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또 같이'의 대화법
첫날 호스텔에서 만난 Amaly와 가벼운 인사를 나누다 알게 된 사실. 그녀 역시 혼자 여러 나라를 여행 중이고, 일요일에 도착해 금요일에 떠나며, 여행 첫 날인 월요일은 도시 전체를 둘러볼 계획이라는 것.
먼저 컵라면 먹겠냐고 제안한 나에게 그녀는 자신이 예약한 '24시간 시티 투어 버스(Hop-on Hop-off)'에 대한 할인 정보를 제공해 줬다. 그렇게 우리는 영상 5도에 찬 바람이 쌩쌩 부는 낯선 런던 거리의 여행 메이트가 됐다.
규칙은 심플했다. 버스 투어의 여정과 휴식, 식사는 함께 하지만, 무언가를 관람할 때는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따로 또 같이'의 방식.
런던은 서울보다 2.6배나 넓은 데다 역사적이고 '세계 최초'의 이름표를 단 공간들이 많다. 그녀도 나도 처음인 런던. 아무리 버스 루트가 지도에 설명돼 있어도, 우리는 버스를 내려 짤막한 투어를 하고 새로운 정류장을 찾을 때마다 길을 잃었다.
하지만 둘이 같이 위치를 파악하고 사람들에게 물어가며, 효율적으로 24시간 투어 티켓을 사용했다. 혼자였다면, 5-6도의 쌀쌀한 날씨에 런던의 바람을 맞으며 그 많은 곳들을 다닐 수 있었을까? 아마 일찍이 숙소에 돌아와 이불 속에 있었을 거다.
그녀는 좋은 대화를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결정해야 하는 순간에 자기가 생각한 것, 알고 있는 정보들을 먼저 오픈해 맥락을 공유하고 질문으로 나의 생각을 파악하고, '함께' 결정하는 것이 몸에 밴 사람.
그리고 쉽게 당황하는 나와 달리, 항상 Calm한 매너를 유지했다. 버스 정류장 표기가 애매해 길거리에서 15분 이상 기다리며, 쓸데없이 핸드폰을 이리저리 서칭하는 나에게 생각할 단서를 던져주었다. 덕분에 날뛰는 내 편도체를 진정시키고, 내 전전두엽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도와줬다.
좋은 친구가 옆에 있으면, 감정이 회오리쳐서 만들어지는 실수를 줄여 후회할 일도 줄어든다.
여행에서 줄곧 느꼈던 외로움이 어제는 없었다. 낯선 이와 공통점을 찾아가는 대화는 결국 나의 생각과 경험, 즉 내 정체성을 드러내는 과정이다.
히스패닉계 미국인인 그녀는 일본계 타이어 회사에서 Sourcing Manager 경험을 포함해 15년간 일했고, 줄곧 인종과 여성이라는 Minority 정체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우리는 회사의 DEIB(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정책의 필요성과 한계, 최근의 변화에 대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 나눌 수 있었다. 런던 버스 위에서 내 관심 분야에 대해 이렇게 깊은 대화를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예상 못 했다. 상대와의 공통점 혹은 차이점을 찾아갈 때 결국 상대는 나의 거울이 되어준다.
'아! 역시 난 이런 주제에 관심이 많구나! 그냥 돈 벌려고만 하는 일은 아니구나!' 라는 소중한 발견.
어제의 투어가 그토록 만족스러웠던 건, 유연하게 거리를 조절할 줄 아는 그녀의 세련된 대화 기술 덕분이었다.
솔직한 제안: 혼자 하고 싶은지, 같이 하고 싶은지를 명확히 묻는다.
의견의 교환: "내 생각은 이런데, 너의 생각은 어때?"라고 묻는다.
맥락의 공유: 결정의 순간, 그냥 주장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가진 정보와 배경을 먼저 설명한다.
담백한 리액션: 부사를 남발하며 오버해서 공감하지 않는다. 담백하지만 진심이 담겨 있다.
확인과 존중: 눈을 잘 마주치고, "내가 느낀 게 이건데 맞니?"라며 상대를 확인한다.
연결: 끊임없이 공통점을 찾아가려 노력한다.
거리를 좁히는 게 아니라, 피사체를 보고 초점을 조절하듯이 늘렸다 줄였다가 가능한 조절력이 중욯다는 걸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나의 대화 조절력에 대해서도 말이다.
오늘은 어제 시티 투어를 하며, 각자가 발견한 매력이 있는 곳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목요일은 런던에서 1시간 기차를 타고 나가야 하는 옥스포드에 '함께' 가기로 했다.
오늘은 다시 Me-Time. 런던에서 가장 붐비는 곳이기도 한 피카딜리 서커스 지역에서 전통 있는 서점 두 곳을 방문해볼 계획이다.
나가보자, Carrie! Go 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