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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쥐방울 Mar 29. 2023

봄은 오고 얼음은 녹아 눈물이 되었네

주말에 출근하는 배우자에게 커피 한잔 챙겨줄 기운도 없이 이불속에 꽁꽁 숨어있었다. 아침 7시 현관문이 철컥 닫히는 소리와 함께 거실로 겨우 몸을 일으켜 나와보았다. 또 나는 혼자였다. 아니 아이들과 함께였다. 평소 같았다면 분주한 아침에 준비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니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다른 생각할 새도 없겠지만, 특별한 일정 없는 주말에 다행히도 아이들은 아직 꿈나라였기에 거실 한구석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부신 햇빛을 고스란히 느끼면서 그대로 눈물이 주르륵 나기 시작했다.


겨우내 얼어있던 마음에 위기가 와도 어느 곳이나 온통 추웠기에 다시 잘 얼어붙어 있을 수 있었다. 그러다 완연한 봄이 찾아오고, 얼음에 갈라진 틈 속으로 대책 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다. 워낙 눈물이 많았던 사람이라 그러려니 하려고 했지만, 아침부터 눈물이 났던 날은 어디가 고장 난 사람처럼 하루종일 울었다. 운동하러 가서도 눈물이 나고, 책도 한 장 읽기 어려웠다. 그 와중에 배는 고파서 주방에서 밥을 김에 싸 먹는데 씹으면서도 눈물이 났다. 그렇게 소리 없이 우는 기술자가 되었다. 이날은 딱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이 세상에 눈물이 멈추는 약이 있었으면 좋겠어'


그렇게 장례라도 치른 사람 마냥 코도 풀고, 눈물도 닦으며 살다가 아는 분이 나를 보시고는 이렇게 생각하셨다고 했다. 누가 이 사람 좀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나도 그 말씀을 듣고 같은 생각을 했다. '누가 나 좀 도와줬으면...' 그렇게 몇 초 동안 몇몇 인물을 떠올려보고 내린 결론은 나를 도와주러 와줄 사람은 없다는 것이었다. 예전부터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들이 어느 정도 명확해져 버렸다. 마음에서 피가 나는 것 같아 병원을 찾아가려고 해도 시간이 없다. 뉴욕 같은 경우 응급실에 정신과 응급실이 따로 있는 곳이 있다던데 우리나라도 그랬으면 좋겠다. 밤에 응급실에 가면 나는 멀쩡한 사람이 되고 마니까.


이것이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를 명확히 알 수 없다는 점이 여태껏 스스로에게 다른 사람도 다 이렇게 살 테니 그냥 버티면 된다는 식으로 프레임을 씌워버렸던 것 같다.

코로나 시작부터인지,

육아의 시작부터인지,

원가족으로부터 감정수용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어린 시절 때문인지,

이 모든 것을 충분히 아우를만한 총체적 사회 덕분인지.


이 세상에서 바꿀 수 있는 것은 배우자와 자녀를 포함한 가족도 아니고, 크나큰 사회도 아니고, 딱 나 자신 하나뿐인데 나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싶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버티고 시간이 흐르면 또 상황은 어느 정도 달라지고 살아지리라. 얼마나 큰 인물이 되려고 이런 고난의 시기를 마련하셨을까 싶어 자꾸만 내가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고 떠올려본다.


여전히 구멍 난 장독대에 물을 열심히 퍼서 담고 있다. 때때로 막내의 아기상어 춤을 보며 몇 초간 시원하게 웃기도 한다. 집에서는 육아하며 읽고 쓰기라고 하지. 집 밖에 나가면 엄마들과 아이들은 같은 무리끼리 더 똘똘 뭉쳐 다니기에 나는 어디에도 낄 수가 없는 소수가 된다. 보이지 않는 피가 주르륵 흐르고 있으니 오늘도 무언가에 열중해 있는 척, 외롭지 않은 척, 엄청 바쁘게 돌아다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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