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쥐방울 May 03. 2023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데, 둘째 인생 5년이면?

글자를 읽고 책을 삽니다.

세 아이 중 비교적 편독하지 않는 성향인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1학년 꼬맹이 시절, 선생님께서 읽어주시고 수업했던 도서를 집에 와서 구입해 달라고 했다. 제목과 내용을 말하면서 집에서도 그 책을 더 보고 싶다고 말하는 아이에게 엄마로서 한 달에 한두 권 도서구입 요청이 들어오는 것을 그냥 지나치치 않고 바로 온라인 서점에 들어가서 장바구니에 꼬박꼬박 넣어두었다.


누나를 보고 자란 둘째 아이는 아마도 이런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아, 책은 사달라고 하면 다 사주는구나'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책을 읽어주다 보니 귀동냥이라는 것이 있었는지 첫째 아이에게 책을 읽어준 것에 비하면 반의 반도 되지 않았던 둘째가 어느 날 글자를 읽기 시작했다.

'어떻게 갑자기 혼자 읽고 쓰기 시작한 거지?'라고 놀라워하며 둘째 아이의 기관 생활은 시작되었다.



3월에 입학한 아이는 집에서 보지 못한 새로운 책들을 접하고는 누나처럼 또박또박 책 제목을 말하며 사달라고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때만 해도 이런 생각이었다.

'아니 이 녀석이 언제 이렇게 커서 책을 다 사달라고 하나? 고놈 기특하기도 하지'


그런데 한 달이 지나고, 4월이 되었는데도 아이의 도서 구입 요청은 전혀 수그러들지 않았다. 하원 후 집에서 갑자기 책 제목을 검색해 보라는 아이의 말에 지금은 예전처럼 설레지 않는다.

'아니 이 녀석이 집안 뿌리를 뽑으려는 것이 분명하구나. 한두 번도 아니고 말이지'


한참 '신기한'시리즈에 빠져있던 어느 날, 유치원 학부모 상담을 위해 원무실에 방문했을 때는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교실 안에 있는 책이 전부가 아니라 원무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에 꽂힌 책들로 계속 교체가 되는 것이었다. 그중에는 아이가 말해주었던 책 제목도 눈에 띄어서 웃음이 나기도 했다.



육아휴직 중인 배우자는 아이가 책을 주문해 달라며 제목을 또박또박 말하는 상황을 마주하며 처음엔 별 반응이 없다가도 끊임없이 오는 택배를 마주한 어느 날에는 이렇게 회유해보기도 했다.


잠깐, 그 책 도서관에 있는지 먼저 좀 볼게!


평소에도 아이들과 주기적으로 집 근처 도서관에 가는 배우자는 급하게 휴대폰을 꺼내 도서관 어플에서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뿔싸! 하필이면 그 책은 현재 대출 중이었고, 반납하자마자 대출을 할 수 있도록 예약하기 기능을 빠르게 눌렀다. 그러나 평소와 다른 상황으로 흘러가자 이번에는 아이가 목소리를 높여 의견을 내세웠다.


유치원에서 봐서 무슨 내용인지 다 알아!
빌리는 거 말고, 집에서 계속 보고 싶어


덕분에 매일 온라인서점에 출석도장을 찍고 있다. 도서관에 매주 출석도장을 찍는 배우자에게도 달리 할 말이 없다. 도서관 책은 도서관 책대로, 사서 보는 책은 또 다르니까 말이다. 나는야 교보죽순이. 중학교 때 처음 용돈으로 동네 서점에서 국어선생님이 추천해 주신 책을 구입했지만 내용이 어렵고 이해되지 않아 고스란히 책장으로 꽂히고 말았다. 그런데 그게 시작이었다. 서점은 아지트 같고, 신간의 종이냄새를 맡으면 피톤치드에 둘러싸여 있는 듯한 착각에 휩싸이는 변태 같은 취향을 장착한 사람의 DNA가 고스란히 첫째 아이에게 전달되었다. 그 DNA는 대물림되어 둘째 아이는 오늘도 외친다.


엄마, 고 녀석 맛있겠다 시리즈 왔어요?
작가의 이전글 미혼 친구에게 결혼을 찬성하는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