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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쥐방울 Feb 01. 2023

아빠의 자동차 사고접수

아빠도 처음이었다.

만 65세 닭띠. 전라도 목포에서 나고 자라 결혼하면서 경기도로 올라와 기술자로 쭉 살아오셨다.

목포 전화국에서 근무하신 덕분에 도시에서 기술로 먹고사는 일이 그나마 벌이가 좋으셔서 목욕탕 기관실에서 기계, 전기, 소방 등 실무를 섭렵하셨다. 이후 더 나은 곳으로 이직을 위해서 국가기술자격증이 필요하다고 느끼셨는지 관련 자격증을 밑바닥부터 하나씩 취득하시고, 지금은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기술사만 남겨놓으신 상황이다. 내가 기억조차 못할 아주 어릴 적부터 아빠는 엄마가 싸주신 도시락을 챙겨서 동네 도서관으로 향하셨다고 들었다. 나의 10대는 가족과 저녁이 있는 삶이 아닌, 집에서 거의 공부하시는 모습을 보고 자랐을 뿐이다.


자연스레 대화가 없는 침묵 속의 가정에서는 부녀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겼다. 평생을 잘 살아보려고, 잘 키워보려고 본인이 생각하신 방안으로 노력해 오신 동안 가정을 넘어서 사회와도 벽이 생긴듯했다.


집집마다 존재했던 유선전화가 사라지고, 휴대폰이 생기며 전 국민이 스마트폰을 쓰는 대한민국.

치솟는 물가와 인건비로 가게마다 존재했던 직원은 줄어들고, 이제는 무인점포와 키오스크를 흔히 볼 수 있다. 커다란 스크린으로 무장한 기계 앞에 선 아빠는 다양한 결제방식과 알아들을 수 없는 팝업 화면에 직원의 도움을 받거나 다시 가게를 되돌아 나오는 일도 흔했다.


기억하는 한 최초의 집은 커다란 원룸이었다. 이후에는 연립주택, 그다음은 3룸의 연립주택이었다. 공동주택은 내가 20살이 넘어서 제안한 최초의 주거환경이었다. 한번 자리 잡으면 10년은 기본이었다. 그에 반해 가정을 꾸린 딸은 결혼 10년 차에 4번째 집이다. 부동산에 관심을 두고 임차인과 매수인으로 살며 주거지를 옮기다 보니 생긴 결과였다. 부동산에서 중요한 대출과 여러 조건들을 묻기 위해 이제는 거꾸로 질문을 받는다. 더구나 부동산계약체결도 전자결제시스템이라니 주기적으로 당황스러우실 뿐이다.



아침 7시 30분 오랜만에 아빠로부터 카톡으로 사진과 함께 전화가 왔다. 엄마는 딸이 신경 쓰일까 봐 전화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래도 아빠는 전화하셨다고 했다. 아침 출근길에 작은 사고가 있었는데, 보험회사를 불러야 하냐는 질문이었다. 신호를 대기하다 경사진 도로에서 잠깐 방심한 탓에 차가 뒤로 밀려 벌어진 일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다친 사람은 없었고, 상대방의 차도 번호판 테두리 정도가 탈락된 경미한 접촉사고였다. 일평생 무사고 인생이었던 본인은 피해자 입장이어도 항상 그냥 보내드렸던 분이셔서 상대방 차주가 보험회사를 부르라는 말에 망설이셨다고 했다.


스마트폰이 있으시지만 전화와 문자만 사용하기에 카메라로 현장을 찍으실 줄을 몰라 도움을 받았다고 하셨다. 망설이는 모습에 상대방 차주는 전화번호를 건네받고도 경찰서에 가지 않아도 되냐고 재차 물어서 나에게 그 의미가 무엇인지 묻고 답해드렸다. 당연히 보험회사를 빠르게 불러서 사고접수를 하는 게 맞고, 우리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고 길게 말하고 싶었지만 최대한 짧게 말씀드렸다.


그렇게 한 시간 넘게 연락이 오고 갔는데 점심시간에 또 연락이 왔다. 상대방 차량이 수입차라 공식 정비소에 들어가는 것보다 보험사에서 현금으로 합의를 하는 게 나을듯하다며 그렇게 처리하겠다고 연락을 받으신 것이다. 이런 경우를 또 처음 접하신지라 이럴 수가 있는 건지 한껏 상기된 목소리에 그러한 사례도 있을 수 있다고 말씀드렸다.




빠르게 급변하는 시대 속에 아빠는 업무와 관련된 일이 아니라면 처음 겪는 일이 많으셨다.

아마 앞으로는 더 빈번할 것이다.


30대인 나는 치과에 가는 것을 무척 두렵고 싫어한다. 가야 할 생각만 하면 식욕이 급감하고 심장이 너무 뛰어서 아이들처럼 어린이 치과에 가고 싶을 지경이다. 치과 베드에 누워있는 동안 내 손을 누군가 잡아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60대가 되어도 비슷할듯한데, 아마 아빠도 이런 마음이셨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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