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자치회가 마을소식지를 냈다. 주민들이 직접 취재하고, 기록하고, 한 해의 활동을 정리했다. 그런데 인쇄한 소식지를 전부 폐기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유는 하나다. 선관위가 문제를 삼았기 때문이다.
소식지에 특정 후보를 홍보한 내용은 없다. 정당 이야기도 없다. 그저 주민자치회가 무엇을 했는지, 파주시 정책과 연계된 활동을 어떻게 풀어냈는지 정리했을 뿐이다. 작년에도 같은 방식으로 발행했다. 그때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올해 갑자기 문제가 됐다.
활동이 달라진 것도 아니고, 내용이 정치적으로 변한 것도 아니다. 달라진 건 선거를 앞둔 시기, 그리고 그 시기를 대하는 선관위의 해석이다. 결국 이 사태의 본질은 단순하다. 선관위가 문제로 봤기 때문에 문제가 됐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주민자치회? 이름에는 ‘자치’가 붙어 있다. 하지만 주민자치회는 무엇을 기록하고, 어떻게 알릴지조차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 주민자치회는 자치를 하라고 만들어진 조직이지만, 정작 말하고 공유하는 일에서는 늘 제약을 먼저 만난다. 지금 현실은 이렇다. 주민자치회는 성과를 말할 수 없고, 마을소식지는 마음대로 낼 수 없고, 주민이 직접 만든 기록물조차 선거법의 잣대로 걸러진다. 이게 과연 자치라고 할 수 있을까.
정당도 아니고, 선거운동도 아닌데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말하지 말라’는 상황이 반복된다. 선관위는 법을 집행하는 기관이다. 그 역할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지금의 해석은 과도하다. 모든 주민 활동을 ‘혹시라도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으로 간주하면 주민자치는 존재할 수 없다. 말하지 못하는 자치는 자치가 아니다. 기록하지 못하는 공동체는 성장할 수 없다.
이 상황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건 이것이다. 주민자치회는 “성과를 내라”고 요구받고, “주민 참여를 늘리라”고 평가받고, “기록을 남기라”고 권장된다. 하지만 막상 성과를 정리하고 주민에게 알리려고 하면 “지금은 안 된다”고 제동이 걸린다. 그럼 언제 하라는 건가. 선거가 끝날 때까지 주민자치는 잠시 멈춰야 하는 건가.
이번 사태는 특정 주민자치회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제도가 주민자치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을 갖고 있지 않다는 증거다. 주민자치를 말하면서 주민의 말은 막고, 주민의 기록은 폐기하게 만드는 구조. 이게 지금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다. 묻고 싶다. 이게 정말 우리가 말해온 주민자치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