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고흐의 노란색에는 슬픔과 희망이 함께 있다.
1. 돋보기 안경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여행오기 직전 맞추고 말았다.
이른 아침이면 카카오톡 글씨도 잘 안보이고, 노트북을 볼 때도 자꾸 눈을 깜빡이게 되면서 이제 더이상 못 버티겠다 싶었다. 이십 대 후반, 라섹 수슬하고 한 동안 눈 걱정 없이 살았는데, 이제 백내장 수술하기 전까지는 안경 신세를 져야 하는 처지가 됐다.
갑자기 떠나는 여행이라, 준비할 것이 많았지만, 가장 걱정됐던 것은 '추위'였다.
11월의 야외 날씨도 그렇지만, 올해 들어서부터 감기도 아닌데 밤 중에 오한이 찾아오는 증상이 생겼다.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줄어들면서 체온 유지 기능이 약해졌기 때문이라 한다. 찜질 팩과 수면 양말 등으로 몸을 따뜻하게 하지 않으면, 밤에 잠에 잘 들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여러 사람과 함께 묶는 도미토리 호스텔에서 어떻게 대처할 지 걱정이 됐다. 술이라도 한잔 하면 증상이 더 심해지기 때문에 언젠가부터 그 좋아하던 '맥주 한잔 하자'는 말도 내 단골 레파토리에서 사라졌다.
그렇다, 갱년기가 나에게도 찾아온 것이다.
어느새부턴가 친구의 결혼 소식보다 부모님의 부고 소식을 더 많이 듣게 되고,
암 진단을 받는 지인들이 하나 둘씩 생겨났다.
동년배 친구들을 만나면, "몸이 예전같지 않다"는 푸념이 이어지고,
그러다 보면,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거나 도전하기 보다는
안주하거나 버틸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가능성은 줄어들고, 실패의 확률은 올라가는,
바야흐로 중년,
상실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2. 우울과 희망을 함께 그린 반고흐처럼
암스테르담 Day2의 첫번째는 일정은 반고흐 뮤지엄.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서 이미 대표작들을 봤지만, 반고흐의 초기 작품부터 가장 유명한 작품까지 무려 70점을 소장하고 있으며, 그와 이름이 같은 조카 빈센트 빌럼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에 의해 지어진 갤러리라 하니 안 가볼 수 없었다.
놀랍게도 그 70장 중 상당수는 그의 자화상이다.
그가 자화상을 그렇게 많이 그린 실질적 이유는 당시 상당히 비용이 높았던 모델비를 아끼려 했다는데, 오브제를 보이는 대로가 아니라 느끼는 대로 그렸던 그 답게, 자화상을 통해 자신의 상태를 표현하며 당시 앓고 있던 우울증을 개선해보려는 그의 의지가 그가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에 드러나 있다.
어느날은 이렇게 우울하고, 어느날은 이렇게 어둠 속에 콕 숨어 버리고 싶다. 하지만 어느날은 이렇게 내가 화사하고 충만하다고. 그래서 어느날은 눈이 짙은 갈색이고, 또 어느날은 환한 초록색이다. 그는 우울했지만, 우을을 부정하고 기피하기 보다 그 안에서의 빛남을 보고 변화를 모색했다.
반고흐는 처음부터 화가를 꿈꾸지 않았다.
22살에 미술상으로 일하다 짤리고, 27살에 성직자로 일하다 짤리면서, 그가 아름답다고 느꼈던 농촌에서의 삶, 자연의 풍경을 그리는 화가의 삶을 결심했다. 그의 굳은 결심과 달리, 농촌의 소박함과 정직함, 자연의 풍요로움을 그리고자 했던 그의 작품은 그 당시 사람들 뿐 아니라, 이후에도 크게 기억되지 않는다. 2층에 걸린 대부분의 그림들이 그의 삽질의 흔적들이다.
그가 그의 화풍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이후 그림상으로 일했던 동생 테오가 파리에 머물 수 있도록 도와주면서부터다. 거친 붓터치를 그대로 드러내며 쌓고, 강렬한 색상을 사용하는 인상주의의 영향, 그리고 명확한 윤곽선으로 단순함을 감각적으로 표현한 일본 판화의 영향을 받으며 지금 우리가 기억하는 반 고흐의 화풍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평범한 붖꽃과 해바라기, 자신의 방 등 일상적인 소재를 캔바스에 배치하고, 대비되는 보색과 두꺼운 붓칠로 생동감을 더한 그만의 작품 세계.가 말이다.
반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해바라기 그리는 화가'로 자신이 남겨졌으면 좋겠다고 한다. 길에 널려있는 는평범한 해바라기에서 자연의 생동감과 아름다움을 발견한 화가로.
그래서 그가 자주 사용하는 노란색에는 슬픔과 외로움, 그러면서도 생동감과 충만함이 함께 담겨 있는가 보다.
반고흐의 희망을 드러낸 또 하나의 유명한 작품, 아몬드 나무. 동생 테오의 아들인 조카의 출생 소식을 듣고, 정신병원에 있던 그는 몇 일동안 쉬지 않고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현재 자신의 좋지 않은 상황에도 그는 화사한 하늘색을 배경으로 밑에서 힘차게 뻗어나와 하늘을 향한 가지를 통해 조카에 대한 환희를 드러냈다.
3. 상실과 함께 지내는 법
반고흐 뮤지엄에서 가장 위층에 있는 테오와 그의 아내의 사진, 서신 등을 둘러볼 때 쯤, 허리 통증이 시작됐다.
아침에 내 몸에 귀 기울이자 다짐했는데, 귀 기울일 필요 없이 아주 명확한 신호였다. 예전에 좌골신경통으로 고생했을 때의 바로 그 느낌! 파리에서 내 서피스 노트북을 가방에 메고 이틀 정도 돌아다녔는데,, 그 때부터 슬슬 허리 디스크 신경이 눌리기 시작했다가, 암스테르담으로 넘어올 때 무거운 짐을 들었더니 염증이 더 심해진 것 같았다.
겁이 좀 났지만, 크게 당황하지는 않았다.
이럴 때 뭘 먹고 어떻게 쉬어야 하는지 대략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제미나이에게 염증을 완화해줄 수 있는 약의 이름과 구입처를 확인해 구입했고,
센트럴 지구에서 따뜻한 스프와 햄버거를 먹고 숙소에 와서 일단 누웠다. 네덜란드나 프랑스 영국의 역사와 관련된 영화를 AI에게 추천받아 넷플릭스도 보면서.
저녁 7시쯤 일어나니 통증이 확연히 줄었다.
다시 숙소 앞에서 페리를 타고나가 스트룹 와플도 먹고, 저녁 카날 투어도 참석했다. (저녁 야경을 혼자 보는 투어같은건 정말 다시 하지 말아야겠다)
한번 안 좋아진 염증은 금새 재발할 수 있기에 조심해야겠지만,
내 패턴을 알고 있기에 크게 걱정되지는 않는다.
나이듬이 주는 지혜다.
돌아보면, 40대 중반이 넘어가면서 내 성격과 일하는 스타일에도 변화가 많다.
전보다 다른 사람에게 공감을 잘 한다.
이번에 안되도 다음번에 또 기회가 올 거란 생각을 한다.
내가 하는 일의 장기적인 의미와 기여가 점점 중요해진다.
모든 걸 잘하려 하지 않고, 내가 중요한 것에만 에너지를 집중하려 한다.
2-30대 나의 에고에 과몰입했던 때에는 들지 않았던 이 생각의 변화는
어쩌면 나의 지적, 신체 능력의 저하와 관련이 있을 지 모른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리는 것처럼,
에너지가 제한되다 보니, 진짜 잘하고 싶은 게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더 의미있게 할 지를 찾게 된다. 나의 결핍과 실수, 부족함을 알게 되면서, 다른 사람의 부족함에 대해서도 관대해진다.
나이듬이 주는 지혜다.
신체능력의 저하는 물론 슬픈일이다. 하지만 이 슬픔을 인정하고 수용하면, 이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동시에 보인다.
나도 상실의 시대에 점차 익숙해지면서, 앞으로 50대에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도전하고, 실패해도 될 무언가가 더 명확해지지 않을까. 더이상 예전의 '빠릿빠릿함'을 기준으로 나를 바라보며, 자책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과거의 기준은 과거에게 줘버려야 한다.
반고흐가 실패 때문에 자신이 집중할 것을 발견하고, 숱한 삽질 끝에 '해바라기의 작가'라는 자신의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했던 것처럼, 나도 '나로 기억되고 싶은 무언가'가 명확해지고, 이를 위해 삽질을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래 본다.
오늘 오후, 시간이 나면 반고흐의 슬픔과 희망을 모두 품은 노란색을 한 번 더 보러가야겠다. 가능하려나? 체력이 안되면 말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