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이 마약과 매춘을 허용하는 진짜 이유

'포용'은 도덕이 아니라 '생존'이었다. - 암스테르담 in Day 3

1. 작은 거인, 네덜란드


나에게 네덜란드 하면 떠오르는 것.

홍등가. 대마초와 헤로인이 합법인 나라,

도시 전역에 운하가 있는 예쁜 나라,

그리고 히딩크의 나라...


이 정도가 내가 가진 정보의 전부. 유럽 여행을 계획하는 나에게 사람들은 암스테르담은 하루 이틀이면 충분하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직접 눈과 발로 경험해본 네덜란드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매력을 가진 곳이었다.


일단 실력이 좋다.

인구 1700만(우리나라 1/3)으로, 1인당 GDP 6-7만(우리나라 3만 4천으로 우리보다 2배 잘 삼. 독일, 영국, 프랑스보다 잘 삼) 수준이며, 좁은 땅에서 스마트 팜으로 세계 2위의 농산물 수출 국가다. 금융, 무역, 반도체, 농업 기술 등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적게 일하고(근무시간 전세계에서 가장 짧음) 많이 버는 구조를 만들었다. 또한 의료, 교육, 연금 등의 사회 안전망이 튼튼하다.


다양하지만 어우러져있다.

암스테르담 중앙역(Central Station) 뒤편의 IJ(아이) 강을 경계로 남쪽은 네덜란드의 전통 도시가, 북쪽은 새로운 건축물과 컨템포러리 예술이 결합된 힙한 감성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건축물 뿐 아니라 도시의 분위기도 남쪽으로 가면 보존과 전통 등이 느껴지지만, 북쪽(내 숙소는 북쪽 Noord 지역)은 실험과 힙함이 넘쳐난다. 음지에나 있을 법한 홍등가나 대마초를 파는 커피숍(Coffee Shop은 대마초 카페고, Cafe가 진짜 카페다)도, 천 년이 지난 유서 깊은 건물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자리를 뽑낸다.

왼쪽 건물 1층의 커피숍이 바로 대마초를 합법적으로 판매하는 Coffee Shop. 그 옆 골목에는 유사한 Coffee shop 들과 섹스 토이들을 판매하는 상점이 즐비하다.
모던한 북부에 위치한 Eye Museum. 이다강 건너편의 전통을 간직한 남부 지역을 한편의 영화처럼 바라보며 커피와 와인을 즐길 수 있다.

투명하고 개방적이다.

파리와 비교하지 않을 수 없는 거리의 청결함. 1층 뿐 아니라 2층까지 훤히 들여다 보이는 건물의 널찍한 창문. 거리를 배회할 때 느껴지는 사람들의 친절함과 심리적 안전감. 더치 디자인으로 알려진 창의성과 실용성, 그리고 비영어권 국가 중 영어 사용률 1위 다운 언어의 개방성은 왜 많은 인재들이 네덜란드로 향하고 있는지를 이해하게 해줬다.


집의 1층이 지면보다 낮다.. 신기하다
빨래방을 찾아 주택가로 접어들었다. 2층이 낮고 창문이 커서 1층과 2층까지 집 안이 훤히 보이는 경우가 많다.


Gemini로 암스테르담에 대한 호감이 높아진 나는 Day3를 암스테르담 도시 투어로 시작했다.

도시 무료 투어를 검색하고, 1유로를 결제하니 바로 예약 완료.


최초의 증권거래소 건물(Stock Exchange Square)에서 만나, 2시간 반동안 가이드의 설명과 함께 도시를 돌았다. 아쉽게도 알아듣지 못하는 단어와 문장들이 속속 출몰해, 이해도는 80% 정도... (그래도 만족, 돌아가면 영어공부 계속 해야지~). 조상들의 역사는 현재 국민의 DNA에 깊이 각인된다는 사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최초의 주식 거래소Stock Exchange Square. 주식 상황을 알리는 전광판이 아직도 그곳이 주식거래소로 사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2. 체면보다 실리와 신용, 합의를 중시한 역사


모든 이야기는 시작이 중요하다. 왜 이 이야기가 시작됐을까가 과정과 엔딩을 결정한다.


1581년, 부패한 카톨릭으로 사람들을 지배하고 세금을 걷던 스페인 왕에게 "더이상 당신을 왕으로 섬기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 네덜란드 역사의 시작이다. 그 전쟁을 이끈 이름은 장관 윌리엄 오렌지William Orange (가이드가 엄청 강조함, 네덜란드 사람들이 오렌지 색을 좋아하는 이유). 왕을 쫒아내고 시작한 나라였기에, 각 지역 대표들(자신의 도시와 재산을 지키기 위해 상인들이 직접 무기를 들고 시민자경단을 조직함)이 모여 회의를 통해 나라를 운영했고, 그 당시 동인도, 서인도 회사를 설립해 해상무역을 장악했을 뿐 아니라(미국 뉴욕에 정착해 자본주의를 꽃피움), 예술과 자치까지 모든 면에서 찬란했던 황금기를 꽃피웠다. 이후 19세기, 프랑스가 네덜란드를 점령한 이후 왕이 생겨났지만(윌리엄 오렌지의 후손), 여전히 오렌지 색을 좋아하는 네덜란드 인들의 민족 정신은 공화정의 운영 체계인 다름의 존중과 신뢰, 합의에 있다.

가이드 David의 뒷편으로 보이는 전형적인 네덜란드 건물들. 건물 앞면의 폭을 기준으로 세금을 내야 하기에, 좁게 올리고, 건물지붕으로 개성을 표현했다.
암스테르담의 중서부, 요르단 지구. 이런 풍경의 운하들이 계속 이어진다. 건물을 세울 때 지하 물을 퍼내는 작업은 하인을 쓰지 않고, 이웃과 친구가 함께 작업했다 한다.


자본주의의 시초를 만들어냈다는 자부심을 기반으로 명분이 아닌 실리가 중요하며, 각각의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국가 경제와 상업을 위해서는 합의를 통해 공존을 모색한다는 정신 말이다.


그러한 더치 정신은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늪을 함께 메워 땅을 만드는 협력을 낳았다. 그들은 다른 나라가 종교적 도덕성을 내세워 금기시하던 금융업(대부업)과 금서 출판업까지도 "돈이 되고 실익이 있다면" 과감히 받아들였다. "신은 세상을 창조했지만, 네덜란드는 네덜란드인이 만들었다"는 말이 왜 나왔는지 이해가 된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 홍등가와 마약을 관리하는 방식 또한 이러한 역사적 맥락과 닿아있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그것이 도덕적으로 옳은가?'가 아니라 '그것이 현실적으로 관리 가능한가, 그리고 돈이 되는가?'이다. 무조건적인 금지는 음성적인 범죄를 키울 뿐이기에, 그들은 차라리 양지로 끌어내어 엄격한 기준을 세우고 관리하는 쪽을 택했다. 과거 카톨릭 탄압 시절, 성당을 짓지 못하게 하면서도 겉보기에 일반 집 같은 '비밀 교회'를 짓고 세금을 내면 눈감아주었던 그 방식 그대로 말이다. 기준을 어기면 가혹한 세금을 물리고, 지키면 공존을 허용하는 것. 이것이 네덜란드가 다양성을 동력으로 삼는 비결이다.


3.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차이를 다루는 방식: 거리 vs 회의실


두 나라 모두 다양성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하지만, 암스테르담에서는 파리에서 느꼈던 딜레마가 느껴지지 않는다.


파리는 프랑스 혁명 정신에 따라, 누구나의 평등을 강조하지만, 실제 그들의 문화와 삶에서는 강한 권력을 지닌 왕궁에 대한 향수와 우월감이 도시 곳곳에서 느껴졌다. 거리의 부랑자 중 다수가 흑인이었고, 관리되지 않는 체 방치된 도시의 청결과 새로운 기술의 도입과 통합에 대한 느린 속도는 파리는 아직도 강대국이자 선진국일까? 라는 의문을 품게 했다.


과도한 사회보장 비용으로 인해 연일 계속된다는 청년들의 시위를 떠올릴 때, 우월감과 만인의 평등의 딜레마 속에서 파리지앵들은 저항의 민족 답게 끊임없이 논쟁하고 갈등하고 그 과정에서 나아가겠지만, 그 사회적 비용이 정말 그 만큼의 대가를 가져다 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반면, 각 지역 대표들의 합의로 나라가 운영된 네덜란드의 운영 방침은 '기둥사회(Verzuiling)'로 대변된다. 카톨릭, 개신교, 사회주의 등 각자의 기둥에 대해 '서로 간섭하지 말고 살자', 대신, 협력해야 하는 것, 물을 막는 운하 시스템이나 국가 경제, 상업에 대해서는 서로 싫어해도 웃으며 악수하자, 라는 쿨한 실용적 공존의 정신이 그들의 다양성을 관리 가능하게, 그리고 실력으로 이어지도록(실력 없으면 세금을 못낸다) 만들었다. 우리는 누구나 다르고, 그 다름을 인정받고 존중받을 때 가장 자신의 실력을 꽂피울 수 있지 않는가.


왕정의 역사와 공화정의 역사,

명분의 역사와 실용의 역사,

저항의 역사와 합의의 역사,


이러한 두 나라의 차이가 오늘날 두 나라가 차이를 다루는 방식을 한 쪽은 거리에서, 또 한쪽은 회의실에서 이뤄지도록 만들었다.


4. 단일민족 신화를 넘어, 우리만의 차이를 다루는 이야기를 찾아서


한편으로는 궁금해진다.

한국은 공화정의, 실용의, 합의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가?


우리는 근면과 성실로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낸 뛰어난 민족이지만,

창의성과 개방성이 중요한 앞으로의 시대,

우리에게 드러나지 않은 실용과 합의, 협력의 역사적 이야기를 우리는 가지고 있나.


어쩌면 우리는 그동안 '빠른 성장'을 위해 모두가 같은 곳을 보고, 같은 속도로 달리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었던 시대를 살았는지 모른다. 그래서 단일민족의 신화와 튀지 않는 순응이 미덕이었고, '다름'은 성장을 방해하는 '틀림'으로 간주되곤 했다.


하지만 암스테르담이 던지는 질문은 무겁지만 동시에 가능성을 보게 한다.


사실 우리에게도 네덜란드의 '물과의 전쟁' 못지않게, 수 천번의 침입과 가난을 함께 극복한 '품앗이', '두레' 등의 공동체 DNA가 있다. 위기 때마다 광장에 모여 촛불을 들고 서로의 온기를 확인하던 그 역동성은, 전 세계인들에게 한국인들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거대한 합의와 공감을 만들어낼 수 있는 민족이라는 사실을 보여줬다.


하지만, 우리의 역사 이야기에는 '다름의 연결'에 대한 소스가 부족하다.

단일민족의 신화와 유교의 가부장적 가치만 지나치게 표현돼 있다.


역사가 뭐가 중요해?라 생각할 수 있지만,

호모 나랜스인 인간은 '호랑이가 담배피던 시절~'을 궁금해 하고

거기서 우리의 정체성을 만들어 간다.


네덜란드인들이, '우리는 좁은 땅과 물의 위협을 '다름의 포용‘이라는 둑으로 막아내고 번영을 이룬 오렌지 민족'이야라고 말하듯이, 한국인의 운영 체계에도 21세기 다양성의 시대에 걸맞는 한국 특유의 정과 흥이 넘치는 합의의 스토리가 더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스토리의 리스토리텔링Re-storytelling은 불가능하지 않다. 스토리텔링에 강한 민족이 아닌가.

경쾌하고 역동적인 한국인을 연상시키는 암스테르담 사람들을 보며, 그런 생각들이 이어진다.


암스테르담 Day 3의 투어기는

암스테르담과 프랑스의 다양성에 대한 생각이 너무 길었다.


사실, 늦은 오후 방문한 북부의 NDSM의 스트릿 컬처와

EYE Museum에서 만난 틸다 스윗튼의 특별전이 정말 좋았는데, 여기에 대한 기록은 사진으로 대신해야겠다.




페리를 타고 북부의 힙한 도시 NDSM도착. 과거 버려진 공장을 스트릿 아트와 그래피티 등 젊은 예술가들의 도시로 탈바꿈 시켰다. 실용과 재생산, 파괴, 혁신의 도시
Stree Art & Graffiti Museum에서 만난 작품들. 삭막한 도시에 여성의 재해석된 여성의 거대한 작품들이 가득하다.
아이뮤지엄에서 우연히 만난 Tilda Swinton 특별전. 2시간 넘게 이 곳에 머물며, 한국에서 개봉된 적 없는 그녀의 다큐멘터리와 단편 영화를 봤다.




오늘도 긴 글이 이되 버렸다. 어느 날은 짧고, 또 어느날은 길다.

하지만, 지구가 하루에 한번 태양 주위를 돌듯,

지구력의 힘을 빌려 그날 그날의 생각을 거르지 않고 기록해 두려 한다.


오늘은 암스텔담 Day4, 기차를 1시간 정도 타고 외곽인 델프트와 헤이그로 가봐야지.


Go go Car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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