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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쥐방울 Jul 12. 2023

아모르파티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

시간이 빠르게 흐를 거라고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정말 그렇게 되어버렸다.


배우자의 육아휴직 3개월이 확정된 지난 4월 초에는 문득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서 김혜자 님의 내레이션이 떠올랐다.

나의 인생이 불행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억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당신과 행복했던 기억부터 불행했던 기억까지 그 모든 기억으로 지금까지 버티고 있던 거였습니다.


21살에 만나 함께 아르바이트와 학교생활을 하며 지내왔다. 졸업 후에는 서로 직장에서 1년간 천만 원씩 모아 2천만 원으로 집을 계약하고 결혼을 했다. 9월에 결혼식을 올리고 임신을 하게 되어 다음 해 7월 말 첫 아이를 출산하게 되고, 이후 20개월 간격으로 두 번의 출산을 더 하게 되었다. 그리고 끊임없는 번아웃이 찾아왔다.


초등학생 때는 잦은 전학으로 적응하는데 마음을 쓰느라 바빴다. 중학생 때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대비하다가 3년이 가버렸다. 고등학생이 되자 일출 전에 등교해서 일몰 후 늦은 밤에 하교하는 그저 대학을 가기 위한 삶만 있었다. 대학을 가니 취업이 기다리고 있었고, 취업을 하니 결혼과 출산으로 이어져 어느새 육아를 하고 있다.


배우자와 함께하는 3개월 동안 어쩌면 나는 드라마 대사처럼 이 기억을 안고 평생 살아가야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끝나버렸다. 그런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모든 것이 원래대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돌아가 있었다.


3n년 살아온 동안 기억나는 일들은 살아 움직이는 동영상이 아닌 그저 사진처럼 찰칵 그 순간으로 남아있는데 대부분 행복했던 기억보다 불행했던 기억이 조금 더 많았다. 그런데 3개월간의 기억 속에는 다행히 불행했던 기억보다는 행복했던 기억을 머릿속에 사진으로 많이 남겨두어서 기쁘다.



우리는 함께 벚꽃을 보았다. 그는 높은 곳에 달린 체리열매를 따주기도 했고, 내가 아플 때 그가 있었기에 아이들을 어떻게 돌볼지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었다. 평일에 맛집이라는 곳에 가보기도 했고, 출근 일주일을 남겨두고는 훼손된 벽지를 보수하고 페인트칠을 해주었다.


물론 매일 좋기만 한 나날들이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휴직 2개월 차에는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을 다시 읽어야 할 만큼 관계에 금이 가기도 했으며 당시의 심정은 이러했다. '에잇, 휴직은 3개월로 족해' 다행스럽게도 그러한 관계는 니체의 아모르파티(Amor Fati)라는 운명관을 통해서 모든 것은 나의 선택이고, 앞으로 삶의 태도를 정립하는 계기가 되어 자연스럽게 회복할 수 있었다.


휴직이 종료된 출근 첫날에는 아주 자연스럽게 야근을 하고 밤 10시가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서로에게 짧은 안부를 주고받으며 잠이 들기 전 회상한다.

같이 마주 앉아 식사를 하고 나서 정리하는데 첫째는 춤을 추고, 둘째는 책을 보고, 막내는 목욕을 한다. 취침 전까지 시간이 남아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영화 한 편을 틀어주고, 배우자와 함께 밖으로 나선다. 커피 한잔을 사들고 공원을 산책하다 나란히 앉아 노을이 지는 모습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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