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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쥐방울 Aug 13. 2023

어디까지 허술해봤니

20년 전 10대였던 나를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나 그 목소리에는 내 이름이 담기지 않았다. 나를 부르는 것이란 걸 직감으로 알아차리고 몇 초 후 느릿느릿 엄마 앞에 나타나면 엄마는 그제야 동생 이름을 불러놓고는 아무렇지 않게 다시 내 이름을 부르며 하려던 말씀을 이어나가셨다.


나는 아닐 줄 알았다.

엄마가 딸 둘을 낳았는데 나는 셋이나 낳아놓고는 엄마와 다를 거라며 마음속으로 호언장담 했었다.


화가 많은 사람으로서 더운 여름에는 사소한 일로 더욱 머리가 뜨거워지고 목소리가 높아지곤 했다. 어느 날 화의 버튼이 눌릴만한 상황을 발견하고는 내 머리는 첫째 아이를 부르려 했으나 입은 셋째 아이를 부르고 있었다. 내 앞에 나타난 셋째에게 미안하다고 말한 뒤 다시 감정을 한껏 실어 담아 둘째 아이의 이름을 부르고 말았다. 또 실수한 스스로에게 망연자실하며 둘째에게 사과하고, 진짜 첫째 아이를 부를 때는 이미 머쓱해져 버린 상황에 화는 어느새 부끄러워 꽁무니 뒤로 숨어버리고 말았다. 1부터 10까지 세지 않아도 이미 시간이 그만큼 흘러서 굳이 장점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 외에도 귀여운 실수담은 밤새도록 말할 수 있을 정도다. 평일에 아이들과 차를 타고 나들이를 가면 돌아오는 길에 운전하면서 카페인을 충전해야겠다는 마음에 커피를 구입하고, 세 아이들을 모두 안전벨트 하는 동안 차 지붕 위에 커피를 잠시 올려두었는데 한 모금도 마실 수 없었다. 5분 넘에 출발준비를 하는 동안 지쳐버려서 빨리 출발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찼던 것이다. 출발 직후 컵홀더에는 커피가 없었고, 뒷유리로 테이크아웃 커피가 날아가는 광경을 바라보아야만 했었다.


보부상 캐릭터가 아이들과 함께 다니며 물건 하나쯤 빠뜨리는 건 예삿일이었다. 그때마다 스스로에게 건넸던 위로는 이런 말이었다.

'그래도 아이들 안 잃어버린 게 어디야'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에게 주문 같았던 이 말이 깨지던 날도 있었다. 만 4세였던 첫째 아이가 킥보드를 타고 아파트 단지에서 시야로 사라지던 날, 둘째 아이를 손에 잡고 셋째 아이를 아기띠 하고 있던 나는 도저히 아이를 찾을 수 없었다. 결국 10분 이상 둘째 아이를 재촉해서 뛰어보고는 울면서 경찰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결국 30분 안에 아이를 찾아 얼싸안고 상봉하는 경험도 했다.




검은 티에 청바지는 교복이었고, 화장은 패스하지만 아이들과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동안 립밤을 겨우 바르던 시절이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듯하다. 첫째 아이도 어느덧 어엿한 초등학생이고, 둘째와 막내까지 아기티를 벗어난 어린이가 되자 이런 허술한 에피소드는 서서히 주기가 잦아드는 것만 같았다.


얼마 전 작은 가방과 큰 가방 하나씩 어깨에 각각 걸치고, 아이들과 놀이터에 부랴부랴 나가고 있었다. 물, 지갑, 핸드폰 등등 빠진 건 없겠지 떠올리며 엘리베이터를 탔고, 1층에 내려와서야 발견했다. 내 신발이 짝짝이였다는 것을.



처음 보는 광경에 다시 집에 다녀와야 하나 멍하니 서서 5초나 고민했다. 아이들은 황당한 내 표정을 보더니 대책을 내놓기는커녕 웃기만 하고 있었다. 그 순간 하필이면 귀차니즘이 발동하여 집이 아닌 놀이터로 곧장 향했고, 두 시간 후에 돌아왔다.


영화 <러브레터>(1999)에서 여주인공은 아무도 없는 하얀 눈밭에서 이렇게 외쳤던 게 떠올랐다.

"오겡끼데스까~"


누가 묻지 않았지만 나도 이렇게 외치고 싶었다.

"저도 원래 이런 사람은 아니었습니다만."


저녁식사를 하면서 또 신발이 떠올라 아이에게 오늘의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만약 아이가 짝짝이 신발을 신고 나왔다면 갈아 신고 다시 나오자고 권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는 신발의 색깔과 디자인이 비슷하니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말해주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엄마는 그런 건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짝짝이 신발 따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아이의 말에 웃음이 나면서 위로가 되었다.

오늘의 교훈 : 신발을 한 켤레만 꺼내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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