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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쥐방울 Nov 15. 2023

남편의 김장은 장모님과 함께

입동 무렵, 아침에 출근한 배우자로부터 끊임없이 메시지가 도착했다. 요지는 김장을 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다섯 포기 정도 해보고 싶다는 의견은 아직 김치의 참맛을 모르는 아이들을 감안해서 두 달에 한 포기가량 먹는 부부의 평소 양을 보았을 때 일 년 정도 먹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 같았다.



나물반찬조차 어려워하는 내가 김치를 직접 만들어볼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 그러나 나와 다른 남편은 시도해보고 싶다니 굳이 말릴 것까지는 없지만 일이 더 진행되기 전에 가장 중요한 것부터 물었다.

"여보가 담그는 건가요?"


요리에 관심이 있는 딸과 함께 해보겠다는 남편이 이번 김장의 주도자로 확실해지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이후 나와 마찬가지로 김장경력이 제로인 남편의 메시지는 계속되었다. 재료가 무엇인지 모르는 그는 회사에서 계속 검색을 하며 필요한 것들을 실시간으로 요청했다.


배추와 무는 기본이고 강판과 채칼까지 사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곳저곳 가격을 비교하고, 후기를 살펴보던 그는 버거웠는지 뜬금없는 제안을 했다.

"우리 그냥 모든 것이 다 있는 장모님네서 김장하면 어때요?"


염치없어 보일까 1% 정도 우려하던 남편은 장난스레 웃으며 말했지만 진심이었다. 며칠뒤 엄마께 전화로 상황을 설명하자 흔쾌히 허락해 주신 덕분에 주말에 친정행이 확정되었다. 그리고 남편은 김장 노하우를 전수받을 생각에 아주 기뻐했다.


드디어 고대하던 주말 아침이 되었고, 제일 먼저 절임배추를 구입하기 위해 하나로마트로 향했다. 결혼 전에는 엄마의 심부름으로 결혼 후에는 김장철에 연 1회 방문하던 마트는 아침부터 북적였다. 엄마는 어떤 게 좋은지 모르면 제일 비싼 걸 사라고 조언했다. 덕분에 우리는 가장 비싼 절임배추 10kg를 구입했다.



전날밤에 김장이 무엇인지 유튜브로 미리 예습해 간 남편은 모든 재료를 썰고 버무리기 시작했다. 그의 옆자리는 김치를 먹지 않지만 요리를 좋아하는 어린이가 차지했다. 쪽파도 나란히 앉아서 쫑쫑 썰고, 노란 배추에 빨간 양념도 사이좋게 버무렸다. 한 포기정도 하고 힘들어서 멈출 것을 예상했던 어린이는 끝까지 함께했다.


그러는 동안 김치도 싫어하고, 요리에도 관심 없는 두 명의 어린이는 보쌈 먹는 시간만을 기다리며 집 안과 밖을 오가며 놀고 있었다. 지나가면서 남편이 배춧잎 한 장 한 장을 빨갛게 컬러링 하는 모습을 보게 된 나는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해외에 거주해도 이 남자라면 김치를 해 먹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더 신기한 점은 남편과 첫째 아이 그리고 친정엄마 이렇게 셋이서 도란도란 정성껏 김장하는 모습을 보는데도 전혀 시도해보고 싶지 않은 나 자신이었다. 우리는 각자 행복했고, 김치는 정말 맛있었다.

그들만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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