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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쥐방울 Jul 08. 2023

상상한 미래의 삶으로 살아보기

기상 직후 양치와 세수를 마치고 물과 비타민을 들이켠다. 그리고 가족들이 일어나기 전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잔 내려서 책 속에 있는 활자 속으로 빠져든다. 7시 알람이 울리자 3초도 안되어 로봇처럼 벌떡 일어나는 딸이 거실로 나오자 책을 덮고 엄마모드로 변신한다.


비타민과 물을 건네고, 전날 생각해 두었던 간단한 아침 메뉴를 차려낸다. 출근하는 배우자에게 건넬 커피를 텀블러에 담아두고, 초등 아이의 준비물을 한번 더 확인하면서 유치원생 어린이의 물과 간식을 가방에 챙긴다. 8시 배우자 셀프 출근, 8시 20분 초등학생 스스로 등교, 8시 40분 유치원생 등원과 동시에 레깅스를 입고 나온 나는 바로 필라테스 센터로 향한다.


9시에 예약해 둔 필라테스 센터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다. 운동을 좋아하지도 않고, 드라마틱한 다이어터도 아니고 그저 아프지 않으려고 살기 위해 하는 운동이다. 갈 때마다 지난날 예약한 나의 손가락이 후회스럽지만 50분 동안 몸을 움직이며 땀 흘린 후에는 분명 한 시간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된듯한 느낌이다. 비유하자면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느낌이 다르다고나 할까.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마치고 오전시간에 글쓰기를 한다. 소설인지 동화인지, 일기인지 에세이인지, 독후감인지 서평인지 예측할 수 없지만 한 줄이 되었든 몇 장이 되었든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을 글자로 바꿔 종이라는 책장 안에 넣어둔다.


나의 점심시간은 스크린타임이다. 구독해 둔 유튜브 채널에서 올라온 영상을 볼 때도 있고, 보고 싶었던 드라마가 있거나 죽어가는 연애세포에 CPR이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는 넷플릭스행이다. 맛있는 거 먹으면서 즐기는 스크린타임이라니! 결혼 전에는 몰랐던 혼밥의 즐거움을 매우 애정한다.


점심식사 후에는 호스트로 운영하는 공유숙박공간에 관리하러 출발한다. 다른 공간은 6개월간 단기임대 중이라 별도로 관리가 필요하지 않아 다음에는 단기임대처럼 셰어하우스를 운영해보고 싶은 마음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전에 생각해 두었던 동네의 구축 아파트를 탐방하는 시간을 가진다.


초등학생이 하교하기 전에 집으로 돌아와서 간식을 챙겨주고, 동생이 하원할 시간이 되면 유치원 앞으로 함께 데리러 간다. 아이들과 모두 만나면 늦은 오후에는 밖에서 놀거나 집에서 책을 보며 시간을 보낸다. 놀다 보면 꼭 갑자기 배가 고프다는 어린이들 덕분에 집 앞 마트에서 한아름 장을 봐오기도 하고, 일주일에 한두 번은 쿠팡이츠의 도움을 받는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아이들은 스스로 양치와 치실을 하는 동안 식탁에 있는 그릇들만 싱크대로 대충 모아서 치워둔다. 양치를 마친 아이들을 한 명씩 씻기고, 모두가 잠옷으로 환복 했을 때 나도 재빠르게 싱크대에 담가두었던 그릇을 식기세척기에 집어넣고 휴식모드에 들어간다.


저녁 7시가 넘은 때부터 소등하는 9시 전까지는 각자 시간을 보낸다. 학교 숙제가 있는 어린이는 할 일을 하고, 책을 읽어달라는 어린이의 요청에는 책을 읽어주기도 하며 어떤 어린이는 만화책에 빠져든다. 거북목이 되지 않을까 염려되지만 잔소리 대신 나도 내가 보고 싶은 책을 보기로 한다. 외면해야 정신건강에 이롭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녁 9시 잘 자라는 인사와 함께 소등하고, 아이들은 10시가 되기 전에 모두 꿈나라로 향한다. 그때부터 침대에서 다시 빠져나와 노트북을 펼쳐든다. 오후에는 발품을 팔아 임장을 했으니 늦은 밤에는 손품을 팔아 부동산 물건을 검색하고 공부를 한다. 보다 보면 사랑에 빠지는 물건도 가끔 나오는데 어쩌다 깨어있는 배우자와 함께 못다 한 집안일을 하며 금액을 상의해보기도 한다.




꽤 오래전부터 상상해 왔던 삶이 있다. 가족들이 출근 및 등교한 오전시간에 4시간 정도 일하고, 아이들이 돌아오는 오후부터 저녁까지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이후 늦은 밤에 못다 한 일이 있으면 몇 시간 더 일하고 싶은 꿈을 꾸고 있다. 9 to 6의 고정수입이 있는 삶도 좋지만 실제 무슨 일이 있어도 퇴근시간이 지켜질 수 있는 회사가 몇이나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아직까지는 아이들과 더 많이 함께하는 시간을 보내고 싶은 엄마의 욕심도 있었다.


그래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인생 시나리오만 상상해 오다가 거시경제학을 창시했다고 알려진 영국의 위대한 경제학자 케인즈의 명언을 읽고 상상을 멈추기로 했다. 장기보유하는 게 좋다는 주식에서 케인즈는 이런 명언을 던졌다.


길게 보는 거 좋지.
그런데 장기적으로 보면 우리 다 죽거든.


내일, 다음 주, 내년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내가 원하는 삶을 막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미루지 말고 실현 가능한 이번주에 한번 직접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해 보았다.


아이들이 모두 학령기가 되면 비싼 필라테스도 일주일에 두세 번씩 가서 꼭 운동하리라 마음먹었었다. 그런데 그동안 아프고 그때 가서 운동하며 몸을 회복한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해내기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비싼 개인레슨 대신 저렴한 프로그램으로 평일 5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미래의 삶을 사는 것처럼 운동하며 일주일을 보냈다.


미래의 삶을 살아보겠다며 하루의 시작과 끝까지 모두 빠짐없이 적어보았지만 아직 100% 현실일 수 없다. 일치율은 약 80% 정도 된다. 소유 공간은 실거주 1채뿐이고, 공유숙박을 운영하거나 단기임대를 운영 중인 공간은 없다. 그런데 모르는 부분은 공부하고 있고, 경험해보지 않아서 떨리지만 도전해 보기로 한 분야도 있다. 임장은 당장이라도 할 수 있었으니 아예 가능성 없는 미래는 아닐 것이다.


원하는 인생을 살기 위해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해 보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님을 알게 되었다. 글을 쓰다 보니 가까운 지인은 실력보다는 내 꾸준함을 칭찬해주기도 했다. 공간임대에 관심이 있으니 손품과 발품을 팔며 시야가 넓어지고 상상해 오던 삶으로 근접해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모래 속에 깊숙이 파묻혀있는 미래의 삶을 정신없는 현실 속에 안 보인다고 잊어버리면 안 되니까 조금 보이는 곳에 가져다 두기로 했다. 그래야 나는 조금이라도 따라잡아보고 싶은 마음의 힘을 발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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