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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자치의 꽃, 총회에 불참한 이유

by 이유 임민아

주민총회를 주민자치회의 '꽃'이라고 부른다. 누가 그렇게 이름 붙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만큼 의미가 크다는 뜻일 것이다.


총회는 1년간의 활동을 나열하거나, 앞으로의 계획을 일방적으로 발표하는 자리가 아니다.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해 함께 의제를 결정하고 논의하는 과정이 핵심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런 기능을 잃어버리고 매번 행사처럼 끝나버린다. 마치 많은 의견을 수렴한 것처럼 보여주기 위한 형식만 남은 셈이다.


나는 이번 총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불참이라는 방식으로 지금의 운영 방식에 대한 내 입장을 드러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독선적이고 개인의 조직처럼 운영되는 주민자치회에 일부러 시간을 내어 들러리가 되고 싶지 않았다. 몇 사람이 주도하는 리그에 머릿수를 채우는 일원으로 앉아 있는 것 자체가 동의의 표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동의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올해 초 위원으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나는 몇 가지 너무나 당연한 요구를 해왔다. 회의 날짜를 어떻게 정할지, 안건을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 마련할지, 정보를 어떻게 공유하고 절차를 어떤 순서로 밟을지, 이 모든 것을 민주적 원칙에 따라 진행하자는 것이었다.


정기 모임이 끝난 뒤에는 따로 시간을 내어 조용히 제안하기도 했고, 당부와 부탁의 말을 건네기도 했다. 조금 더 넓게 보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과정을 만들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늘 “너무 이상적이다”라는 냉소였다.


주민자치회의 분과는 본래 지역의 의제를 발굴하고 공익적 사업을 만들어가기 위해 존재한다. 돌봄이나 환경, 청소년, 문화 같은 주제를 함께 논의하는 장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위원 개인의 이해와 이익이 개입되는 순간, 분과는 주민 전체의 논의장이 아니라 특정인의 활동 무대로 변질되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합리적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 재정 문제나 사업 배분 과정 속에서 누군가 사적인 이익을 챙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정황에 근거한 추측일 뿐, 법적·제도적 검증 없이는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최소한 운영 방식이 의심조차 사라지게 만들 만큼 투명하지 않았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주민자치회의 꽃이라 불리는 총회가 진짜 꽃이 되려면 많은 사람의 머릿수를 채우는 자리가 아니라 민주적 절차와 공익적 논의가 피어나는 장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내가 속한 주민자치회는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총회는 나에게 참여의 자리가 아니라 불참의 선택을 하게 한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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