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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쥐방울 Jul 02. 2023

진짜 원하는 게 뭐야?


21년도 가을, 아빠로부터 집을 알아봐 달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예산을 여쭤보니 땅과 주택까지 2억 이내로 구입하면 좋을 것 같다고 답변해 주셨다. 은퇴하면서 아예 주거지를 옮기는 게 아닌 현역으로 근무를 하시기에 비교적 인구밀도가 있는 경기도 지역을 말씀하셨다. 부동산에서는 아빠가 직접 시간을 내서 발품을 팔아야 한다고 하셨는데 아빠는 딸에게 부탁을 하셨다.


이 당시의 K-장녀는 아무리 바빠도 부모님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았다. 키워드를 원하는 지역과 주택 형태로 변경해 가며 열심히 손품을 팔아 두 달 동안 약 10건이 넘는 매물의 링크를 보내드렸다. 그중에 마음에 드는 주택은 며칠 고민을 하시다 해당 매물을 보유한 부동산에 연락을 하니 당일 이미 다른 분이 계약을 진행했다는 소식에 아쉬움을 가지기도 하셨다.


고민이 계속된 나날을 보내며 적극적인 자세로 알아보지 않는 모습에 혼자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그리고 결국 원하는 매물은 없다는 뉘앙스로 조금 더 알아보자고 대화를 마무리하셨다. 그리고 엄마가 현재 거주지에서 근로 중이므로 처음 아빠가 말하신 지역이 아닌 직주근접을 원한다는 코멘트를 붙이셨다.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여태 딸의 손품을 팔아 알아본 주택은 엄마와 아빠가 서로 공통으로 원하는 바가 아니었음을.


이후에도 온라인에서 발견한 매물을 보고 직접 연락을 취하거나 발품을 팔아 현장에 가보시는 일은 거의 드물었다. 그리고 매물을 알아봐 드리는 과정에서 이런 메시지를 보내시기도 했다. "실거래가보다 비싼 가격에 나왔는데 1년 상승가를 감안한 건가 협의 좀 해보소" 간혹 아빠의 메시지는 내가 비서인 건가 착각이 들기도 했지만 공인중개사 느낌으로 친절히 견해를 말씀드렸다.


그렇게 1년이 훌쩍 흘러버렸고, 아빠는 결국 엄마가 원하는 방향으로 따르시겠구나 생각이 들어 엄마가 직장을 편히 다니실만한 동네의 공동주택으로 다시 눈을 돌려 알아봐 드렸다. 항상 정확한 예산을 드러내시지 않아 대출도 생각 중이시겠거니 나름 추측하여 손품을 팔아보았지만 결과는 제로. 이제는 포기해야겠구나 싶어 그만 알아봐야겠다는 결심을 했고, 오랜만에 만난 엄마에게 진짜 원하는 금액이 얼마냐고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엄마는 진짜 핵심을 물어보는 딸에게 눈도 마주치지 않고, 얼버무리듯 작은 목소리로 지금 살고 있는 집의 보증금과 동일한 금액을 말씀하셨다. 매달 임대료가 부담되어 이사를 하고 싶은 마음은 있으나 결국 추가 대출을 원하시지는 않아 딸이 알아봐 준 매물을 매번 좀 더 고민해 보겠다는 말씀으로 마무리지으셨던 것이다. 결국 답은 부모님 두 분에게 있으셨고, 나는 1년 반동안 애먼 시간만 날려버린 느낌이 들어 허무했다.




며칠 전 아빠로부터 날씨에 관한 스몰토크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무더운 여름에 딸의 안부를 물어보신 줄 알고 잘 지내고 있다는 의미로 아이들 사진을 함께 전송하며 답장해 드렸다. 그러자 스몰토크에 숨겨진 진짜 메시지가 등장했다.


아빠가 자동차를 바꾸고 싶은데 소형 지프차량 모델을 검색해 줄 수 있냐고 하셨다. 직접 검색해 본 결과 나온 모델이 3천만 원 후반에도 구입할 수 있다고 나오는데 차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 어렵다는 의견을 덧붙이셨다.


그래서 범위를 좁히고자 신차 vs 중고, 엔진차량 vs 전기차량, 예산은 얼마인지 등등 여러 선택지를 여쭤보았다. 그러자 돌아오는 것은 모두 알맹이만 쏙 뺀듯한 교과서적인 답변뿐이었다.


의견 1 - 가급적이면 신차를 구입하고 싶은데 23년도 중고차량 중에 무사고 차량도 괜찮은 것 같다.

의견 2 - 이자가 그리 부담이 없으면 현재 수입이 있으니 할부를 조금 넉넉하게 하고, 이자가 부담되면 할부를 줄이면 될 것 같다.

의견 3 - 전기 풀충전 시 300km인데 겨울철에는 200km 정도여도 크게 상관은 없을 것 같다.

의견 4 - 차량 구입시기는 정해진 것 없는데 다음 달도 괜찮다.


처음 아빠가 말씀하신 지프차량은 브랜드 JEEP가 아닌 비포장도로도 잘 다닐 수 있을만한 SUV차량을 말씀하신 것이었고, 의견을 종합해 보아도 좀처럼 추천해 드릴 만한 차량을 선뜻 제시할 수 없을 만큼 범위가 방대했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상대방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모래가 가득한 해변에서 보석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것도 알아봐 드리기 어렵겠다는 마음을 품고 있을 때, 몇 년 전 집을 알아봐 달라고 하셨던 사례와 무섭도록 유사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진짜 마음을 드러낸다는 것이 왜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떠올려보았다.


첫째는 실수하고 실패할까 봐 겁이 나는 것이다. 내가 고른 물건이 좋은 줄 알고 골랐는데 사실은 잔고장이 많고, 충분히 알아보지 않아서 내가 가진 금액 대비 최고의 물건을 고르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청소년의 나도 진짜 마음은 꽁꽁 감춘 채 성장했는데 성인이 되어 실패한 경험이 오히려 더 큰 성장을 가져다주고 이후 많은 배움을 하게 되어 선순환이라고 느낀다.


둘째는 진짜 내 모습보다 더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내가 이 정도 예산으로 집을 알아보고 있다고 하면 그 정도 수준의 사람으로 보일까 봐 조금 더 부풀려 살짝 과장되게 말하는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려면 진짜 예산은 이 정도 금액이고, 대출을 받고 싶지 않지만 마음에 드는 매물이 없다면 더 비싼 매물도 대출받아 구입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동네에서 얼굴만 알던 아이 친구 엄마가 뜬금없이 우리 집 평수를 물어본 적이 있었다. 나는 꾸물거리지 않고, 25평에 5인가족이 살고 있다고 대답했다. 청약 당시 분양 금액은 25평도 우리 가정에게 충분히 높은 금액이었다는 부연설명은 붙이지 않았다.


조회수가 올라가며 브런치에도 결코 피해 갈 수 없는 악플을 마주하고도 나는 그냥 계속 쓰기로 했다. 누군가에게 쓰레기로 보였던 어떤 글이 결코 나랑 동일시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실패하고 나서도 계속 써야 조금이라도 나은 글을 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진짜 나를 드러낸다고 큰일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30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나를 드러냈지만 최대 수혜자는 바로 나 본인이었다. 내 앞을 둘러싼 투명한 막을 걷어내고야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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