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만들기전국네트워크를 통해서 처음 알게 됐다.
장난기 있는 웃는 얼굴, 현장에서 마주칠 때마다 “아이유!” 하고 불러주던 정대철. 미디어 활동하는 전남 활동가들을 소개해주기도 하고, 크고 작은 일이 있을 때마다 안부를 묻고, 매년 생일이면 축하 메시지를 보내주던 다정한 형이었다.
우리가 친해지게 된 계기는 2015년, 7년 만에 열린 토이 콘서트였다. 서울올림픽경기장에서 콘서트 왔다고 인증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자기도 지금 여기라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마을운동 하는 사람 중에 토이 콘서트 보러 온 사람이 있다니, 괜히 더 반가웠다.
이후 그는 나를 “아이유” 대신 “토이녀”라고 불렀다. 유희열 얘기, 토이 음악 얘기로 가까워졌지만 대화의 대부분은 마을과 정책, 주민 갈등, 선거 이야기였다. 내가 버럭거리며 불만을 토로해도 그는 쉽게 단정하지 않았다. 행정의 한계도 알고, 주민의 마음도 알고, 정치의 구조도 잘 알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활동가가 감당해야 할 몫이 있다고 말하던 사람이었다.
메신저 기록을 더듬다 이런 문장을 다시 봤다.
“결국 우리 같은 현장 활동가들이 풀어야 할 일”
목포와 파주, 멀리 떨어져 SNS로 서로의 활동을 지켜보며 응원했다.
2023년 11월, 파주에 잠깐 일 때문에 올라와 있다고 연락이 왔다. 바로 만나자고 했고, 고기에 소주를 사줬다. 여전히 현장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고, 너털웃음을 지으며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고 에너지를 받고 싶어 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이후로 페이스북을 통해 아프다는 이야기, 수술 소식, 회복 중이라는 글, 그리고 곧 결혼한다는 소식까지 봤다. 힘든 시간을 지나 다시 삶을 디자인해 가는 과정이라 생각했다.
오늘 아침, 부고 소식을 들었다.
너무 안타깝고 아까운 사람이다. 만 46세, 한창 현장에서 뛰어야 할 나이에 멈춰버렸다.
파주에서 나눴던 대화가 떠오른다. 그게 마지막 장면이 되었다.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던 활동가 한 사람의 이름을 기록해 둔다.
너무 빨리 멈춰버린 시간을, 동료로서 조용히 애도한다.