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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쥐방울 Apr 29. 2023

미혼 친구에게 결혼을 찬성하는 사람

남편

육아휴직을 시작한 지 2주 정도 되었을 무렵 남편은 불알친구를 만나러 대구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의견을 물어본 것이 아니기에 배우자로서 나의 답변은 알아서 하라고 했다. 현재 대구에 주소지와 직장을 두고 있는 친구는 미혼이었다. 그리고 집으로부터 먼 거리였기에 당연히 최적의 교통수단 KTX를 이용해서 당일에 다녀올 줄 알았으나 평소 가보지 않았던 지역이라 자차로 운전해서 혼자 이곳저곳 구경하며 퇴근한 친구와 만나고, 다음날 돌아오겠다며 알려주었다. 마찬가지로 알겠다며 그러라고 했다.


참고로 알아서 하라는 답변은 사춘기 때 제일 싫어한 말이었다. 밤 10시에 시작하는 예능프로그램을 보기 위해 조금 늦게 자겠다고 엄마에게 말씀드리면 답변은 항상 같았다. "네 알아서 해라" 못마땅한 것이 말투와 태도에서 팍팍 느껴져서 무척 불편하지만, 그래도 그 당시엔 토크쇼를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커서 눈치가 보이더라도 잠시 외면하며 시청을 감행했었다. 20년 후, 좋다고 하기도 싫다고 하기도 뭐랄까 그 애매한 답변이 내 입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속내를 눈치채지 못하고 말 그대로 알아서 잘하고 있는 것을 보니 불행 중 다행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나의 순조로운 답변은 다 이유가 있었다. 배우자의 걸림돌은 나 하나뿐이 아니다. 먼저 돌 이전에 아빠가 안아주면 소스라치게 울며 도망가서 엄마만 안으라고 했었던 첫째 아이는 만 7세가 되어 아빠가 집을 하루 비운다는 소식에 바짓가랑이부터 잡고 늘어섰다. 눈물까지 보이며 결사반대하는 이유는 학교 다녀와서도 아빠와 함께 있고 싶은데, 아빠가 없으면 갑자기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마치 헤어지자는 연인의 모습이 저런 풍경일까 싶어 집안 멀리서 지켜보는데 웃음이 나서 참느라 혼났다.


둘째 아이는 아빠와 같이 게임을 하고 싶은 마음에 대구가 어디이며 언제 몇 시에 오냐는 둥 진실을 말하는 것이 맞는지 낱낱이 조사했다. 막내는 그저 언니가 통곡하며 우는 통에 아빠가 그저 아주 먼 곳에 오래 다녀오는 줄 알고 언니와 같이 한마음 한뜻으로 지지했다.



이 모든 것을 헤치고 배우자는 둘째 아이를 아침 일찍 등원시키고 출발했다. 본인이 정한 목적지까지 3시간 반을 운전해서 도착한 곳은 대구의 김광석 거리였다. 테라스가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궁금하지 않은 나에게 사진 몇 장을 보내왔다.


그리고 다음날 아이들과 저녁을 먹고 있던 시각에 도착한 배우자는 오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나도 밥 좀 줘요." 아빠가 저녁시간 전에는 올 줄 아이들이었기에 부리나케 휴게소도 들르지 않고 집으로 바로 온 것이었다. 그리고 식사를 하면서는 수학여행 다녀온 사람처럼 재잘재잘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중에 제일 기억에 남은 것은 만나고 온 미혼인 친구 주변 기혼자 중 결혼을 찬성하는 사람이 남편 한 명뿐이라는 것이었다. 반대하는 기혼 남성이 미혼 남성에게 펼치는 이유는 대략 이러하다.

"야, 골프 치러 가고 싶을 때  갈 수 있지?"

"게임하고 싶을 때 아무 때나 하면 되지?"

"뭐 하러 결혼하냐? 그냥 이대로 살아!!!"


듣는 순간 무척 현실적이라 공감이 가면서도 웃겨서 입안에 있던 물을 뿜을뻔했다. 아마도 이제 막 갓난쟁이 육아를 시작한 분들이라 남편과 아빠로서 느끼는 책임이 더해져 결혼 전보다 자유롭지 못한 일상의 고충을 토로한 것일 것이다.


그 와중에 남편은 '안정감'이라는 단어를 넣어서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 찬성의 의견을 피력했다고 했다. 그러나 결혼을 찬성한 남편은 친구 만나러 가고 싶을 때 갈 수 있고, 게임하고 싶을 때 집에서 당당하게 컴퓨터 켜서 게임하는 사람이다. 물론 일주일에 한 번 있는 분리수거를 건너뛰면 눈빛으로 욕을 하는 아내가 있지만 이것도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하다.


그리고 결혼에 대한 내 의견은 어떠한지 묻지 않았다.

20대에 결혼할 당시 알건 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정말 몰랐었기에 가능한 결혼이었다.

'Into the unknown~'


이로써 1박 2일 자유인간이 끝났다.

먼저 커팅식을 진행해 준 배우자 덕분에 이제 머릿속에서만 상상회로를 돌려보던 나도 현실에 적용해 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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