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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쥐방울 Mar 25. 2023

틀려도 괜찮아! 못해도 괜찮아!

초등학교 공개수업

이번주 초등학교 2학년 아이의 공개수업을 다녀왔다. 코로나 확진 시 격리기간은 아직 지켜지고 있지만, 마스크까지 자율착용으로 변경되며 제법 방역체계가 완화되어 처음 대면으로 공개수업 진행을 볼 수 있었다. 공개수업을 이유로 교실환경, 선생님, 같은 반 아이들을 볼 수 있는 학교에 처음 공식적으로 들어갈 수 있는 날이었기에 25명 학부모 참석율은 100%였다. 아이 한 명당 엄마와 아빠 두 분 모두 참석한 분도 있기에 교실 뒤는 봄이었음에도 열기가 달아올라 반팔을 입고 계신 분도 계셨다.


1교시를 마친 아이들은 곧 부모님이 오신다는 생각에 하나둘씩 나오더니 복도는 바다가 갈라지듯이 학생들이 양옆으로 줄지으며 가운데는 자동으로 레드카펫이 되어버렸다. 분명 두 시간 전 즈음 등교하며 인사했을 때는 평소와 다름없던 아이가 학교에서 만나자 마치 몇십 년 만에 만난 것처럼 퍼레이드 하듯 손을 좌우로 힘차게 흔드는 모습을 보니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반면에 수업종이 울리고도 부모님이 아직 오시지 않은 아이는 연신 '우리 엄마는 언제 와요?'라는 질문을 하며 선생님과 뒷문을 번갈아보며 웃음을 자아냈다.


공개수업은 반 아이들 모두 정해진 순서에 따라 발표수업으로 이루어졌고, 3일 전부터 아이들은 준비하기 시작했다. 발표할 내용을 생각하고 적으며, 학교와 집에서 몇 번이고 외워질 때까지 따라 읽으며 연습한 아이들이었다.



공개수업의 주제는 <나의 꿈>이었다. 아이들의 발표가 이루어지기 전 선생님께서는 꿈을 이룬 인물들의 어릴 적 사진과 함께 그들이 꿈을 이루기까지 행한 노력들과 특징을 힌트로 주시며 퀴즈를 내셨다. 예를 들면 손흥민(축구선수), 김연아(피겨선수), 김수현(배우), 배수지(가수)와 같은 인물이었다.


드디어 아이들의 발표순서가 다가오고, 맨 첫 번째로 자신 있게 앞으로 나간 아이의 꿈은 자그마치 워런 버핏처럼 성공한 투자자가 되는 것이었다. 아이의 발언이 다 끝나기도 전에 아홉 살 아이가 투자자의 꿈을 가진 것에 대해 뒤에서 귀 기울이던 학부모들은 일제히 탄성이 터져 나왔다. 요즘은 어떠한지 모르지만 지인의 돌잔치를 떠올려보면 자녀의 풍족한 삶을 위해 일부러 돌잡이에서 사회자는 지폐를 잡도록 유도하기도 했었는데, 마치 그렇게 성장한 아이의 입에서 워런 버핏이라는 인물이 거론된 것이라면 반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두 번째로 기억에 남은 아이는 여자아이였는데, 평소와 다른 분위기와 환경 속에 긴장을 한 모양이었다. '안녕하세요'라는 첫마디를 제외하고 기억이 나지 않았는지 선생님께서는 귓속말로 평소 아이가 이야기하던 꿈을 말해주며 힌트를 주셨지만 아이는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버렸는지 그것조차 들리지 않은 듯했다. 결국 최후의 수단으로 대비하며 아이들이 써둔 종이를 보고 겨우 읽어나갔고, 발표를 마친 아이는 자리에 들어가 책상에 고개를 숙이고 엎드리고야 말았다. 평소처럼 잘하고 싶었는데 바라던 모습이 아니라서 속상한 모양이었다. 나는 이 아이에게 가장 큰 박수를 보냈다. 물론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응원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아이는 태권도 사범의 꿈을 꾸고 있는 아이였다. 아주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본인의 운동실력이 장난 아니라고 표현해 준 아이는 교실의 분위기를 부드럽고 누구나 웃을 수 있게 해 주었다. 반에 꼭 한 명씩 있는 재치 넘치고 운동 잘하는 아이가 분명했다. 인공지능이 판을 치고 있는 요즘 세상에 대체 불가능한 사람임이 분명하고, 주관적인 입장에서 공부 잘하는 아이보다 훨씬 매력 있는 아이로 보였다.


그 밖에도 공개수업의 현장은 다채로웠다. 한 명 한 명 발표할 때마다 아는 사이이신지 여성 두 분이서 서로 추임새를 넣으며 교실 모퉁이에서 자체 평가를 하고 계신 모습을 보고는 속으로 외쳤다. '제발 내 귀에만 들리고, 아이들 귀에는 가 닿지 않기를..'

또한 너무도 당연하게 아직 꿈을 가지지 않은 아이도 있었다. 어른이라고 다 그럴듯한 꿈이 있는 것도 아니니 내가 보기엔 제일 어린이다웠다. 대신 발표 시에 선생님께서는 대안으로 '친절한 사람' 혹은 '배려하는 사람'으로 성장하면 좋을듯하여 그에 맞게 문장을 완성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부분에 대해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집 9세는 노래하고 춤추는 아이돌이 꿈이라고 발표했는데 집에서 연습해던 때와 하나도 다르지 않게 떨지도 않는 모습을 보니 나보다 한 수 위 인듯했다.




공개수업을 다녀오며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수업 시작 전 아이들이 혹여나 부모님이 지켜보고 계신 이유로 긴장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 선생님과 아이들이 함께 외친 구호였다.

틀려도 괜찮아! 못해도 괜찮아!

수업시작과 함께 눈물이 그렁그렁하기 시작했다. '겨우 이 정도 가지고 벌써 눈물이라니 안돼!'라고 속으로 외치고 마스크를 한껏 올리며 체한 사람처럼 손톱으로 엄지와 검지 사이를 아픔이 느껴질 정도로 꾹 눌러댔다. 수업을 마친 아이와 인사를 짧게 나누고 나오는 길에 도대체 나의 눈물은 왜 그곳에서 또 불쑥 튀어나온 건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것은 결국 나의 10대에 듣고 싶은 말이었고, 아이들이 감사히도 훌륭한 선생님을 만나 듣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서로에게 외치고 있으니 이미 원석인 아이들이 보석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30대 아줌마는 매일 하나같이 강점을 가지고 태어나 빛나는 아이들과 그보다 더 아름다운 선생님의 학교생활을 응원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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