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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쥐방울 Jul 15. 2023

장마는 절호의 기회다.

천고마비로 일컫는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도 부른다.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선선한 날씨 덕분에 책 읽기 좋은 계절이라고 이름 붙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진짜 책 읽는 사람에게 책 읽기 좋은 계절이라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냥 언제 어디서든 책만 펼치면 그만이니까.


아마 산과 바다 어디로든 훌쩍 떠나기에 좋을 테니 출판업계에서 맞닥뜨리는 비수기는 어떻게든 사람들의 마음을 돌려보려는 것일까 싶을 때도 있었다. 만약 하늘은 높푸르고 온갖 곡식이 익어가는 가을철에 굳이 독서와 여행 중에 선택을 해야 한다면 운동화 신고 하루종일 걸으며 여행하는 것을 택할 것이다. 물론 가방 속에 책 한 권 챙겨서 떠나면 금상첨화겠지만.


요즘처럼 여름철에 장마전선의 영향으로 한동안 비가 내리는 날씨가 지속되는 기간이야말로 책에 눈길을 한 번이라도 더 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특히 강한 비와 침수우려 및 산사태로 하루에도 몇 번씩 안전안내문자를 수신할 때면 더욱 차분한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그날의 꽂히는 책을 골라서 펼쳐든다.


저녁 7시부터 한두 시간가량 의도적으로 쇼윈도 독서를 시작한 지 9년 차가 되다 보니 어느새 쇼윈도는 집어치우고 진짜 책 읽기의 재미에 빠진 사람은 바로 나다. 이제 아이들이 책을 보든 말든 굳이 상관하지도 않게 되었다. '아들아 너는 게임을 하거나, 나는 글을 쓰겠다.' 결혼 후 주말엔 게임하는 배우자 옆에 앉아 책을 펼쳤는데 이제는 게임하는 아들 옆에서 책을 보고 있는 데자뷔 같은 일상이다.



그러다가 잘 시간만 되면 책을 펼쳐서 석고대죄하듯이 머리를 조아리며 책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집안을 전체 소등하려는 시간에 똑바로 앉아서 보라거나 잘 시간인데 빨리 누우라거나 이런 잔소리를 더하지 않고 외면하는데 이게 맞는 건가 여전히 의심스럽다.


그밖에 초등 어린이에게도 외면할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예를 들면 사장님 자세(의자에 앉아서 다리는 책상에 올려져 있음)로 책을 보거나 침대에 드러누워서 발가락(엄지와 검지 사이에 책을 끼워 독서대 역할을 함)으로 책을 들고 있는 모습 등이다.


그래도 중요한 건 거북목이 우려되는 아들이 게임도 영상도 재밌지만 책도 재밌다고 말한다. 막내는 언니가 읽어주는 그림책을 보며 자란다. 그러니 한 달에 한번 정도 첫째가 읽어달라는 책만 읽어주면 되는 자동 육아시스템이 갖춰졌다. 나는 한 번도 책을 좋아한 적 없는 어린이였는데 그저 신기하다.


3년 전 책을 읽어주던 어느 밤 목소리는 잘 나오지도 않고, 너무 졸려서 눈도 잘 떠지지 않아서 책 속에 있는 글자가 둥둥 떠다니자 횡설수설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는데 아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고 나한테 커피를 좀 마셔보라고 권했다. 그로 인해 내 목소리는 몇 번의 변화를 거친 듯 하지만 덕분에 장마와 다가올 방학도 두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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