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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쥐방울 Apr 01. 2023

퇴사와 맞바꾼 남편의 육아휴직

요즘 뉴스에 나오는 소식이 모두 내 이야기인 것만 같다. 정부에서 국민을 위한다는 새로운 정책 속에는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어쩌다 보니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우리 집 아이 셋을 나는 온전히 지켜낼 수 있을지 의문이었고, 나부터가 흔들렸다. 이대로 내 가정이 잘 유지될 수 있을지 끊임없는 꼬리를 물고 있었다.



배우자가 국내외로 출장을 다니며 육아와 가사를 분담할 수 없는 점은 하루이틀 일이 아니었다. 가족은 모빌 같아서 어느 쪽이 많이 기울어지면 다른 쪽도 그만큼 더 애를 쓰며 한 가정이 잘 굴러갈 수 있게 한다는 점이 그동안의 우리 가정을 잘 설명해주고 있는 듯하다. 결혼 10년 차에 이제 밥도 잘 먹고, 화장실도 척척 잘 가는 아이 셋을 육아하며 극도로 힘든 시기는 이제 지나왔다는 것을 스스로도 무척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아이와 함께하는 24시간을 객관적으로 돌이켜보니 이런 물음표만 떠다녔다. '이게 그렇게 힘들다고?' 다른 가정도 비슷한 삶을 살고 있을 텐데 내가 벼랑 끝에 매달려있다고 느끼는 이유는 그동안 나 혼자만의 휴식이 단 하루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어느 수요일에 아이들은 잠이 들었어야 하는 시간이지만 아빠가 아주 늦게라도 퇴근해서 집에 온다는 것을 알기에 기다리고 있었다. 이후 아빠 얼굴을 마주하자 높은 텐션으로 기분이 좋아진 아들은 본인 작품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아빠! 내가 오늘 만들어온 것 좀 보세요!" 이후 배우자의 답변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아니, 아빠는 보고 싶지 않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평소 같았다면 지금 피곤하니 나중에 보겠다는 납득하고 싶지 않지만 납득할만한 답변을 내놓았어야 할 배우자는 당장 쉬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채로 퇴근해서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아이에게 황당무계한 답변을 해버렸다. 그 말을 들은 아들은 어찌 대꾸해야 할지도 몰라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했다.


아이들은 좋아하는 영상도 보고, 바깥놀이도 하고 남을 충분한 자유시간이 주어질 때 손에 책이 들려있다. 학원과 학원 사이에 10분 정도 시간이 남을 때 그 틈새 시간에 책을 보는 아이는 드물 것이다. 배우자가 주말에도 일하고 퇴근해서 돌아온 시각에는 아이들에게 관심을 쏟을 여력은 없었다. 한 가정의 아빠이지만 하숙생이나 다름없는 일상을 보내던 사람은 스마트폰을 손에 쥔 채로 잠이 들거나 스트레스가 많을 때는 컴퓨터 게임을 한 시간가량 하다가 취침하곤 했다. 게임을 하려고 늦은 밤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어느 날에 배우자를 보고 넌지시 말을 했다. "그냥 퇴사하는 게 어때?" 이때만 해도 들은 건지 만 건지 아무 반응이 없었지만 시간이 조금 지난 후 답변은 아주 간결했다. "퇴사하는 거 쉽지. 내일이라도 할 수 있지." 농담반 진담반으로 건넸지만, 일말의 생각조차 없었다면 꺼내지 않았을 말이었다. 돈도 중요하지만 가정이 더 중요했고, 쉼 없는 일상 속에 내가 원했던 것은 아플 때 병원에 갈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고, 나의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것을 배우자도 눈치챘을 무렵 퇴근 후 치킨을 사들고 온 덕분에 오랜만에 가족 모두 식탁에 둘러앉아 있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먹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둘만 남았을 때 다시 용기를 냈다. "퇴사한다면서." 이후 10초간 생각하더니 배우자는 휴대폰으로 팀장에게 문자로 사직 의사를 밝혔고, 다음날 출근해서 면담하기로 약속을 잡아두었다. 이렇게 해서 사태는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다음날 출근한 배우자는 팀장, 상무, 부사장에 이르기까지 장장 세 시간에 걸친 면담을 했다며 전해왔다. 상무와의 면담 과정에서 배우자가 퇴사 대신에 내민 카드는 세장이었다.

첫 번째, 3개월 육아휴직

두 번째, 6천만 원 대출

세 번째, 해외법인 주재원 근무


일 년에 한 번 있는 연봉 협상 자리에서는 보통 상급자가 인상률을 제시하고, 면담 대상자는 동의 혹은 이의제기를 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상황이 바뀐 것이다. 배우자는 원하는 것을 제안했고, 상급자는 이중에 가능한 것이 있는지 알아보고 답변하겠다고 했다. 세 번째인 해외 주재원 근무를 우리 부부는 가장 원했지만 현재 티오가 없어서 가능성이 적고, 첫 번째와 두 번째가 오히려 가능할 것이라는 예상 안을 주어서 놀라웠다.


솔직히 첫 번째 육아휴직이 전혀 가능성 없어 보였는지 3개월만 이야기했었던 점이 살짝 아쉬웠고, 두 번째 6천만 원 대출은 왜 꺼낸 카드인지 알 수 없었지만 어차피 우리는 회사를 나오는 것까지 생각했던 사람들이니 그냥 넘어갔다. 면담 당일 3시간 후 최종적으로 회사에서는 3개월 육아휴직과 3천만 원을 초저금리로 빌려주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렇게 배우자는 사내에서 최초로 남자가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사람이 되었다. 육아휴직하는 3개월 동안의 급여는 고용노동부에서 지급하는 150만 원이고, 회사에서 보전해 주는 다른 급여는 없다. 그마저도 150만 원의 25%는 복직 6개월 이후에 입금된다고 하니 3개월간 매달 받을 수 있는 급여는 약 112만 원이 될 것이다.


허탈했다. 육아하며 주 7일 근무하는 배우자 덕분에 아파도 쉴 수 없고 병원 갈 시간조차 없어서 택한 퇴사인데, 육아휴직 가능이라는 답변이 돌아올 줄은 몰랐다. 물론 갚은 돈이지만 시간빈곤자인 우리 부부에게 당장 다음 주부터 3개월 동안 돈과 시간이 생겨버렸다. 배우자는 팀에 현 상황을 공유하자 현실적인 급여문제로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못했던 동료가 있었다고 말해주기도 했다. 5인가족이 외벌이로 한 달에 약 112만 원이면 이건 그냥 쓰지 말라고 하는 정책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사실 우리 가정조차 육아휴직 급여는 매달 내는 주택 대출 상환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지만, 퇴사까지 결심한 판국이라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다.


결혼 10년 차만에 얻게 된 3개월이라는 시간을 마주하며 JTBC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내레이션이 떠올랐다.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낮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


어쩌면 이 3개월이 끝나면 또 번아웃이 종종 찾아올 수도 있고, 아이들이 정규교육과정을 마칠 때까지는 이런 휴식이 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3개월간의 일상을 한낮 꿈처럼 추억 삼아 기억해 가며 남은 평생 살아가야 할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3개월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서 살아가려고 한다. 불안한 미래는 여전하지만 당장 아프면 병원도 가고, 매일 산책도 하며 다가올 기간 동안 웃으며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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