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여덟, 나 홀로 유럽
20대부터 쭉 사용하기 시작했으니, 벌써 20년 넘게 Carrie로 불렸다.
누구는 좀 올드하다고 하는데, Carrie로 불리는 게 좋았다.
20대 후반, 숨도 안 쉬고 집중해서 봤던 미드 'Sex and the City'의 주인공 중 한명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기 때문이다.
20대 후반은, 가장 고민이 많았던 시기 중 하나다.
결혼을 해야 할까? 한다면 누구랑? 나는 언제쯤 쯤 그럴듯한 직업을 갖게 될까? 40대, 아니 30대에도 나는 일을 가지고 있을까?
사랑과 결혼, 직업으로 늘 불안했던 시기, 컬럼리스트였던 주인공 Carrie 역시 상황이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칼럼리스트라는 쿨한 직업이 있었지만, 그건 직업이라기 보다 도시의 삶에서 자신의 답을 찾아가기 위해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답을 찾는 매개 같았다.
남자 친구 Big은 종종 바람을 피웠고, 사고 싶은 구두는 너무 비쌌다. 무조건 자신의 편이라 생각했던 친구들 사이에도 종종 오해가 생겼고, 화려한 싱글 이라는 포장지 뒤의 삶은 허전했다.
그치만 일을 마치고, 친구들과 헤어지고 집에 돌아와 노트북을 펴고 수 많은 질문을 던지면서 그녀는 조금씩 마음을 진정 시켜 갔다. 대도시의 복잡한 관계 공식 속에서 자기만의 공식을 찾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나의 2-30대 직업은 칼럼리스트와 한참 거리가 멀었지만, 그녀의 삶에 대한 로망으로 쭉 그렇게 써 왔나 보다.
그리고 그 이름을 쓴 지 2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헤밍웨이가 자주 찾았다는 꽁뜨흐스까흑쁘광장(Place de la Contrescarpe)에서
나도 캐리 처럼 글로 내 궁금증에 답하는 삶을 살아가자고 다짐한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 맞춰,
먹는 것도, 입는 것도, 말하는 것도 우선순위를 조정해 버리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 필요한 것, 하고 싶은 것에 먼저 공감하고,
타인의 바람도 존중하며 각자도생이 시대정신이 된 이 도시에서
서로의 접점을 찾아가는 관계를 만들어 가자고.
설사, 타인이 내가 찾은 답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서둘러 내 마음을 포기하지 말고,
내 마음을 잘 표현해 답을 찾아가자고.
유치하고, 부족해도, 내가 내린 답이 나한테 가장 좋은 답이고, 그런 답이 상대에게도 좋은 거니까.
그리고 이제는 인터넷 덕분에,
매체의 청탁을 기다리지 않아도 누구나 칼럼리스트가 될 수 있지 않은가.
이 광장의 왼쪽 모퉁이 돌면, 헤밍웨이가 살던 집이 나온다고 한다. 찢어지게 가난해서 화장실도 없는 집이었다고 하던데- 그는 자신의 집을 이렇게 많은 관광객이 찾게 될 줄 알았을까?
삶은 그렇게 알 수 없다. 호랑이가 아닌 이상, 자기 이름 값 하면서 살아갈 수 밖에...
아, 이제 햇볕이 난다. 또 다시 나가봐야겠다!
Go go Carr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