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쥐방울 May 25. 2023

도시락 싸서 집에서 먹은 날

토요일이었다.


여느 때와 달랐던 점은 한 달간 매주 토요일 오전에 줌으로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가정에서 엄마역할을 하는 사람이 주말에 2시간을 방에서 꼼짝없이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행위는 그 시간 동안 아이들을 돌보는 몫을 배우자에게 일임하는 것이었다. 이 정도 시간은 스스로에게 투자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이제 젖먹이 아이들도 아니고, 기저귀도 오래전에 갖다 버린 어린이들이니까.


여느 때와 비슷한 점은 집안 냉장고에 김밥재료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특별한 일이 있어서 사둔 것이 아니었고, 김밥은 배우자가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요리 중에 시그니처로 꼽힐만한 것이기 때문에 대개 주말에 한두 끼 정도는 김밥으로 식사를 차려낸다. 그리고 배우자는 전날 미리 김밥재료를 사놓아 달라고 부탁했기에 별일 없으면 아이들이 일어나서 함께 김밥재료를 준비하고 아침으로 먹게 될 것이다.


오전 9시경 제일 작은 방에 들어가 조용히 문을 닫고 수업을 듣고 있는데 부스럭부스럭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초등학생인 첫째 아이가 일어나서 배가 고프니 아빠를 깨우고 있었다. 아이에게는 전날 미리 엄마가 아침에 수업을 듣고 있을 예정이라고 이야기해 두어서 곧장 아빠에게 간 것이다. 분명 수업에 집중하고 있었지만 엄마가 된 이상 닫아둔 문 바깥에서 일어나는 상황도 한눈에 그려진다.


그리고 한 시간이 지났을 즈음 아이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배우자는 냉장고에 있는 재료로 김밥을 아침으로 차려냈을 것이고, 간단하게 아침을 먹은 아이들이 심심하니 밖에 나가자고 했을 것이다. 마침 김밥도 준비되었으니 간단히 밀폐용기에 담아내 각자 먹을 물을 챙겨 편한 옷차림을 하고 배우자는 아이 셋과 집을 나선 것이다.



현관 도어록이 철컥 닫히는 소리를 듣고, 수업에 더욱 집중했다. 어느새 수업을 마치고 거실로 나와서 아이에게 잘 도착했는지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았다. 배우자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첫째 아이의 휴대폰을 자전거 타면서 불편할까 봐 본인이 챙겼다는 것이다. 그리고 집 앞에서 자전거를 타고 출발해 버린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를 중간 지점에서 기다리며 막내와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중이었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집에서 쉬어도 될지 아이와 상의하려 했는데 아이가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 우선 씻고 외출준비를 해보기로 했다. 준비를 마치고 처음 문자로 알려준 공원으로 가야 하는지, 아니면 아직 중간지점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확인하려 배우자에게 출발 전 마지막 전화를 걸었다.


"지금 어디예요? 아이들은 만났나요?"

"아니, 아직. 중간에 만나서 같이 가기로 했는데 아직 못 만나서 기다리고 있어"


'응? 여보 근데 왜 그렇게 지금 목소리가 침착한 거죠? 우리 아이들이 한 시간째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지요? 여보가 지금 있는 장소에서 아이들과 확실히 만나기로 약속을 해둔 것이 맞나요? 먼저 최종 목적지로 간 것은 아닌가요? 여보세요?! 들리나요?!'


그 순간 우리는 통화가 끊기지 않았으나 몇 초간 침묵을 주고받았고, 머릿속에서는 이런 생각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토요일 오전 2시간을 엄마로서가 아닌 나 자신으로서 보낸 것을 0.1초간 아주 잠시 후회하기도 했다. 내 입을 열어 비난의 말들을 곧장 배우자에게 쏟아내지 않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에 몰두하고 집중한 점을 다행스럽게 여긴다.


지갑과 휴대폰만 챙겨 배우자가 아이들과 만나기로 했다던 중간 지점으로 달려가고 있을 때였다. 아이들이 자전거로 그 지점까지 가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5분도 채 되지 않는다. 초행길도 아니고 보호자 없이도 가까워서 자주 갔던 곳이라 이렇게 오래 나타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서 다시 발길을 돌렸다. 주차장으로 향해서 차를 몰고 아이가 처음에 문자로 오라고 했던 공원으로 가보았다.


집과의 거리는 약 1.7km 떨어진 공원이다. 근처에 주차를 하고 뛰어서 넓은 공원 안에 있는 놀이터에 가니 아이들이 없었다. 다시 차를 몰고 바로 옆에 자주 방문했던 공원으로 가보아도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없었다. 발을 땅에 가만히 둘 수가 없었다. 숨이 차올라 더 이상 뛰지 못하는 지점이 와도 계속 뛰어다녔다. 그리고 더 이상 가볼 곳이 없다고 생각했을 때 배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가기로 한 공원과 놀이터 다 보이지 않아요. 제발 이제 112에 전화해서 도와달라고 해요."


여기까지는 실행하지 않았을 배우자가 나의 발언에 더 이상 대응책이 없으니 침묵으로 동의를 표현했다. 어쩌다 보니 아이의 휴대폰은 배우자가 가지고 있어 연락할 수도 없었다. 내가 직접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이유는 아이들과 주고받은 대화들, 착용한 옷차림 등을 배우자만이 상세하게 답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보아도 불은 꺼져있었다. 얼굴은 붉어져있고, 종아리는 저릿저릿했다. 그래도 다시 단지 내 놀이터를 둘러보러 나왔더니 익숙한 자전거가 보였다. 그리고 그네에 아이들을 발견했다. 이름을 불렀더니 아이들도 땀 흘리며 더위 먹은 얼굴을 하고 달려오는 게 아닌가.


우리는 서로 다행스러운 얼굴을 하고 얼싸안으며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다. 아이들은 내 예상대로 최종 목적지인 공원에 가려고 했었던 것이 맞았다. 그리고 자전거로 가본 적은 있으나 이날의 경로는 초행길이어서 가다가 다시 길을 알 수 없어 돌아왔다는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도 아빠가 보이지 않아서 결국 처음 헤어졌던 장소인 집 앞 놀이터로 돌아온 것이다. 집에 들어가 있으면 찾지 못할까 봐 그곳에 있었다고 했다.


아이들의 답변을 듣자마자 역시나 헤매고 걱정하고 있을 배우자에게 전화를 걸어 소식을 알렸다. 마침 도움을 요청한 경찰과 대화를 나누던 중 희소식을 전하게 되어 모두가 다행이었다. 연락할 방법이 없었을 아이들이 많이 더웠는지 챙겨간 물은 바닥나고 물통만 덩그러니 가지고 다녔다. 고생했을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 하나씩 사주고, 벤치에 앉아서 잊지 못할 에피소드의 원인은 무엇일까 떠올려보았다.


첫째, 배우자의 불분명한 의사 전달 가능성이다. 아이는 최종 목적지인 공원으로 나에게 오라고 했지만, 중간지점의 다른 이야기는 없었다. 배우자 본인은 아이들과 같이 갈 수 있게 중간 공원에서 만나자고 이야기했지만, 아이들은 최종 공원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둘째, 아이들에게 아빠의 권위는 낮아 보인다. 평소 배우자는 아이들과 친구 같은 관계를 유지한다. 좋게 말해 친구 같은 관계이지만 달리 말하면 권위가 낮다는 말로 표현될 수도 있다. 그래서 안전이나 주의사항을 전달할 때 아이들이 잘 귀 기울여 듣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콘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몸도 마음도 진정된 아이들과 달리 30분 후 나타난 배우자는 호랑이 얼굴을 하고 나타났다. 한 시간 전의 나처럼 얼굴은 붉어져있고, 한 손은 허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아이의 휴대폰도 본인이 소지하고 있었고, 평소의 말하는 습관을 떠올려보아서 그랬는지 큰소리 낼 일은 없었다.


배우자는 아이들을 마주하자 한 가지 질문만 했다.

"도시락은?! 여기서 먹을 거야?!!!"

"아빠 우리 집에 가서 먹자. 너무 더워"


'글쓰기 소재가 부족할까 봐 이런 에피소드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겠지'라는 생각과 함께 나도 배우자가 만들어놓은 식은 김밥을 맛나게 먹었다. 다음날 나는 종아리 윗부분 근육의 찌릿함을 처음으로 느껴보았고, 배우자는 외출하는 아이에게 휴대폰을 챙기라며 두 번 세 번 당부했다.

작가의 이전글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데, 둘째 인생 5년이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