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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쥐방울 Apr 15. 2023

무슨 글을 쓰냐고요?

This is KOREA

얼마 전 창작자와 예술인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에 입주한 지인을 방문했었다. 그때 그곳에 출판사도 입주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평소 궁금했던 점을 문의해 볼 수 있을까 싶어 용기 내어 찾아가 보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갈 때마다 굳게 문이 닫혀있었고, 세 번의 방문 끝에 점등되어 있는 공간을 발견하고 다행히 문을 열어주셔서 들어가 볼 수 있게 되었다.


그곳은 1인 출판사로 운영되는 곳이었고, 가벼운 스몰토크 끝에 방문한 목적에 대해 말씀드렸다.


그림책 출판과정이 어떻게 될까요


하나의 질문을 했으나 답변 대신 역으로 여러 질문을 받게 되었다.


1. 보통 뭘 쓰시나요?



tvN 예능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 179화에서는 드라마 <더 글로리>의 한 장면을 패러디하는 과정에서 뭐 해서 먹고사냐는 유재석의 질문에 조세호는 (그냥 돈 되는 건) 이짝저짝 으쌰으쌰 하고 있다는 솔직한 답변에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을 터뜨리며 무장해제 하게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그냥 돈이 되건 안되건) 이것저것 쓸 수 있는 건 다 쓴다고 답변했어야 했는데, 실상은 그 공간상에 많이 보였던 것이 동화책이라 '동화'라는 단어를 넣어서 얼버무리듯 말하고 말았다. 그러다 보니 다음 질문도 물 흐르듯 이어졌으리라.


2. 동화를 어디서 배우셨나요?

방금 들은 게 맞나 싶은 심정으로 확인차 동화를 배워야만 쓸 수 있냐고 여쭈었고, 단호하게 배워야만 한다고 말씀하셨다. 6회에 40만 원 정도의 비용을 내면 모임을 꾸려 글을 쓰고,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배울 수 있는데 본인도 외부에서 그런 강의를 하고 계시다는 점을 덧붙였다.

본캐가 육아 중이라 오프라인 강의는 아직 들어본 적이 없고, 원데이 온라인 강의도 수강료 3만 원을 내본 것이 최대였다. 세상에 글을 배워야만 쓸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단지 전문가에게 배우면 더 잘 쓰기야 하겠지만, 사람은 다 누구나 자고 나라면서 기본적으로 쓰는 생물체인데 말이다.


3. 전공이 무엇인가요?

대졸자인데 전공을 묻자 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못 했다.

'왜 말을 못 해! 전기공학 전공했다고 왜 말을 못 하냐고!!!'

결국 문예창작과는 무관한 전공이라고 말씀드리자, 두 번째 질문과 연장선상으로 본인의 업에 관해 계속 배우고 계신 사례를 듣게 되었다. 현재 D대학에서 석사과정을 거의 마친 상태인데, 등록금이 더럽게 비싸다는 말씀으로 이 길이 쉽지 않다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내셨다.




이미 교통사고를 당한 것처럼 멍해져 있었는데 곧이어 연쇄 추돌이 이어졌다. 아이 키우는 엄마들이 그림책을 보면서 나도 이 정도는 쓸 수 있을 거 같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생각만큼 한국에서는 쉽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정확히 나에게 해당되는 내용을 표본화해서 말씀하신 것 같아 자꾸만 고개가 숙여졌고, 한국사회에서 뿌리 깊은 학벌주의를 아주 오랜만에 느껴보았다.


출판으로 수익을 내기가 어렵고, 작가로도 생계가 어렵기에 외부 글쓰기 강의가 주요 수입원이신 분의 진짜 답변은 결국 신춘문예나 문학상에 당선되어서 이름을 올리거나 출간제의를 받아야만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해당 출판사에서 직접 쓰고 펴낸 책은 2권이었는데, 각각 K문화재단과  Y지자체의 지원금을 받아 발간된 그림책과 동화책이었다. 지원금을 받지 않고 직접 쓴 책은 모두 타 출판사에서 제안받아 낸 것이라고 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드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할 때 드디어 진짜 마지막 질문이 날아들었다.

"명함 하나 드릴까요?"

머릿속에는 '아니요' 세 글자가 가득했지만 이미 활자 가득한 직사각형 종이가 손바닥에 들려있었다. 더불어 방문기념으로 직접 쓰고 펴내신 약 100페이지의 얇은 동화책을 선물로 받았다. 동화책은 이렇게 쓰는 거라며 잘 읽어보라고 주셔서 당일 졸린 눈을 비비며 완독 했다. 다섯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동화집은 지금까지 아이들 덕분에 읽어왔던 다른 동화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왜 다른 도서들처럼 정식 출간이 어렵고, 지원금을 받아야만 출간을 할 수 있는지 이해되었을 뿐이다.


1인 출판사 사장님을 만나고 오랜만에 아빠가 생각났다. 어릴 적 아빠에게 궁금한 게 생겨 한 가지 질문을 하면 아낌없는 마음으로 한없이 길어지는 설명 덕분에 열에 아홉은 괜히 물어봤다 싶은 심정이었다. 그저 그림책 출판과정을 알고 싶었을 뿐인데 집으로 오는 길은 그저 이런 마음이었다. '아참 여기가 대한민국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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