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여덟 유럽여행 Day 2
빈센트 반 고흐가 자화상을 그리기 시작한 건, 모델 비용을 아끼고 자신의 정신적 육체적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고, 그의 동생 테오(Theo)에게 보내는 편지에 적혀있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자화상을 40장 이상 그렸고, 초현실적이리만치 밝은 배경 색이 덧입혀져 있지만, 고독하고 불안한 한 중년 남자의, 당시 잘나가던 살롱전의 그림 기법과 동떨어진 그의 그림들은 사람들에게 외면받았다.
그는 정확성을 자랑하는 고딕 양식의 성당을 구불구불한 윤곽으로 처리하고 성당 건물이 마치 하늘을 날아갈 것처럼 표현했고, 정신병원에 입원한 1년 동안 화가 밀레의 흑백 작품이나 일본의 목판화를 보며 당시 농부들의 고단함과 경쾌함을 떠올리며, 자신이 상상한 색으로 덧입혔다.
그에게 그림은 그가 바라본 사람과 세상에 대한 해석을 표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죽기 전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sur-Oise)에서 70일 남짓한 기간 동안 70장 이상의 그림을 그렸던 것처럼, 그는 그야말로 표현하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빛과 색채의 마술사, 모네 역시 지독한 사람이었다. 그는 점묘법(Pointillism) 대신 분할된 붓터치를 통해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의 감각을 제대로 담아 내기 위해 시각에 따라 변화하는 나무들을 수십 장 그렸고, 자신의 작업실로 가져와 그것들을 합쳐 하나의 인상(Impression)으로 완성했다. 마치 진실은 흔들리며 변화하는 요소들이 만나는 그 지점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그런데 지금은 그게 아닐 수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인상주의 선구자로 불리는 마네는 그 당시 부르주아들이 누렸던 향락적인 일상을 화폭에 도발적으로 담은 화가였다. 자신의 모델과 친구가 누드차림으로 피크닉을 즐기는 장면(풀밭 위의 점심식사)에서 귀족 부인의 죄책감 없는 당당한 눈빛을, 사창가 여인에게 구애하는 남성의 욕정(올랭피아)을 고양이의 꼬리로 상징하며 화폭에 담아 냈고, 체면이 중요한 귀족들과 살롱 화가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발레리나들의 무대 뒤 준비 장면을 주로 그렸던 드가는 그녀들의 몸 푸는 모습이 마치 동물들이 그루밍을 하는 것 같다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인간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인상주의. impressionism. 신화나 역사, 종교 대신, 자신들 눈앞에서 펼쳐지는 일상과 변화하는 사물의 풍경을 담고 싶어 했던 1860-1890년대 화가들. 마네, 모네, 르누아르, 드가가 대표적이며, 후기 인상주의로 분류되는 반 고흐 역시 인상주의의 색채 실험에 큰 영향을 받았다. 당시 신기술이었던 사진과 달리, 화가만이 포착할 수 있는 인상, 빛, 색채 등에 집중해 일부러 파리 근교로 나가 빛과 자연의 변화를 관찰하며 그림을 그리거나 거친 붓의 질감을 그대로 담아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교과서에서 많이 봤던 화가들이기에, 당연히 프랑스의 주류 화가라고 인식했는데, 이 곳 오르세 미술관에서 '인상파 화가'들이 얼마나 객기가 넘치고 도발적인 분들인지 알게 됐다.
'인상주의'라는 이름도 '그까짓 인상(Impression)'이라는 경멸의 의미로 붙여질 만큼 그들은 그 당시 전통과 규범을 중시하던 예술계의 엄청난 아웃사이더였다.
그들이 말하는 '이게 진짜 예술이야'는 특정 시점의 '완성'과 '완벽'을 거부하고, 시시각각 변하는 과정의 변화와 미완성에서 오는 괴로움, 그 속에서 완전함을 향한 열망을 포착해 내는 데 있어 보였다.
그리고, 100년이 지난 지금, 그들의 그림은 그들을 경멸했던 전통 화가들을 비웃으며 경매에서 가장 비싸게 거래되는 그림이 되었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그들이 그려낸 불완전하고 모순적이며, 흔들리는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동적인 에너지가 사람들에게, 실패가 아니라고, 끝난 게 아니라고, 우린 계속 움직이고 있고, 나아가고 있다고 말해줘서가 아닐까.
인상주의 화가들이 프랑스 파리를 대표하는 작가들로 떠오른 건, 사람들의 예술에 대한 관점이 갑자기 바뀌어서라기보다, 당시 신흥 부르주아들이 부를 축적하며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한 것과 관련이 있다는 Gemini의 설명.
문화 예술은 여유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고차원적 영혼과 지적 유희를 뽐내는 수단으로 오랫동안 자리 잡아 왔고, 새로운 기득권인 부르주아들에게는 그들의 가치를 대변해 줄 예술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부자들이 밝고 유럽의 전통에 얽매이지 않았던 인상파의 그림에 열광하게 되면서, 뒤늦게 프랑스에서도 '우리가 천재를 못 알아봤다'며 인상파를 재평가하기 시작하며, 프랑스에서의 위상이 확고히 하게 됐다고.
오르세 미술관 5층을 가득 메운 인파들을 보면서, 시대가 바뀌는 혼란의 시기, 변화를 읽고 혼란의 틈바구니 속에서 자신의 언어로 읽고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갤러리에 걸린 그림들은 시대의 변화를 이끈 '혁신'이 있거나 당시 시대의 풍조를 가장 잘 살려 활약하거나 에 달려 있었다. 하지만 혼란 속에 있는 당사자인 화가가 자기 세대 이후에 자신이 어떻게 평가되고 살아남을지 점칠 수 있을까? 그런 사람이 있다 해도 매우 드물 것이다. 그들은 그저, 자신이 옳다고 믿었던 방식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끝까지 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소더비 경매에서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는 그림들은 작가가 자신의 재능과 믿음을 어디까지 실험했는지, 모순 덩어리고 시시각각 변하는 인간이라는 생물체를 어디까지 사용할 수 있는지에 상당부분 달려 있지 않을까.
파리 2일째인 어제, 가장 유명한 뮤지엄인 오르세 미술관을 오전에, 루브르 박물관을 오후에 방문했다. 수 세기 동안 프랑스의 위엄과 화려함을 뽐내는 역사적인 공간 루브르의 건물도 좋았고, 가이드분이 설명해 주신 프랑스가 보유한(약탈해 온) 어마어마한 작품들도 좋았다.
하지만 루브르와 오르세, 두 박물관에서 나에게 기억에 남는 건, 작품 자체의 훌륭함이 아니라 작가들의 삶의 스토리와 그 스토리가 빚어낸 관점이였다.
종교화나 귀족의 하청을 받아 그림을 그리던 때부터, 자신들의 삶과 생각을 표현할 때까지, 세계 최고의 갤러리에 걸린 그림을 그린 예술가들은 자신들이 이해한 사람과 세상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하기 위해 미친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런 차원에서 모든 화가들은 자화상을 그린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자화상을 그린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자신의 얼굴이나 상징을 그려 넣음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 했다. 혹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처럼 자기만의 해석을 담은 수수께끼 흔적을 그림에 남김으로써 사람들을 혼란에 빠트렸다.
지금까지의 미술사는 그렇게, 작가들이 시대상을 반영해 자신들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만든 '자화상'의 역사가 아니었을까.
셀카를 찍을 때 나에게는 두 가지의 마음이 있다.
'나를 드러내고 싶다' vs. '전체에 충실한 하나의 오브제에 머물고 싶다'
어느 하나에 집중하면, 집중받지 못한 또 다른 마음이 항상 아쉬움을 드러낸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프리랜서로 일했던 지난 5년이 난 늘 그랬다.
강사, 코치, 컨설턴트...
회사에 있을 때 남들이 정해주던 나의 사회적 페르소나를 스스로 주장하고, 증명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계속 바뀌어가는 나의 명함 속 타이틀을 드러내고 싶을 때도 많았고, 그에 걸맞지 못한 나의 실력이 부끄러워 끝없이 숨고 싶을 때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1인 기업을 선언하며 새롭게 시작한 SNS도 포스팅을 올릴 때마다 가슴이 쿵쾅거려 에너지가 많이 소모됐고, 급기야 내 정신건강을 생각해 중단하게 됐다.
하지만, 이렇게 중력을 거스르며 14시간 비행기를 타고 지구 반대편에 와 보니, 내 안에도 인상주의자들의 피가 흐르는 걸 안다. 내가 바라보는 사람과 세상은 이렇다고, 내가 말하는 게 항상 옳고, 전부라고 나는 말할 자신도, 자격도 없지만 내 생각은 이렇다고 말하고 싶어 미치겠는 욕구가 나에게는 있다.
그리고, 당연히 기억에 남고 싶고 유명해지고 싶다. 하지만 '해야지'라는 마음이 '하고 싶다'를 누르면, 내 안의 에너지가 쉽게 고갈되는 것도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 나만의 방식으로 나를 끝까지 밀어 보는 것. 드러내고 싶은 욕구도, 하나의 충실한 조각에 머무르고 싶은 욕구도 모두 존중하고 보듬어 주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매번, 하루 내가 할 수 있는 붓터치를 해 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나만의 반짝이는 인상주의 화가의 그림을 그리는 내가 되어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이렇게 정리되지 않은 여행의 생각 조각들을 남긴다.
이제 3일을 시작한다. 어제 무려 12만 원 주고 산 48시간 뮤지엄 패스를 뽕 뽑으러, 오늘도 미술관 투어를 계속해 볼 생각이다!
태양왕 루이 14세-16세 황제들의 화려함을 지금까지 재현해 둔 베르사유 궁전도 방문해 볼까 했지만, 사실 난 완성된 화려함에 별로 관심이 없다. ("내가 태양"이라니, 정말 너무 탁월해서 가까이 가고 싶지 않은 분이다)
오늘도 가볍게, 완벽함 보다는 오늘도 흔들리면서 드러내는 나를 존중하며,
Go Go Carrie!
[Day2의기억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조각상은 외로워보였다. 지금 AI로 대변되는 변화를 경험하는 사람들은, 너무 많은 사유 보다는, 인상파 화가들처럼 붓질 하나하나 시도하고 실패하며 자신을 만들어가길 원하기 때문은 아닐까, 내 멋대로 해석한다.
아. 이제 일기는 그만! 임프레셔니스트처럼 순간의 진실을 잡으러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