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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쥐방울 Feb 08. 2023

능력은 욕망과 함께 와주길

상상의 나래

초등저학년 시기에 엄마는 일찍 하교하는 어린이를 위해 학원을 보내주셨다. 미술, 음악, 웅변과 함께 속셈학원을 다녔던 기억이 있다. 20년도 지난 기억들이라 당연히 그곳들에 대한 자세한 기억은 많이 남아있지 않고 대부분 한 장면들로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는 듯하다. 미술학원은 엄마가 집에만 있으면 심심하니 보내주시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기억이 남아있다. 음악학원은 레슨을 받고 정해진 연습을 했는데도 원생수에 비해 선생님이 부족했는지 선생님을 하염없이 기다렸던 장면. 웅변은 지역 예술회관에서 투피스 정장을 입고 발표를 했던 장면. 마지막 속셈학원에서는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배웠는지는 전혀 떠오르지 않고, 나의 수업시간보다 훨씬 미리 가서 어린 친구들의 과제를 도우며 무언가 알려주던 나의 모습이 CCTV에 찍힌 것처럼 남아있다.

그때부터 초등시절 내내 장래희망 칸에는 교사라고 적었다. 그 직업은 가져본 적 없지만 20대에 과외를 하면서 어린 시절 동경하고 꿈꿔왔던 것에 대해 살짝 발을 담가보는 경험은 해본 듯하다. 이후에는 아이들이 있는 동네라면 상가나 공동주택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공부방을 꿈꾸었다. 작은 공간에 도란도란 옹기종기 모여 작은 배움을 일구어나가는 어린이들과 일상을 함께하는 가능성을 여전히 염두에 두고 있다.


중학생까지만 해도 열심히 공부하면 SKY대학은 갈 수 있는 줄 알았다. 눈빛은 무서웠지만 수업에 있어서는 정말 친절하셨던 중학교 수학선생님 덕분에 수학과 친해질 수 있었고, 덕분에 이과로 진학을 꿈꾸게 되었다. 정말 열심히만 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마음속 의대진학도 꿈꾸며 나중에 돈도 많이 벌면 부모님 집도 사드리고, 차도 뽑아드릴 수 있을 줄 알았다.

역마살이 있다던 중학교 국어선생님을 좋아해서 추천해 주시는 책들을 동네 서점 가서 용돈으로 구입했지만, 도통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요즘 말하는 문해력이 부족했던 것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3월 첫 모의고사를 보는데 담임선생님은 이 성적이 아마 수능성적이 될 거니 잘 보라는 말씀을 하셨고, 정말 그렇게 되어버렸다. 아침 7시에 등교해서 밤 10시에 하교하는 생활을 3년 동안 했는데 그럴 수가 있었다. 성인이 되었고, 의료계 근처의 직업도 가져본 적은 없다. 하지만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기에 부모님 차를 한대 뽑아드리는 상상이 현실이 될 수 있길 여전히 바라고 있다.


수학을 좋아하던 여학생은 공대로 진학했다. 모든 배움이 좋았고 모든 일상이 벚꽃 같았던 4년이었다. 휴학 한번 없이 4년 내내 장학금 받아가며 졸업했고, 간접적으로 전해져 오는 엄마의 바람대로 빨리 취업했다. 원하는 곳으로 취업이 되지 않아 속상할 때는 휴학도 하면서 취준생으로 치열하게 살아보았으면 하는 짧은 생각도 스쳐 지나갔다. 밥벌이를 위해 나만의 취업기준을 낮추어야만 했을 때는 다른 대학원으로 가서 더 공부도 하고 싶었다.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더 하는 게 어떠냐는 주변의 물음에는 아주 쿨하게 나중에 취업하고 나서 혹은 결혼하고 나서도 원하면 대학원은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미련 없는 사람처럼 답변했다.

독립을 원하던 10대는 전속력으로 졸업하고, 돈벌이를 해서 원하던 시기에 결혼을 했다. 그리고 출산과 육아를 하며 20대에 쉽게 입에 담았던 대학원은 근처에도 못 가보았다. 30대의 일상은 가리면서도 가리지 않는 읽기를 지속하며 문해력이 다져진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다. 덕분에 대학원을 다니면서처럼 한 분야의 깊은 학문을 파고들진 않지만,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지고 알아가는 기쁨을 느끼고 있어 행복하다.





최근 읽었던 배지영 작가님의 에세이 <나는 언제나 당신들의 지영이> 책 표지를 보고는 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자신이 쓴 책 표지 바로 다음으로 나오는 첫 장에 사인을 하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요즘은 지은이에 내 이름이 쓰여있는 책 첫 장에 펜을 들고 내 이름을 손수 쓰는 엄청난 상상을 혼자 해보곤 한다. 내 욕망은 항상 저 하늘 높이 닿기도 어려워서 목이 빠질 것만 같았다. 그런데 어쩌다 읽고 쓰는 삶이 되어 매일 뭐라도 쓰니까 브런치 작가도 시켜주시고, 시민기자도 해보고, 심장 떨리는 댓글도 받아본다. 무서우면서도 좋은 새로움이라 30대 인생이 이렇게 다채로워도 되나 싶다.


소중한 공간에 과거의 욕망과 현재의 욕망을 처음으로 남겨본다.

능력은 욕망과 함께 와주길 진심으로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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