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를 연결하는 경청의 힘
"본부장님이 내 말을 끊을 때마다,
투명인간이 되는 느낌인데,
저도 팀원들 말을 계속 끊는다고 하더라고요"
코칭에서 만난 A팀장님의 고백입니다. 본인의 의견을 채 전달하기도 전에 "그래서 결론이 뭐야?"라는 상사의 말에 생각이 멈춰버린다고 말하면서, 본인도 정작 '말 끊는 상사'가 되어 버렸다는 이야기. 혹시 여러분의 이야기는 아니신가요?
A 팀장님의 이야기는 전혀 낯설지 않지요. 저 역시 그랬거든요. 팀장으로 일할 때, 팀원들의 결론을 미리 짐작하고 말을 중간에 끊거나, 핸드폰을 보면서 딴짓을 하면서 다 들었다고 여기기 일쑤였죠. "아, 그 문제구나" 하며 머릿속으로 이미 해결책을 준비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팀원이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따로 있었다는 것을요.
현재 팀장급에 계신 30-40대 리더분들, 이른바 '끼인 세대'의 공통된 고민이기도 합니다. 위로는 성과를 요구하는 상급자가 있고, 아래로는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고 싶어 하는 밀레니얼-Z세대 직원들이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듣고 싶어도 시간이 없어요. 팀원이 10분 동안 이야기하는 걸 들으면, 그 시간에 메일 10개는 처리할 수 있거든요."
"경청이 중요한 건 알겠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워요. 직원들이 항상 자기 생각을 정리하고 말하는 건 아니거든요"
팀장님들이 가진 찐 고민에 십분 공감이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진정한 경청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질의 문제라는 점이에요.
팀원이 이야기하는 동안 머릿속으로는 이미 답변을 준비하고, 조언을 구상하고, 때로는 다음 회의 준비를 하고 있지 않으신가요? 듣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듣지 않고 있는 건 아닐까요? 어쩌면 내 얘기를 건성으로 듣는 팀장 때문에 팀원이 입을 닫거나,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경청에 대한 연구들을 살펴보면, 효과적인 듣기에는 세 가지 핵심이 있습니다.
1) 첫 번째는 반복입니다.
상대방의 말을 그대로 반복해 주는 거예요. "지금 김대리님이 말씀하신 건, 프로젝트 일정이 너무 촉박해서 품질 관리가 어렵다는 거네요." 단순해 보이지만, 이것만으로도 상대방은 '내 말이 정확히 전달되었구나'라는 안정감을 느낍니다.
2) 두 번째는 요약
여러 이야기를 키워드로 정리해 주는 거예요. "정리하면, 현재 가장 우선순위는 클라이언트 대응, 긜고 팀 내 업무 분담 조정인 것 같네요." 이때 상대방은 자신의 생각이 명확해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음 어젠다로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죠.
3) 세 번째는 공감.
상대방의 감정을 인정하고 공감해 주는 거예요. "정말 답답하셨겠어요" 또는 "그럴 때 정말 힘드셨을 것 같아요." 감정이 인정받는 순간, 사람은 마음의 문을 엽니다. 부정적인 감정뿐 아니라 프로젝트 성공에 기뻐하는 팀원의 긍정적 감정에 대해서도 공감하는 것, 잊지 말아 주세요.
우리는 공감을 하기보다는 충고하거나 안심시키려 하고 자기 자신의 입장이나 느낌을 설명하려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공감은 자신의 마음을 비우고 존재로 다른 사람에게 귀 기울이는 것이다.
- 마셜 로젠버그 Marshall B. Rosenberg
1984년 '비폭력대화'를 만든 마셜 로젠버그 박사가 말한 공감의 정의는 '존재에 대한 귀 기울임'입니다.
비폭력 대화는 세계적으로 치유와 회복, 연결을 돕는 대화모델로 잘 알려져 있죠.
존재에 대한 경청은 스킬만으로는 어렵습니다. 인간의 가장 큰 본능인 '자기 중심성'을 내려놓고, 상대를 존중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욕구와 평소 대화 패턴에 대한 인지가 선행돼야 하지요. 이러한 자기 성찰이 없다면, '경청' 교육을 받는다고 '경청'이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값진 것이 경청이지요. 상대가 존중받는다는 걸 느끼기 때문입니다.
MIT의 오토 샤머(Otto Scharmer) 교수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더 깊은 차원의 듣기를 제시합니다. 단순히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것을 넘어서,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느끼고 인정하는 거예요.
이는 말 너머의 신호들을 감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상대방의 목소리 톤, 표정 변화, 몸짓, 심지어 침묵까지도 중요한 메시지거든요.
한 팀원이 "괜찮습니다"라고 말하면서도 어깨가 축 처져 있다면, 리더는 그 불일치를 감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혹시 아직 확실하지 않은 부분이 있나요?"라고 다시 되물었을 때, 팀원은 "사실은..." 하며 진짜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할 거예요.
경청의 깊이가 연결의 깊이를 만듭니다.
5분 침묵 연습
매일 아침 또는 저녁, 팀원 한 분과 5분간 대화 시간을 가져보세요. 단, 절대 먼저 말하지 마시고요. 팀원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유롭게 하도록 두고, 오직 듣기만 하는 겁니다. 그리고 경청 스킬에서 소개한 핵심 키워드의 반복, 요약, 공감만 활용하세요.
처음에는 어색하고 답답할 수 있어요. 하지만 며칠 지나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평소에 과묵했던 팀원이 갑자기 많은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고, 팀 내 숨겨진 이슈들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기 시작해요.
조언 없이 듣기 실습
상대방이 이야기를 끝낸 후, 즉시 조언이나 해결책을 제시하지 마세요. 대신 "지금 말씀해 주신 내용을 정리해 보면..." 하며 요약만 해주시고요. 그리고 "더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나요?" 또는 "다른 관점에서 보면 어떨까요?"라고 질문을 던져보세요.
이 방법의 핵심은 상대방 스스로 답을 찾아가도록 돕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이미 답을 알고 있어요. 다만 그 답을 끄집어낼 안전한 공간과 시간이 필요할 뿐이거든요. 그리고 자기가 찾은 답이니까 실행력도 훨씬 올라갑니다.
감정 인정하기
상대방이 감정을 표현할 때, 그 감정을 판단하거나 해석하려 하지 마시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세요. "화가 나셨겠어요", "정말 속상하셨을 것 같아요", "기쁘셨겠네요" 같은 간단한 표현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감정이 인정받는 순간, 사람은 방어벽을 내려요. 그리고 진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6개월 후, A팀장님의 팀에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팀 회의에서 침묵하던 팀원들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기 시작했고, 팀 내 갈등이 현저히 줄어들었어요. 무엇보다 팀원들의 표정이 밝아졌다고 하시더라고요.
팀장님과 이야기하면
제가 정말 중요한 사람인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한 팀원분의 말씀입니다. 단순히 업무 지시를 받는 부하직원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인정받는 팀의 구성원이라는 느낌을 받으신다는 거예요. 경청의 가장 큰 효과이지요.
진짜 소통은 정보의 교환이 아닙니다. 존재의 인정이에요. 리더가 귀 기울이는 순간, 팀원은 '연결된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연결된 사람들로 이루어진 팀은 단순한 작업 집단을 넘어서 진정한 공동체가 되어요.
오늘, 당신의 팀원 중 한 분과 5분간 온전히 들어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그 5분이 당신의 리더십을, 그리고 팀의 문화를 바꾸는 시작점이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