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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쥐방울 Nov 08. 2023

엄마의 훈육보다 서러운 것

저녁형 어린이의 몸과 정신이 가장 활성화되는 때는 바로 저녁 식사 이후의 시간이다. 주방을 마감하고 취침 전까지 정적인 활동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은 엄마의 마음과는 대조적이다. 결국 이날도 아들에게 안방 퀸사이즈 침대를 트램펄린처럼 내어주고, 나는 거실에 있는 것을 택했다.


미세한 소리만 들리는데 보지 않고도 오빠가 뭐하는지 알 수 있는 동생은 함박미소를 지으며 오빠에게 달려갔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언니와 오빠의 행동을 복사해서 붙여 넣기 하는 막내다. 어찌 되었든 핑! 퐁! 두 명이 신나게 놀고 있으니 그들도 좋고, 나도 좋았다.


그러나 한 명보다는 여럿일 때 시너지가 더 나는 법. 아들은 더 강한 자극을 추구하고자 침대 헤드 위로 올라서서 매트리스로 앞 구르기와 뒷구르기하는 모습을 동생에게 보여주었다. 그의 동생은 단번에 동작을 캐치해서 곧장 어렵지 않게 따라 할 수 있었다.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웃느라 영혼이 반쯤 빠져나간 것 같은 순간 사건은 발생했다. 구를 공간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고 몸이 앞선 아들이 동생의 얼굴 위로 떨어지면서 울음바다가 되었다. 위험한 상황이 되어 진정시키고자 놀이를 중단시켰고, 좀 전 행동을 당장은 지속할 수 없다고 말해주었다.


그러자 침대에서는 더 이상 뛰지 말라고 받아들인 아들이 이번에는 침대 바로 옆 매트도 깔려있지 않은 바닥에서 뛰기 시작했다. 우리는 공동주택에 거주하며 더구나 늦은 저녁시간이기에 당장 안된다고 멈춰달라고 요청했다. 순간 아이가 원하는 여러 상황을 엄마는 모두 안된다고만 한다고 생각할 것 같았다.


그래서 진지한 태도로 아이에게 물었다.

"엄마가 언제 안된다고 하는 것 같아?"

아이는 좀 전의 상황을 기억해 내며 말했다.


안타깝지만 아들은 엄마와 7년째 거주 중임에도 여전히 파악하지 못했다. 이전에도 꽤 여러 번 아이들에게 엄마가 'NO'라고 하는 순간을 미리 일러주었지만 아들은 기억하지 않았다. 최대한 침착하게 아들의 눈을 보고 엄마는 딱 두 가지 경우에만 안된다고 말한다며 알려주었다.


위험한 상황일 때 안 돼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 안 돼요.


아이는 알려주지 않아도 듣고 따라 해야 한다는 것을 분위기로 알아챘다. 엄마가 선창 하면 아이는 복창하기를 약 3회 반복했고, 다시 질문하자 아이는 두 가지 중 한 가지만 겨우 대답해 냈다. 목소리를 한 톤 높여서 다시 2번 말해주자 아이는 오래 걸렸지만 기억해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고 일어나면 엄마한테 혼났다는 기억만 남을 것 같은 찝찝한 기분이었다. 이때 기억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오감을 활용한다는 것이 떠올랐다. 듣고, 말하기를 했으니 뇌가 더 잘 기억하기 위해서 스케치북에 한번 써보자고 제안했다.



스케치북에 연필을 들고 한 자 한 자 쓰기 시작한 것 같은데 10분이 지나도 아이는 오지 않았다. 무슨 일인가 싶어 다가가보니 슬픈 얼굴을 하며 훌쩍이고 있었다. 조심스레 이유를 물으니 만 5세 어린이는 글자를 정확히 몰라서 쓰는 게 어려웠다고 했다.


그저 상황이 귀여워서 웃으며 안아주고 싶었지만 다시 단호하고 친절하게 말했다. 지금 중요한 건 내용이지 맞춤법이 아니니까 우리만 알아볼 수 있으면 된다고 마무리했다. 들리는 대로 또박또박 써온 아이의 문장을 보고 나는 찰떡같이 낭독했고, 고생했다고 전해주었다.




실제 엄마로서 일관성 있는 태도를 보이고자 그 외의 모든 것에 대해서는 허용해 주려고 노력 중이다. 아들이 아무런 이유 없이 유치원을 가지 않겠다고 하면 정말 같이 쉬기도 하고, 딸이 수액을 처방받았지만 극도로 거부하며 맞지 않겠다고 하면 생명에 지장이 있지 않은 한 약만 받아서 온 적도 있었다.


다음날, 저녁형 어린이가 즐거운 웃음소리를 뿜어내는 장소는 욕실이었다. 바디워시를 반통쯤 부은 욕조에 따뜻한 물을 가득 받아 거품 목욕을 즐기면서 물총과 비눗방울을 번갈아 사용 중이었다. 상황을 파악하려 욕실 앞으로 가보니 걸려있던 두루마리 휴지는 다 젖었고, 욕실 바닥도 거품으로 미끄러워 보였다.


여전히 웃고 있는 아이에게 물었다.

"엄마가 뭐라고 할거 같니?"

아이는 눈알을 열심히 굴리며 생각 중이었다.

"음?"

"잘 생각해 봐."

"잘했다고요^^"

"응, 그래 잘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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