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여덟 유럽여행, Day 3
Day3는 구글맵 없이 흘러갔다.
전 날, 줌 미팅을 2시간 하고 나니 하루 3G로 설정한 데이터가 속절없이 떨어져서, 카카오톡 텍스트 보내기 정도만 가능하고, 길찾기 검색도 힘들었다. (내가 어디있는지 지도는 보여줬다)
하지만 '인류는 스마트폰 출시 전에도 유럽여행을 다녔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먹으면 된다'의 심정으로, 지하철 역사에서 얻은 지도 한장을 가지고 숙소를 나섰다.
아침 8시 30분, 호스텔을 나가서 저녁 8시 30분 돌아올 때까지, 어림잡아 3만보는 걸은 듯 하다.
중간에 지도도 잃어버렸고, 나는 계속 길을 잃었다.
하지만 덕분에 아주 작은 도전(이 길을 가도 될까?)에서도, Comfort zone을 넘어가는 용기를 내야만 했고, 도전이 작아 성취도 쉬웠기에, 거듭거듭 길을 발견하는 Small Win들이 쌓여 돌아오는 길은 나에 대한 대견함과 하루에 대한 만족감으로 가득했다.
(파리같은 안전한 곳에서 이렇게 뽕이 차오르는 걸 남들은 비웃겠지만, 고통은 주관적이기에, 길치인 나에게는 그렇고, 나의 주관성이 중요하다)
길을 찾는 좋은 도구보다 더 중요한 건,
어디로 가고 싶은가,
왜 가고 싶은가,
그 길을 가는 너 자신을 믿는가?에 대한
나의 답변이다.
그 답변을 가지고 안개 낀 길 위에서 삽질을 계속 하다 보면,
나만의 Best-Cut이 생겨나고 길을 걷는 것이 즐거워진다.
인상주의 화가 모네의 수련 연작이 있는 오랑주리 미술관.
모네는 화가이자 식물 전문가였다. 자신이 사랑하는 지베르니의 정원을 구입(1980년)해 다양한 이국적 식물을 심었고, 그 중 수련에 꽂혔다.
수련이라는 하나의 모티브로 여러 버전을 제작, 그 스스로에게도 다양한 기법을 훈련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프랑스 정부에 기증할 목적으로 지금의 연작을 기획했고, 1920년 세계대전 이후 그가 죽은 이후에야 정부에 기증됐다.
전 날, 오르세 미술관에서도 모네의 거친 붓터치로 켜켜히 쌓아 올린 작품의 오묘함을 보았지만 (특히, 영국 국회의사당을 그린 그림) 이 곳에서 만난 수련 연작은 오묘함의 깊이가 더 크다고 해야 할까.
그림의 사이즈가 주는 압도감, 자연광 속에 작품이 노출되며 마치 실제 정원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하는 건축물의 설계, 그리고 색과 윤곽이 뭉개진 오브제들이 만들어내는 역동은 나를 작아지게 했고, 고요하게 했다. 모네 역시 이 공간이 명상의 공간이 되기를 희망했다는 설명이 보였다.
"풍경은 하루 아침에 당신을 사로 잡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그림을 그릴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수련을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거든요. 그러다가 어느 한 순간, 마법처럼 붓을 집어 들었고, 몇 년 동안 수련을 그리기 시작했죠. 대상은 중요하지 않아요. 대상과 나 사이에 무엇이 있는지, 보이지 않는 그 것이 중요한 것이죠."
오디오 가이드가 전해주는 모네의 이야기.
'빠르게 빠르게'의 강박 속에 마음 보다 행동이, 생각보다 말이 앞서고, 또 후회하는 나에게, '잠깐 멈춰서 영혼이 따라올 시간을 주게나' 라고 말하는 듯한 모네 아저씨의 조언 같았다.
'결과 보다 과정이 중요한거야, 너의 마음의 과정이, 그게 당장은 삽질로 보일지라도 마음이 하는 얘기에 귀 기울이면 언젠가 너만의 수련을 그릴 수 있어' 라고.
미술관 지하에서는 인상주의 화가에게서 영향을 받은 신인상주의, 입체파, 큐비즘, 야수파들의 전시가 이어졌다. 그들의 작품에서 전에는 보이지 않던, 대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주관이 이후 현대 미술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 지가 보였다. 우리는 누구나 선배들이 넘겨준 유산의 바통을 이어받아 후배들에게 더 나은 것을 전달하는 책임을 가진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변화의 시대일 수록, 바통을 이어받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과거의 관념에 붙들리지 않고, 새로운 관점을 받아들이는 언러닝Unlearning의 마인드셋이 중요하다는 사실도.
지하 전시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사실 화가가 아니라, 콜렉터 베르트 베유(Berthe Weill)의 전시였다.
오디오 가이드가 이 특별전시에 대해 설명해주지 않아, 자세한 정보는 얻지 못했지만, 전시회 벽에 소개된 내용과 그림 컬렉션이 주는 정보는 그녀의 이름을 기억하고 싶다는 열망을 가득 불러 일으켰다.
그녀는 자신의 젠더를 숨기기 위해 Galerie B. Weill'이라는 이름으로 갤러리를 운영했던 그녀는 파블로 피카소의 파리 첫 개인전(1902년)을 열어주고 마티스, 모딜리아니 등 아방가르드 작가들을 초기에 지원할 만큼 시대를 앞선 안목을 가진 사람이었다. 동시에 여성 작가들을 꾸준히 후원했는데, 여성이자 독립적인 딜러로서 재정적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안목을 믿고 비주류 작가들을 지지했다.는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역사적으로 여성의 몸은 아름다움의 대상이었고, 그랬기에 화폭에 자주 등장했다. 피카소 역시, 여성의 잠든 모습과 달리는 모습을 자신의 시각으로 단단하게 그려냈다. 하지만 그녀가 고른 작품들은 달랐다. 여성들의 감정을 당시의 화풍 속에서도 여성들은 더욱 살아있고, 주도적인 모습으로 그려졌다.
그녀가 여성 작가들을 지속적으로 후원하고 지원한 것은 단지 같은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여성이 가지고 있는 감정의 고유성과 가치를 알아봤기 때문이다.
1900년대 초반, 여성의 존재감과 고유성이 인정받지 못했던 시기, 그녀의 이러한 작업이 없었다면, 여성이 동등한 존재로서 참정권을 획득하고, 사회생활을 해 나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더 지체됐을 거란 생각은 지나친 걸까.
2차 세계대전, 나치의 유대교 핍박으로 갤러리 문을 닫기 전까지, 자기 자신의 관점을 이해하고, 함께 일하는 작가들을 존중하며, 끝까지 자신의 일을 해 나간 그 그림상의 삶이 멋있었다.
오랑주리 미술관을 나와 튈리르 정원을 가로질러 오뗄 드 라 마린(Hôtel de la Marine, 해군성)에 도착했다. 이곳은 본래 18세기 루이 15세 시대의 왕실 가구 보관소였다가 프랑스 혁명 이후 220년간 해군 본부로 사용된 유서 깊은 건물이다. 내부는 당시 귀족 사회의 호화로운 생활을 재현해 놓았는데, 자동 오디오 가이드가 당시의 상황을 뮤지컬 형식으로 들려주는 방식이다.
한국어 버전이 없어 선택한 영어 가이드는 영국식 발음에 익숙치 않은 나에게 무척 어려웠지만, 프랑스 역사에서 전쟁이 얼마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했다. 그들이 화려한 인테리어와 건축물들에 집착한 이유도, 가문 간의 정략적 결혼을 사랑으로 포장한 이유도 결국, '나 이만큼 쎄다고!'를 과시하기 위한 안간힘이었겠구나!
프랑스는 시민혁명으로, 왕정을 스스로 무너뜨린 데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지만, 동시에 여전히 영국 찰스 왕자의 초청 시, 루브르 궁전을 사용하고, 뤼비똥 역시 오페라극장에서 패션쇼를 하는 등 왕정이 가졌던 힘을 과시하는 데 매우 열심이라는 것이 딜레마로 여겨진다.
마치,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했던 양반이나 친일파의 자식들이 뒤에서 자기 부모들의 재력과 힘을 과시한다고나 할까. 하지만 인간은 또 이러한 딜레마를 가진 존재가 아닐지, 자신을 과시하고 싶은 이기적 유전자의 힘이 인간의 평등을 외치는 시민의식과 교양의 힘을 어찌할 수 없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파리지앵의 높은 콧대 또한 그렇지 아니한가.
어쩌면, 에펠탑을 사랑하는 파리 시민들의 패턴에도 이러한 딜레마는 그대로 담겨 있을지도.
왕정을 무너뜨린 프랑스 혁명 100주년 기념 작품이라 하지만, 거대하고 우뚝 솟은 철골 구조는 외국인인 나의 시선에 그냥 뛰어난 왕의 위엄으로 보인다. 문화의 차이인 걸까? 경복궁의 낮은 담장과 자연과의 어울림을 고려한 우리나라의 궁궐과는 다른 느낌이라 나에게 그 그딜레마는 더 크게 느껴진다.
어제 오후는, 내 계획과 달리 콩코드 광장에서 개선문까지 쭉 뻗은 길이 매혹적이라, 길을 따라 계속 걸었다.
샹제리제 거리에서, 바차 커피 체인에서 하는 음식도 먹고, 바이브도 즐겼고, 개선문 위에 올라가 12개 길로 뻗은 계획도시 파리도 한 눈에 바라봤다.
문득, 누군가 말 걸 사람이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렬히 들었지만, 할 수 있는게 없어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메모하며 외로움을 견뎠다. 오랫만의 쓸쓸함이 나쁘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은 현대미술품을 소장한 퐁피두 센터에 들렸는데, 전날 AI가 저녁 8시까지 한다고 알려준 것과 달리 문을 굳게 걸어잠궜다.
챗 GPT를 저주하며, 동네를 돌아보니 아주 아늑하고 고지어스한 카페
들이 주변에 많았다. 숙소에 가기는 이른 시간이라, 지도를 따라 무조건 센느강까지 걸었다.
어둑해진 골목길이 가끔 두렵기도 했지만, 멈춰지진 않았다.
센느강이라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하철 3정거장 정도의 거리를 걷게 됐고 결국 노틀담 성당 건너편 즈음, 센느강에 도착했다. 누가 거기까지 가라고 한 것도 아닌데, 참 기분이 좋았다.
돌아오는 길에 발견한 지하철 역 생올역까지의 길은 참 가벼웠다.
여유로운 여행을 생각했는데, Day2에 이어, Day 3도 갤러리에서 쏟아지는 자극 탓에, 여유보다는 머리와 손이 바쁘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렇게 흘러가는 생각에 관심을 갖고, 글로 옮겨 보는 것이 여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것은 나의 삽질. 이번 여행에서 삽질이 계속 속되면 내 내패턴이 좀 더 분명해지지 않을까? 그래서 오늘은 어제 쌩폴 지역 근처서 발견한 스타벅스를 가려한다.
마레지구 근처에서 사람들 구경도 하고, 머릿 속 생각들도 더 풀어해쳐야지-
Go go Carr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