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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쥐방울 Jul 08. 2024

나의 예민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들

수영강습을 마치고 나오는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멀리서 아이들 실루엣이 보이자 평소보다 마무리를 빠르게 한 줄로만 알고 맞이할 준비를 했다. 손을 흔들며 가까이 마주하자 표정들이 심상치 않았다. 한 명은 머리를 아예 말리지 않은 건지 물기를 그대로 머금고 있었고, 한 명은 부은 눈에 수경자국이 그대로였다.


"엄마, 저 수영 그만할래요."

"저도요."


만나자마자 한다는 말이 그만두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이번달 강습 첫날에 나온 말이었다. 물론 표면적인 이유는 있었다. 이번달부터 새로 바뀐 강사님이 이전 강사님에 비해 친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속히 온몸으로 수영을 털어내버리고 싶어 하는 아이들 앞에서 나는 이상하리만치 조금의 설득할 여지도 남겨두지 않았다.


"그래, 그만하자."


진심이었다. 정말로 그렇게 할 마음이었고, 아이들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 다음날 오전에 홀로 방문해서 위약금을 물고 환불을 받을 작정이었다. 대신 아이들이 대충 내놓은 그만두기 위한 이유 말고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우선 집으로 가서 맛있는 저녁식사를 먹이기로 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메뉴로 저녁을 배불리 먹인 뒤 평소와 다른 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집안에도 드디어 평화가 찾아왔고, 안방에서 책을 보는 척하며 첫째 아이를 조용히 불렀다. 수영을 그만두겠다고 내일 알릴 예정인데 그전에 마지막으로 확인할 것이 있어서 몇 가지 묻고 싶다며 대화의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


충동적인 결정으로 후회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지, 혹시 1%라도 있다면 며칠 더 생각해보고 싶지는 않은지 물었다. 정말로 바뀐 선생님이 친절하지 않아서라면 다른 시간대의 다른 강사님이라면 어떤지도 질문하자 아이는 그동안 한 번도 말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 입을 열었다.


"그게, 사실..."


락커룸에 계신 직원분은 아이들이 수영을 마치고 나오면 항상 집에 가기 전에 안아주신다고 했다. 그런데 옷을 입고 있든, 입지 않고 있든 과도한 친절을 베풀어주시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진 아이는 어느 날부터 그분을 피해서 로션을 바르지 않거나 머리를 아예 말리지 않고 후다닥 나와버린 것이었다.


게다가 아이를 안아주시는 모습을 본 다른 성인 회원들에게는 수영장에서 맺은 아이라고까지 표현하셨으니 아이에게는 머릿속에 물음표만 생겼을 테다. 예쁘게만 비쳤을 그 모습들이 아이에게는 자신의 감정을 더욱 드러내면 안 되는 것으로 받아들였고, 수영이 그나마 좋았기에 지속했을 것이다.


그런데 새로 바뀐 수영 강사님으로 인해 그나마 좋았던 수영의 끈을 놓아버리고 싶으니 지속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던 모양이었다. 따로 묻지 않았으면 아마 평생 듣지 못했을 이야기였다. 대화를 마치자 아이는 그동안 혼자 마음에 담아두었었는지 엄마한테 다 말하고 나니 속이 시원하다고 표현했다.


이어서 동생이 그만두고자 하는 이유를 혹시 알고 있는지 묻자 비밀이라고 말하며 목소리가 작아졌다. 처음 오신 강사님은 아이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는데 음파가 잘 되지 않는다며 계속 다그치자 아이는 눈물이 났고, 운다고 되는 게 아니라며 말씀하신 모습이 옆에서 보기에도 무섭게 느껴졌다고 해석해 주었다.


2차 성장이 형성되는 사춘기를 앞둔 아이들은 영화 <인사이드 아웃 2>에 등장한 새로운 캐릭터들처럼 낯선 감정들이 몽글몽글 피어오르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동시간대 강습을 받고 나오는 다른 아이들의 모습은 평소와 다를 바 없었으며 직원이 안아주어도 별다르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첫째 아이가 언급해 주었다.


다음날 오전, 아이들이 등교와 등원을 완료하자마자 찾아간 수영장 데스크에 환불을 요청드렸다. 개인사유로 진행하니 위약금과 일할 사용료를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환불받는 것은 당연했다. 형식적으로 여쭤보시는 환불사유에 4월에 등록한 아이가 7월인데 계속 강사님이 바뀌어 세 번째 강사님이라고만 답변했다.




정확히 몇 학년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초등학교 시절 집 근처 소규모 영어학원에 엄마가 보내주신 기억이 있다. 영어학원 남자 선생님의 생김새가 이상하게도 지금까지 또렷하게 기억나는데 더 생생한 것은 자리에 앉아있는 아이들을 돌아가면서 등을 쓰다듬어 주신 행동이다.


잘했으니 격려나 칭찬의 의미로 해주셨을 것이고, 영어권에서는 이상하지 않은 스킨십이 여성용 속옷을 막 착용하는 소녀의 입장에서는 무척 낯설고 이상했던 기억이 난다. 특별한 원인을 내세워서 그만두고 싶다고 말할 수 없었던 내 어린 시절이 습자지처럼 겹쳐 떠올랐다.


그랬던 청소년이 어느덧 아이들을 양육하는 어미가 되어 이제 등록도 취소도 곧잘 하는 어른이 되었다. 그저 무디게 느끼는 보통의 어린이들이 다 가고, 이 아이들이 나에게 온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느꼈다. 육아 10년 차는 아이들이 느낀 것을 공감할 수 있고, 어느새 모든 것에 대응할 수 있었다.


나의 아이들이 예민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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