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자치회는 말 그대로 주민의 자치를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그 이름값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가 있다. 특정인이 마치 개인의 단체처럼 운영하면서 충성이나 개인적 관계에 따라 사람을 세우고, 반대하는 목소리를 차단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민주적 절차와 상식적인 규칙은 뒷전이고, 그저 권력의 끈으로 사람들을 엮어두는 방식이 자리 잡아버리는 것이다.
문제는 모두가 이 상황을 알고 있다는 점이다. 각자의 이해관계 때문에 정면으로 비판하지 못하고, 결국 눈을 감은 채 적당히 타협하며 이득을 챙기는 흐름이 반복된다. 그 사이 주민자치회는 공동체의 이익보다 개인의 사익을 위해 쓰이는 공간이 되고 만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함께 “주민자치회를 잘해보자” 하고 모였던 이들이 하나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주민자치회는 애초에 개인이나 소수 집단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 아니다. 위원 구성은 행안부, 지자체가 정한 기준에 따라 이뤄지지만, 위원으로 선출된 이후부터는 내부에서 어떻게 리더를 세우고 절차를 지켜가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 주민자치회가 진짜 힘을 발휘하려면, 권력의 사유화가 아니라 공익적 활동과 민주적 운영을 중심에 둬야 한다.
그런데 많은 주민자치회가 정작 핵심적인 부분을 놓치고 있다. 행정구역 단위의 주민들이 모였으면, 그 공간 안에서 공익적 의제를 논의해야 한다. 지역 돌봄, 환경 문제, 청소년 활동, 공동체 공간 운영, 주민 소통과 기록 같은 의제 말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이런 고민보다 개인의 이해득실이나 감정이 앞서고, 공익적 논의는 너무 약하다. 결과적으로 주민자치회가 본래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게 된다.
최근 전문가나 지역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주민자치회에 더 많은 권한을 주어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하다. 제도적으로 힘을 실어줘야 주민자치회가 자리를 잡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부분이 우려된다. 전국에 수많은 주민자치회가 아직 내부 민주주의조차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상태라면, 권한만 던져주는 것은 위험하다. 권한이 아니라 책임과 절차, 공익적 운영 원칙이 먼저 세워져야 한다.
주민자치회는 결국 주민 모두의 것, 공동체의 것이다. 시간을 버티며 다음을 준비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 자체가 희망이다. 언젠가 주민자치회가 개인의 사유물이 아니라 공동체적 논의와 협력의 장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민주적 운영의 원칙을 하나씩 세워가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상식이자, 마을 민주주의의 시작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