, 소수에 속할 때도 있다. 특히 어린 시절에는 다수에 속하지 못해서 마음이 힘들었다. 지금이라고 전혀 의식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소수에 속해 있어도 오히려 마음이 편안하다. 소수에 속하는 사람이 나 아닌 타인이라도 그 자체를 인정해 줄 수 있는 사회이길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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