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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쥐방울 Apr 19. 2023

남편이 육아휴직하며 제일 먼저 한 일

애들아, 할머니 집에서 자고 올래?

출근할 때 사직서를 품고 갔다가 퇴근할 때 육아휴직을 승인받아 왔던 날이 벌써 2주 전이다. 휴직 전 마지막으로 회사를 다녀온 금요일 저녁 배우자는 아이들에게 의도적으로 질문했다.


"주말에 외할머니 집에서 자고 올래?"


당장 월요일부터 육아를 함께 해야 하니 까마득했을 것이다. 매일 아침이면 씻고 옷은 빨래바구니에 넣어둔 채 휘리릭 문을 열고 나가 하숙생처럼 생활했던 사람이 이제 온전히 모든 집안일을 공유해야 하는 것이다. 이 사람에게도 휴식이 필요했겠다 싶어 아이들을 친정으로 보내려는 배우자를 굳이 말리지 않았다.


9살, 7살, 6살 어린이 세 명이 그동안 할머니댁에서 자고 온 경험이 없었던 이유는 나의 강력한 추진이 없었기 때문이다. 까다로운 기질의 첫째가 성장함과 동시에 많은 부분에서 덜 민감하게 느껴졌지만, 유독 잘 때만큼은 꼭 엄마와 함께 자기를 원했다. 친정부모님은 아이들과 함께 방문해도 내가 어릴 적과 똑같이 어떻게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야 할지 몰라 딱 식사와 간식을 사랑으로 챙겨주시고, 바깥 산책을 나가시는 것이 전부였다. 아이가 조금만 울거나 짜증과 화를 내면 어찌 반응해야 할지 몰라 그 즉시 집으로 돌아가는 게 낫다는 말씀을 하셨다.


토요일 아침이 되자 식사를 마치고, 배우자는 이런저런 부연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얼마나 보고 싶어 하실까"

"벚꽃 보러 가자고 하면 할머니도 그 김에 벚꽃구경 하실 텐데"

이후 본격적으로 한 명씩 제대로 묻자, 세명 중 두 명이 낚시에 걸려들었다.

첫째가 손을 들었고, 성공확률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그동안 또 얼마나 성장해 왔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막내는 언니가 밝고 화사한 미래를 상상하게끔 하는 목소리로 묻자 바로 설득당했다.

집순이 둘째는 집에서 게임을 하겠다고 하자 배우자는 바로 포기했다.



육아 난이도가 1부터 10이라고 하면 첫째는 9(난이도 상), 둘째는 3(난이도 하), 막내는 6(난이도 중상)이다. 이 중 첫째와 막내가 다녀오겠다는 의지를 펼쳤으니 아마 배우자는 이 정도면 성공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놀이용 시크릿쥬쥬 캐리어에 두 명의 홈웨어와 몇 권의 책을 넣어 주차장으로 향하면서 기념사진까지 찍어왔다. 그리고 정확히 두 시간 뒤, 막내는 시크릿쥬쥬 캐리어에 본인 물건만 다시 담아서 아빠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심 불안했던 배우자는 나보다 훨씬 자주 가는 장모님 댁에 가서 차려주시는 밥도 먹고, 한바탕 수다를 펼치다 '아빠랑 집에 갈래?'라는 질문을 던진 덕분에 함께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첫째는 예상과 달리 놀랍게도 정말 잠을 자고 다음날  컴백했다. 다음날 아침 9시까지 데리러 가기로 했지만, 새벽같이 일어나서 아침 7시에 할아버지 차를 타고 돌아왔지만 말이다.


그렇게 설득을 하고, 설득을 당하는 시트콤 같은 주말이 금세 지나갔고 배우자의 진짜 육아휴직이 시작되었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더니 첫째의 감기가 시작되어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순서 정해놓고 병원행이라 작은 업무가 하나 더 늘었다.

첫째 : 물약 19ml + 13ml + 가루약 2가지

둘째 : 곧 병원행

막내 : 물약 5ml + 가루약 한 가지

배우자 : 약 복용여부 구두로 확인

(묻지 않으면 자꾸 잊어버리심)

이상 육아휴직 후 몸살 5일째 앓고 계신 배우자와 동거 일상 끝.

+ 다음 일상도 다채로우니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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