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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쥐방울 Feb 11. 2023

엄마는 아이의 사랑을 먹고 자란다

어느 아침 평소 기상시간보다 늦게 일어나서 이미 깨어있는 아이를 발견하고는 부랴부랴 눈을 비비며 주방에 들어섰다. 의자에 앉아 아침식사를 기다리며 주방에 있는 엄마를 바라보던 아이가 말했다.


엄마는 100% 예뻐


더불어 아이는 다른 사람들의 최대치는 90% 정도라는 말도 덧붙였다. 세수할 겨를도 없이 머리를 풀어헤쳐 흰머리를 발견하지 못한 아이가 해준 말을 듣고 그저 감사히 눈과 입꼬리가 만날 정도의 미소를 보여주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남에도 아이의 말이 잊히지 않았다.



첫 아이를 출산하고 타인이 불러주는 '어머니' 호칭도 익숙해지지 않은 채 그 아이는 초등학생이 되었고, 그사이 두 번의 출산을 더 겪으며 자녀수는 3명이 되었다. 그러나 '많을 다'를 붙이는 다자녀, 다둥이맘 등의 말들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많이 울었던 첫째 아이를 키우면서 나도 참으로 많이 울었다. 한 명도 두 명도 세명도 늘 내 능력 밖인 것만 같고, 한계를 시험하는듯한 일상에 어찌 나에게 세명의 아이가 찾아왔을까 싶은 적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유아교육을 전공한 것도 아니면서 잘해보고 싶은 마음 하나로 책과 영상을 찾아보고 계속 애쓰던 시간이 이렇게 흘러왔다. 아이들에게는 매 순간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라는 고민을 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이렇게 말하면 좋겠다 싶은 말들을 먼저 말했고, 내가 어릴 때 이런 말들을 들었으면 좋았겠다 싶은 말들을 건네주었다. 그러니 계속 들은 아이들은 그렇게 말해주었고, 어느새 나에게도 건네주고 있다.


엄마 사랑해
엄마 고마워
엄마 잘하고 있어
엄마 잘하는데?


육아가 어찌 이리 힘들까 싶어서 생각해 본 순간 내 안에 없는 말들을 잘 키우고 싶으니 내가 해주어야 하는 게 어려웠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가 기억하는 한 5세 이후로 부모님이 저런 말씀을 나에게 해주신 기억이 없다. 텅 비어있는데 계속 꺼내어 무언가를 아이들에게 내어줄 때는 더 고갈되는 느낌이라 힘겨웠다.


믿음과 신뢰의 말은 내가 어릴 적 듣고 싶었던 것이 분명하다. 천 번 이상 들은 말을 이제는 아이들이 나에게 부메랑처럼 되돌려주고 있다. 이런 말을 듣게 해 주시려고 아이를 셋이나 주신게 분명하다.



아이가 해준 예쁘다는 흔한 말을 듣고 계속 머리에 맴돈 이유는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봐준 고마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와 아이들에게 펼쳐질 앞날은 무엇을 시도하든 실패라는 크고 작은 시련이 찾아올 테지만 그래도 서로가 있기에 회복탄력성이 높아지는 중이다.

아이들이 부모의 사랑을 먹고 자란다지만 엄마 역시 아이의 사랑으로 여전히 마음이 쑥쑥 콩나무처럼 자라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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