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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쥐방울 Apr 22. 2023

이것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자네, 정관수술은 잘 되었는가

남편이 육아휴직하며 제일 먼저 한 일로 아이와 배우자는 서로를 간병하며 훌쩍 시간이 흘렀다. 어느 평일 아침, 배우자는 한가로이 침대에 기대어 뭔가를 열심히 검색하고 있었다. 궁금해서 기웃거리니 남편은 정관수술에 관해 알아보던 것이었다. 이를테면 정관수술의 비용, 통증, 후기, 그 이후의 삶 등이었고 곧이어 그의 입에서 질문이 날아들었다.

"여보, 나 정관수술 하고 올까?"


뭐라고 해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 이미 답은 정해진 것 같아서 정답과 근사한 답변을 해주었다. 그리고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왜? 대체 왜? 뭐 하러 지금?'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인간의 3대 욕구 중 빠지지 않는 성욕은 현재 이보다 낮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만큼 부부관계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주업이 육아인 일상을 살면서는 퇴근하고 온 남편이 약간의 스킨십이라도 하려 할 때면 항상 잠이 부족한지라 소스라치게 놀란다.

'어머, 이게 무슨 일이야?'

성욕보다 수면욕이 항상 우위에 점하고 있는 사람에게 세 번의 임신은 그저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정신건강에 좋았다.


셋째의 임신 소식을 남편에게 전했을 때만 해도 서로 당황스러워 아무 말도 못 하고 눈물로 대화의 마무리를 지었다. 그래서 말하지 않아도 바로 정관수술을 하러 병원으로 향할 줄 알았지만, 아내가 임신 중에 시술을 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어디서 주워들은 말을 하길래 출산 이후를 기약했었다.


이후 뱃속에서 무사히 자란 셋째가 태어났고 출산 3일 차에 집으로 돌아와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 당시 기저귀를 갈아주며 남편에게 정관수술의 의지가 어느 정도 있는지 살며시 물어보니 글쎄 병원에 같이 가줄 수 있는지 역으로 질문을 하는 것을 보고 나 홀로 혀를 내둘렀다. 임신한 아내의 산부인과 정기검진을 남편이 같이 동행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그렇다면 신생아를 포함한 꼬맹이 셋은 어쩌고'


친정엄마는 사위에게 말은 못 하고, 남자들은 피임을 대개는 하려고 하지 않아 결국 너만 고생할 테니 차라리 엄마처럼 루프 시술(여성의 자궁에 피임 장치를 삽입하여 수정란이 착상되는 것을 방지)을 받으라고 말씀하셨다. 이미 제왕절개와 브이백(제왕절개 이후 자연분만) 경험했는데, 또 산부인과 가서 시술을 하라니 생각만 해도 싫었다.




이로써 정관수술에 대한 본인 의지를 확실히 알게 된 줄 알았는데, 육아휴직 하고 두 번째 행보가 비뇨기과라니! 당황스러웠지만 이번생에 기회가 있다면 그래도 시간이 있는 지금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역맘카페와 제휴된 비뇨기과 전화번호를 공유하여 남편이 전화해 보게 되었고, 지금까지 문의 한 곳 중에 가장 저렴한 25만 원이라는 금액이었는데 가능한 날짜는 2주 후였다.

남편의 선택은?


집과 가장 가까운 거리의 비뇨기과에 문의한 결과 금액은 40만 원이었지만, 당일 가능하다고 하자 뭐가 그리 급했는지 바로 출발하였다. 실제 시술은 10분 정도였고, 약국까지 들렸다가 약 1시간 후에 집으로 돌아왔다. 걸음은 제법 멀쩡했지만 얼굴은 일그러진 채로 꽤 아프다는 후기를 들려주었다. 제왕절개가 여성들마다 느끼는 통증차이가 크듯이 정관수술도 비슷해 보였다. 그래서 나도 제왕절개 후 1년 동안 통증이 있었고, 일어서는 게 아파서 수술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었었다며 심심한 위로로 공감해 주었다.


또한 정관수술 후 바로 피임이 되는 것이 아니고, 정낭에 보관된 정자는 짧게 1달에서 길게 3달까지 생존할 수 있기 때문에 남아있는 정자가 있는지 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손에는 눈금이 새겨진 투명 플라스틱 통을 가져왔길래 물어보았다.



여보, 이것은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그러니까 이 물건은 병원에서 정자 검사를 위해 열두 번의 사정 후 사정액을 제공된 용기에 받아 오라는 미션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아이들 눈에 띄면 당연히 놀잇감으로 쓰일 수 있으니 손에 닿지 않는 제일 높고 깊숙한 곳으로 향하는 것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자, 그러면 정자 검사를 하러 저 물건을 챙겨 비뇨기과는 언제 갈 수 있으려나. 현재 가정의 분위기와 아이들 컨디션 및 피로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본 결과 육아휴직을 하는 3개월 내에 다시 내원할 확률은 10% 미만으로 보인다.


오늘도 대한민국의 건강한 부부관계를 지향하기에 함께 잘 먹고, 서로에게 휴식시간을 보장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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