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저항을 낮추는 기술

런던에서 배운 '오픈 시그널'

"What's your job?"

"Prove yourself with other identification!"


암스테르담에서 영국으로 넘어오는 방법으로 나는 시간과 이동 거리를 줄이기 위해 유로스타 기차를 선택했다. 하지만, 역시 영국이라는 나라는 그렇게 만만치 않았다. 세관에서 약 1 시간을 허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거주 예정 일정 등 일반적인 질문으로 시작했는데, 질문이 점점 날카롭게 바뀌었다. 여권 외의 다른 한국 신분증을 제시하라는 데, 그런 것이 있을리 없기에 당황스러웠다.


내 여권을 계속 만지작거리던 머리가 희끗한 중년의 아저씨가 현미경을 꺼내들더니, 내 여권을 범죄 현장을 수색하듯 샅샅이 조사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나는 인터뷰 룸으로 불려 갔고, 위조 여권을 전문적으로 감식하는 전문가가 와서 판별해 준 이후에야 나올 수 있었다.


KakaoTalk_20251117_062045169_02.jpg 파리에서 암스테르담 넘어올 때와 달리, 런던으로 넘어갈 때는 공항과 비슷한 절차를 거친다. 인터뷰 방 앞에서 대기중인 나와 내 가방 ㅠ


세관원은 나에게 '내 전자 여권에 스크래치가 있다', 등의 말을 했는데, '인종 차별'이 이런 것인가란 부정적인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짜증을 표현하는 대신 'Thank you"라고 말하며 여유있게 웃었다.


화내봤자 나에게 득될 게 없을 뿐 아니라,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는 자연스러운 부정적 반응이니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낯선 이의 경계'를 마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새로운 직장에 발을 디딜 때마다 나는 비슷한 종류의 압박감, 즉 '나를 증명해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있었다.


지금까지 비공식적으로 인턴으로 일한 것것까지 합하면, 6-7개의 회사에서 일해보았다.

중학교 선생님에서 홍보담당자로, 마케터에서 상품기획자로, 또 강사와 코치로.

매 번 새로운 영역에 발을 디딜 때 마다 나는 나의 실력을 증명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컸다.

사람들의 텃새를 온 몸으로 맞으며, 점심은 누구랑 먹나를 고민하지 않아도 될 만큼 적응하기까지 1년 이상이 걸린적도 있다.

'내가 너보다 나을 걸'이라는 마음을 증명하려고, 안간힘을 다해 내 실력을 뽐내려다 보니, 관계를 놓칠 때가 많았다.


그런데 이제는 '증명' 보다 '연결'의 시그널로 저항을 낮추는 전략을 쓸 줄 알게 됏다.

먼저 인사하고, 먼저 웃으면서 대화할 준비가 돼 있으니 언제든지 하세요!라고 오픈 시그널을 보내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과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거절받을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는 것.


KakaoTalk_20251117_062045169_03.jpg 런던의 지하철, 복잡하다. 기차가 도착한 London St Pacras 역이 해리포터가 나오는 역사처럼 멋졌는데, 혼이 쏙 뺘져서 사진은 못 찍었다.
KakaoTalk_20251117_062045169_04.jpg 숙소가 있는 런던 타워 근처에 내렸다. 숙소가는 길이 어둑어둑하지만, 확 트인


다행히 London St Pancras 역에 무사히 도착했다


같은 유럽이라도 파리와 암스테르담, 런던의 지하철 표기 방식, 운영 방식은 완전히 달랐다.

또 다빈치 코드를 풀듯이, 구글맵을 동원해 지하철을 타고 호스텔에 도착. 짐을 풀었다.


다행히 화장실이 안에 있다! 야호!


6인실인 도미토리에는 나 보다 먼저 도착한 코스타리카 출신의 히스패닉계 미국인이 잠을 자다 부스스 일어났다.


"안녕, 난 Carrie이고, 한국에서 왔어!"라고 먼저 나를 소개했다.


다행히 그녀는 나의 인사에 호응해줬고, 우리는 호스텔 키친에서 내가 한국에서 가져간 도시락 컵라면을 나눠먹었다. 호스텔 바에서 화이트 와인도 한잔 했다. 내일 아침 9시는, 그녀와 함께 런던 도시 투어를 시작한다. 낯선 친구와 따로 또 같이를 시작해 볼 하루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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