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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재를 멈추기로 했다

운정2동 주민자치회, 사람과 제도 그 사이

by 이유 임민아

운정2동 주민자치회 3기 시작, 나는 중재자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갈등이 격화될수록 누군가는 논리로 풀고, 정당한 절차를 요구했다. 회의장에서 손을 들고 발언했고, 회장을 만났고, 세칙과 조례의 경계를 지적했다. 그게 주민자치위원으로서의 책임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결국, 중재를 멈추기로 했다.


그동안의 갈등이 단순히 운영 세칙 해석의 문제나 회의 절차의 공정성 문제가 아니었음을, 그 기저에 아파트 내부의 개인적인 갈등이 자리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주민자치회의 논의라는 옷을 입고 있지만, 그것은 오랫동안 쌓여온 감정과 이해관계가 얽힌 복합적인 갈등이었다.


나는 두 사안을 분리해서 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자치회에서 안건이 보류되고, 다시 상정되고, 또다시 고성이 오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알게 됐다. 갈등은 논리나 절차로만 해결되지 않는다. 더 이상 문제제기를 반복하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느꼈다. 그리고 이미 충분히 말했다고, 내 역할은 다했다고 여겼다.


무엇보다, 나에게 주어진 주민자치회 활동 시간은 2년이다. 소모적인 다툼에 휘말리며 이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내가 의미를 두고 참여한 주민자치 활동을, 내가 지켜내고 싶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임원진에게 요청했다.
“당사자들을 직접 만나 설득하고, 대화하고, 이해시키는 과정을 통해 봉합하십시오.”



사람과 제도, 그 사이


주민자치회는 민주적으로 운영되어야 하고, 세칙은 존중받아야 하며, 결정은 다수의 동의 속에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현실의 주민자치회는 ‘제도’와 ‘의지’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결국은 사람이고, 감정이다.


"지금은 부족할 수 있지만, 알아차리는 순간부터가 진짜입니다. 리더라면 그 이후가 중요해요."


회장에게 몇 차례 당부했다. 그는 처음에 나를 의심했다고, 미안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 마음을 이해한다. 주민자치회라는 공간이 너무나도 정치적이고, 동시에 너무나도 인간적인 곳이기 때문이다.


“의제 발굴 워크숍을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라고 분과장에게 제안했다. 분과장은 회장에게 즉시 전달했다. 처음엔 반응이 없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지만, 뜻밖에도 회장은 제안을 수용했고, 강사를 섭외했다. 그리고 놀라운 장면이 펼쳐졌다.



희망을 다시 보다


워크숍 당일, 운정2동 주민자치위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각자의 생각을 나누고, 내년에 우리가 하고 싶은 사업을 함께 고민하며 정리해 발표하는 모습을 보았다.


놀랐다. 갈등만 보였던 주민자치회에서, 이렇게 밀도 있는 논의와 진지한 참여가 가능하다는 사실이. 그리고 그 안에서 다시 희망을 느꼈다.


올해 분과별 의제사업이 하나씩 시작되고 있다. 그 사이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하지만 이번엔 믿어보고 싶다. 정말 ‘제대로 해보려는 의지’가 모두에게 있다는 것을...


나도 작게나마 힘을 보탠다. 대선 이후 밀려드는 과업에 정신이 없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활동을 애써보려 한다. 주민자치회는 결국, ‘주민’의 자치다. 갈등도, 회복도, 그리고 변화도, 모두 사람이 만든다.


그 사이에서 나는 나의 언어로 기록하고, 제안하고, 참여할 것이다.

운정2동 주민자치회, 이 길이 정말 ‘함께 가는 길’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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