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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쥐방울 Dec 03. 2022

나만 불편했던 것

그날따라 망할 옷걸이가 거슬렸다.

5년 정도 만나고 결혼했으니 서로에 대해 알건 다 안다고 생각했다.

결혼을 하니 심화 영화를 볼 수 있고, 서로가 일을 쉬는 주말에는 집이 데이트 장소가 되니 더없이 좋았다.

취미가 게임이었던 그남자가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으면 그 옆에서 나는 책을 보곤 했다.

서로의 취미가 온전히 보장된 채 10개월이 흘렀고, 육아가 시작되었다.


첫 아이가 태어나고 집에서 신생아를 돌보면서도 그남자의 셔츠를 다림질하고, 아기 옷을 삶으며 낮에 전쟁을 치르고 그남자와 마찬가지로 밤에는 육아 퇴근을 꿈꾸었다.


육아를 하며 많은 집안일 중 빨래 후 건조대에 널어야 하는 것을 분담하고자 그남자에게 매번 부탁하는척하며 시킬 수밖에 없었다.

둘째가 태어나고도 그남자의 돌아오는 답변은 '나중에' 혹은 '지금은 어려운데' 따위의 말뿐이라 건조기 구입을 결심했다.


셋째가 태어나고는 그남자의 셔츠를 다림질하는 행위 따위는 없다.

빳빳한 셔츠를 원한다면 본인이 해야 하고, 이제는 각자도생이다.

손에 한포진으로 응급실까지 찾아야 할 지경이 되니 친정엄마는 식기세척기를 사주셨고, 설거지를 부탁하는 횟수도 덕분에 현저히 줄어들 수 있었다.




이제 웬만한 것은 현대문명의 발달로 큰 도움을 받고 있는 중이다.

그렇지만 집안일이라는 것이 사람 손이 가야만 하는 아주 사소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지라 끝이 없다.

김치 썰어 통에 넣어놓기.

빨래 개어서 서랍에 넣기.

놀잇감, 책 등 제자리 찾아주기.

아이들 책 읽어주기.

식사와 간식 수시로 차리고 치우기.

장보기와 쓰레기 분리.

초등학생 준비물 챙기고 서류 확인.

학부모 상담 및 아이가 해야 할 일 같이 확인하기.

휴지 떨어지면 채우고, 욕실 청소 등등등

회사라면 온갖 잡무를 담당하는 막내가 하는 일부터 고위급 재무담당자 역할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그렇게 그날도 몸이 10개라도 부족한 것처럼 집안에서 뛰는지 걷는지 알 수 없는 그 중간 정도의 빠르기로 부지런히 움직이며 세탁이 다 된 옷을 옷걸이에 걸고 있었다.

평소 옷장에 걸려있는 옷을 빼고 나면 빈 옷걸이를 한쪽에 몰아서 걸어두는 편이었다.

내 옷장이든 그 남자의 옷장이든.

그런 몇 초의 여유도 없을 무렵, 그남자에게 이 정도는 부탁해보아도 되겠지 싶은 마음이 불쑥 올라왔다.


그여자

"여보, 옷을 빼면 옷걸이를 아래 한쪽으로 좀 옮겨놔 줄래요?"

별거 아닌 거라 신혼 때부터 내가 쭉 해왔던 것이고, 지금은 세 아이를 육아하면서 이 정도 사소한 것은 부탁해도 되겠지 싶은 마음이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당연히 알겠다고 말하며 상황이 종료되고, 고민했던 내 마음도 깨끗해질 것을 예상했다.

 

그남자

"그걸 왜 해야 하지? 난 옷을 뺀 그 자리에 빈 옷걸이가 있어도 괜찮은데?"


그여자

'오 마이 갓'

여태 나는 원하지도 않은 일을 하고 있었고, 옷 사이에 빈 옷걸이가 이렇게나 많이 걸려있는데 거슬리지 않을 수가 있구나!!!

"아 그게 전혀 불편하지 않아??? 그렇구나..." 




연애 5년 결혼생활 5년, 총 이 사람을 알게 된 지 10년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누가 내 뒤통수를 치는 것처럼 이런 사소한 것도 다르고 이것이 진짜 결혼생활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우리 집 수많은 옷걸이는 그 이후 아주 자유로웠다.

걸린 옷 사이로 보이지 않게 몇 개씩 숨바꼭질할 때도 있었고, 한쪽 구석에 가지런히 있을 때도 있다.

그 이후로도 내가 불편하다고 느낀 것은 나만 불편하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육아하기 이전의 내가 알고 있던 그남자에 대한 모든 것은 내 마음이 평화로웠을 때이다.

상대를 바꾸려고 하지 않고, 다름을 인정하며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려면 내 마음이 평화로워야 했다.

마음의 평화를 위해 아주 가끔이지만 운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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