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끈 못 묶는 여자

by 쥐방울

미리 고백하자면, 나는 신발끈 못 묶는 여자다.



신발끈 이야기를 쓰려고 마음먹은 날 신발끈이 풀려버렸다.



얼마 전 MBC 예능프로그램 라디오스타 798회에서는 배우 이민정 님이 출연하셔서 결혼 전부터 생각해 오신 이상형을 말씀하셨다.

이민정 님의 이상형은 예전부터 '병뚜껑 잘 따는 사람'이었고, 우연치 않은 기회로 지금의 배우자이신 이병헌 님의 놀라운 병 따기 솜씨를 보게 되어 다행히도 이상형에 부합되었다는 놀라운 일화를 듣게 되었다.


너무 우스워서 배우자 말고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나의 이상형은 '신발끈 잘 묶는 사람'이었다.

손에서 시작해서 손으로 끝나는 신발끈 묶기는 어릴 적에도 부모님이 하시는 것을 보고 따라 시도해 보았지만, 내 속도를 기다려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렇게 일명 똥손으로 합리화하며 어른이 되었다.

(온라인에서 유행된 똥손의 비슷한 의미로는 흙손이나 앞발 등이 있으며, 반대의 의미는 금손이다.)


신발끈이 미래의 배우자와 같은 선상에 떠올려질 만큼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앞날을 함께할 사람으로서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며 행복을 꿈꾸길 바라기에 아마 이민정 님도 유사한 의미로 말씀하셨으리라 생각된다.




배우자와 신발끈을 엮어서 하나의 에피소드로 끝나려나 싶었는데, 신간을 통해 알게 된 EBS강사정승익TV라는 유튜브 채널에서 한 영상을 접하고 똥손의 문제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영상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신발끈을 못 매는 어른이 있다?

정승익 EBS영어강사는 임용 이후 공군 학사로 군대를 다녀오셨는데, 그곳에서 대학까지 공부를 꽤나 해왔던 전문직이신 분들이 군화의 신발끈을 못 매는 것을 보고 많이 놀라셨다는 내용이었다.


중학생시절에 가장 난감했던 과목은 [기술과 가정] 중에서도 '가정'이었다.

십자수, 뜨개질은 물론 성냥으로 초에 불 붙이기 등 살아가면서 사소한 것이지만 이렇게 발전이 없을 수가 있나 싶을 정도였다.

신발끈 역시 어릴 적에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았지만, 20대 이후 여성의 신발 종류에는 구두부터 단화, 부츠, 슬랙스 등 아주 다양했기에 특별히 걱정되지는 않았다.

운동화가 꼭 필요하다면 신발끈이 아닌 벨크로 테이프라는 유형도 있으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렇지만 영상에서 언급된 군대를 일정기간 거쳐야만 하는 대한민국의 남자라면 이야기가 다를 것 같았다.

군인에게 군화란 전투 시 정말로 중요한 기본피복이고, 전투복 가운데에서도 가장 중요한 부위이기에 신발끈은 어쩌면 생존과도 직결된 문제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남자였다면 사회 속에서 번듯한 사람인척 살아가겠지만, 특수한 상황에서 신발끈도 못 묶는 자립이 덜된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 분명하다.

아무리 손재주가 없는 사람이더라도 꾸준히 시도하고 노력해 보면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모습은 아닐지라도 기본적인 신발끈 묶기는 하지 않았을까 싶다.


자녀를 양육하며 도움을 요청하기 전까지는 기다려주고, 실패를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생각하게끔 만드는 부분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실천으로 이어지기까지 어려웠다.

성인이 되어 건강하게 자립할 아이들을 떠올리며 매일 실패를 밑거름 삼아 마음을 재정비한다.

나를 닮아 꽤나 오래 걸리겠지만, 아이들이 이렇게 외칠 날을 상상해 본다.

'새로운 능력이 +1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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