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박사와 하이드
어린 시절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던 말. "거짓말하지 마라."라는 가훈답게 일곱 살에 동생과 함께 거짓말로 호되게 혼난 덕분에 뇌리에 박혔다. 또한 유치원에 다니며 살아가면서 배워야 할 안전수칙과 예의범절은 다 배우곤 하는데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런 것들을 배웠다. 가족이 다 함께 식사할 때 어른이 식사를 마치기 전까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기, 외출 후 귀가했을 때 인사하기, 집에 손님이 오셨을 때 나와서 인사드리기. 이런 것들이 성장하면 할수록 나에게는 의문을 품게 만들었다.
집마다 유선전화가 한 대씩 있던 시절 아빠를 찾는 전화가 걸려오면 대부분 엄마나 나를 향해 아빠는 마임으로 본인이 집에 있으나 없다고 전달해야 한다는 신호를 보내셨다. 회피였다. 직장과 지인으로부터 찾는 연락이 오면 대응하기 싫고, 그 내용에 대해 거절하기 어려우니 아예 수신거부를 택하신 것이다. 자녀에게는 솔직하게 살아가라고 말씀하신 반면, 아빠는 솔직한 표현에 대해 어려움을 온몸으로 나타내셨다.
주말에 외출 후 돌아오거나 하교 후 아빠는 거의 안경을 쓰신 채 거실이나 방에서 책에 몰두해 있는 모습이셨다. 일반교양 단행본 서적이 아닌 자격증 취득을 위한 학습서였다. 그리고 타인이 하는 인사말을 못 알아들으셨다. 대응할 가치가 없어서였을지도 모르지만 매번 무시당했다. 엄마와 내가 그런 취급을 받는 것은 무척 이골이 나서 아무렇지 않은 날이 대부분이었지만, 친척들이 방문했을 때도 평소와 다름없으실 때는 내가 윗사람이 되어서 아빠에게 좀 나와보라고 하고 싶을 만큼 요지부동인 모습을 보고 민망하면서도 부끄러웠다.
그렇다면 청소년은 사춘기라는 하나의 페르소나를 자신에게 씌운 채 '우리는 진심으로 대화를 원해요'라고 외치면 되지만 그보다 더 큰 생존의 욕구가 내면에서 조용히 침묵하라고 외쳤다. 아빠는 자녀에게 신체적 폭력을 가하신 적은 없으시지만 직장에서 있었던 일을 아무렇지 않게 집에서 엄마와 나누시는 모습을 보고는 나에게도 가능성이 아예 없진 않다고 느꼈던 것 같다. 예를 들면 직장에서 동료와 의견충돌이 있을 때 공구함에나 들어있을 법한 도끼를 번쩍 들어서 타인을 위협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가히 충격적이었다.
희생의 아이콘인 엄마 앞에서도 대화보다 생존욕구가 더 높았다. 엄마는 택배 발송을 위해 상자가 필요하셔서 매일같이 장 보러 가는 동네 기업형 슈퍼마켓에 가시길래 함께 동행했다. 포장대 옆 한쪽에 쌓여있는 상자들 중 어느 것이 좋을지 크기를 가늠하는데 직원분이 오셔서 규정상 상자만 임의로 가져가면 안 된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 순간 엄마는 이성을 잃은 모습으로 한껏 목소리를 높여 고르던 상자들을 바닥으로 내팽개치고 씩씩대며 밖으로 나오셨고 난 그 뒤를 따랐다.
누구에게도 기댈 곳이라고는 없었다. 한없이 팍팍한 현실에 생계가 우선이었고, 부족함 없이 먹을거리를 챙겨주셨지만 마음은 자꾸만 공허해서 더 먹을거리를 찾아댔다. 침묵은 공포였고, 그 공포는 다시 나를 침묵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침묵이 가진 힘을 좋아한다. 상대방과 마주 앉아 3초간 대화가 멈추더라도 아무렇지 않고 편안한 관계를 좋아한다. 어깨에 무거운 돌덩이를 지고 슬픔을 안고 있는 이에게 그 어떤 말보다 침묵을 지키며 신뢰 가득한 눈빛을 장착하고 안아주는 것을 좋아한다.
촛불 하나만 켜진 채 침묵으로 일관한 분위기는 공포일수도 있고 아름다울 수도 있다. 그때의 분위기가 아름다우려면 평소 가까운 사이인 특히 가족 간의 관계가 나쁘지 않아야 한다. 말을 하지 않더라도 평소 나누었던 가치관에 대해서 동일한 행동을 몸소 나타내야만 한다.
오늘도 뜬금없이 책을 보는 딸과 게임하는 아들에게 얼굴을 한껏 들이밀고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너의 마음은 어때?"
뚱딴지처럼 난데없이 무슨 소리냐고 물을 줄 알았는데, 아이는 대답했다.
"아주 맑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